국내 연구진이 시신경·시력 손상 속도가 빨라 녹내장 치료가 필요한 환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별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17일 분당서울대병원에 따르면 김태우 안과 교수팀은 녹내장 의심환자 87명을 빛간섭단층촬영(OCT)해 망막과 뇌를 연결하는 시신경 섬유가 관통하는 사상판(Lamina Cribrosa)이 눈 바깥쪽으로 눌리고 휘어진 기울기(곡률)와 깊이를 재고 평균 4.6년 간 추적 관찰했다.
사상판은 눈으로 받아들인 빛을 뇌로 전달하는 시신경섬유 다발이 눈 뒤쪽으로 지나가는 부분에 위치한 다층 그물 구조의 조직이다. 안압이 높아져 사상판이 바깥쪽으로 눌리고 휘어지면 시신경 섬유와 혈관이 압박을 받아 변형+손상돼 녹내장이 생길 위험이 커진다. 녹내장은 초기에는 시야가 축소돼 답답하게 보이다 심해지면 중심시력이 떨어져 실명할 수 있다.
추적관찰 결과 사상판이 많이, 깊숙하게 휘어진 15명(17%)은 시신경섬유층 두께가 가늘어지는 속도, 즉 시신경이 손상되는 속도가 빨랐다. 시신경이 빨리 손상되면 녹내장 위험이 커진다. 반면 사상판이 적게, 완만하게 휘어진 나머지는 시신경섬유층 손상 속도가 매우 완만했다.
실제로 김 교수팀이 안압은 16㎜Hg로 같지만 사상판이 휘어진 정도가 다른 61세 여성 A씨와 74세 여성 B씨의 망막 시신경섬유층 손상 속도는 상당한 차이가 났다. 사상판이 많이, 깊숙하게 휘어진 A씨는 초기 검사 후 첫 3 년 동안 시신경섬유층이 연간 5마이크로미터(㎛, 1㎛는 0.001㎜)씩 얇아졌다. 안압을 낮추는 안약 치료를 하자 시신경섬유층이 얇아지는 손상 속도가 연간 2.75㎛로 절반 수준으로 늦춰졌다.
사상판이 조금, 완만하고 편평하게 휘어진 B씨는 약물 치료를 하지 않고도 7년의 추적관찰 기간 동안 시신경섬유층 손상 속도가 연간 0.45㎛로 A씨의 10분의1 수준에 그쳤다. 녹내장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수준이다.
김 교수는 “사상판이 많이 휘어져 있으면 빨리 안압을 낮춰 녹내장 진행을 늦추는 예방적 치료를 하면 되고, 사상판이 편평하면 시야결손 속도가 매우 더뎌 녹내장으로 진행되지 않으므로 불필요한 걱정과 녹내장 치료를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후자라면 불필요한 치료를 하지 않아도 돼 불안감과 경제적 부담을 덜 수 있게 됐다”며 “안압+혈류 등 각기 다양한 인자들이 우리 눈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해 환자마다 최적화된 치료를 받는 날이 곧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금까지는 녹내장 의심 환자가 시신경 손상 속도가 빨라 조기 치료를 받아야 할 대상인지, 시신경 손상 속도가 매우 느려 시야결손→ 녹내장으로 진행할 가능성이 없으므로 그런 치료를 받을 필요가 없는 사람인지를 판단할 방법이 없었다.
김 교수팀의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에 발표됐다.
한편 지난 2016년 녹내장 진료인원(의심환자 포함)은 81만명에 이르며 60세 이상과 50대 이하 연령층의 비중이 반반이다. 40대 이하도 10명 중 3명꼴로 적지 않다.
대부분의 녹내장은 시신경 손상 속도가 아주 느려 시야협착, 뿌옇게 보이는 불편함이 느껴질 정도면 말기 녹내장으로 진행됐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증상이 없어도 40세 이상이거나 근시가 심한 경우, 고혈압·당뇨병 같은 만성질환자, 녹내장 가족력이 있는 경우에는 정기적으로 녹내장 정밀검사(시야·시신경검사)를 받는 게 좋다. 엎드리거나 옆으로 누워 자는 자세, 역기를 들거나 물구나무서기, 과도한 술·담배·커피 등 안압을 높이므로 자제해야 한다.
/임웅재기자 jael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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