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개봉한 영화 ‘강철비’는 한반도에 핵전쟁이 일어난다는 가정을 펼친 첩보 액션 영화다. 북한에 쿠데타가 일어나 권력 1호가 치명상을 입고 남한으로 피신한다는 설정이다. 쿠데타는 없었고 이유도 다르지만 불과 개봉 4개월 만에 권력 1호는 남한 땅을 밟았다. 이 영화의 원작인 웹툰 ‘스틸레인’은 더욱 놀랍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사망했다는 정보를 입수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이 웹툰은 지난 2011년 연재 당시 김정일 위원장이 실제로 사망해 이슈가 됐다. 게다가 작중 등장하는 남파 간첩 이름이 ‘최순실’이다.
이처럼 웹툰이 실제 정치의 대형 이슈를 반영한 예는 다양하다. 강풀 작가가 2010년 연재했던 ‘당신의 모든 순간’은 미국산으로 추정되는 소고기를 구워먹는 장면이 나오는 등 당시의 ‘광우병 논란’을 반영했다. 또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유력 대통령 후보 시절이던 2012년에 연재를 시작한 이충호 작가의 ‘제0시:대통령을 죽여라’는 “1979년 10월26일, 그가 죽지 않았다”로 시작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당시 이 작가는 ‘빨갱이:친일파, 총칼로 정권을 잡은 쿠데타 세력이나 정권 유지를 위해 자국민을 학살한 자를 비판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라는 공지를 올려 큰 논란이 되기도 했다.
부조리한 사회 현실을 풍자하는 경우도 많다. 이미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돼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던 ‘내부자들’ ‘미생’ ‘송곳’뿐 아니라 상류층 시댁에서 겪는 소소하지만 불합리한 에피소드를 엮어낸 ‘며느라기’는 최근 불거진 ‘여성주의’의 파도에 힘입어 60만명의 팔로어를 모았다.
백수진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정책기획팀장은 웹툰의 발 빠른 사회현상 반영 및 풍자의 이유에 대해 “애초에 만화라는 장르 자체가 지극히 현실적인 장르”라며 “웹툰이라는 형식이 탄생한 지 20년이 지나며 웹툰을 즐기는 주 이용층들이 성인이 됐고 이들이 우리 사회 현실에 관심을 두게 됐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웹툰이라는 장르가 처음 생겼던 시절 학생으로 가볍게 웹툰을 즐기던 이들이 시간이 흘러 성인이 돼 사회로 진출하며 생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설명이다. 백 팀장은 “젊은 작가들은 특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 관심이 많다”며 “만화, 웹툰이라는 장르 자체가 이런 세상의 부조리를 꼬집기 딱 좋은 형식”이라고 강조했다.
/우영탁기자 ta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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