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을 전후로 전 세계로 뻗어 나간 K팝 열풍의 주역 SM, YG, JYP. 이른바 ‘빅3’ 기획사로 불리는 이 회사들은 모두 창업자인 이수만, 양현석, 박진영의 영문 이니셜을 사명이자 브랜드로 활용했다. 이 같은 회사명이 한국에만 있는 건 아니다. 미국 헐리우드의 5대 메이저 스튜디오 중 월트 디즈니, 워너 브러더스(워너 가문 형제들), 20세기 폭스(윌리엄 폭스) 모두 창업자의 성 또는 이름을 그대로 사명으로 쓰고 있다. 제조업이나 IT업에서도 이런 현상이 주류를 이룰 수 있었을까?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독특한 점은 ‘사람’의 역량과 브랜드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이다. 기술과 특허, 기계장치에 의존하는 제조업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특성이다. CJ나 롯데, SKT, KT 등의 대기업이 자본투자를 통해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진출할 때도 가장 먼저 하는 일 중의 하나가 사람을 영입하는 일이다. 엔터테인먼트 기업에서도 제조업과 마찬가지로 연구개발(R&D)과 교육훈련을 수행하지만, 그 대상은 기계나 기술이 아니라 전적으로 사람의 역량으로 흡수되고 축적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엔터테인먼트 기업의 생산 활동 역시 기계나 기술에 의한 것보다 사람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영화, 음악, 게임, 출판, 방송 모두 작가가 존재하며, 제작을 총괄하는 프로듀서나 연출하는 연출자, 배우, 감독, 가수 등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엔터테인먼트 창작물을 함께 만들어내고 있다.
사람에 의존하다 보니 사람을 관리하는 일, 즉 매니지먼트는 엔터테인먼트 업계 내에서 핵심적인 사업영역으로 부상했다. 아무리 회사 시스템이 갖춰져 있더라도 사람들의 사고, 건강, 이미지 훼손, 루머 유출 등 돌발적 변수에서 완벽하게 벗어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엔터테인먼트업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은 사람이지만, 가장 리스크가 큰 것도 사람이다.
엔터테인먼트 기업에서 사장 중요한 경영활동인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사람, 즉 경영자다. 영화, 드라마, 음악 등 여러 분야에서 배우나 작가, 감독과의 계약문제, 건강문제, 인간적, 경제적 갈등 등으로 다툼이 벌어지는 경우가 많다.
해외시장에서 인기가 많은 K팝 아이돌그룹의 경우, 팀원 중 일부가 이탈하거나 문제를 일으킬 경우, 앨범 출시를 위해 체결한 계약과 투자한 비용, 공연을 위해 예정된 일정과 예산 등이 그대로 기업의 실적 리스크로 반영될 수 있다. 이럴 경우 경영자는 위험 회피를 위해 활동을 연기할 것인지, 위험을 감수하고 일정을 강행할 것인지의 전략적 판단을 신속하게 내리고 실행해야 한다. 사람을 계약하는 형태로 발전된 엔터테인먼트 분야가 매니지먼트, 에이전시 등의 형태다.
‘매니지먼트 업’이라고 하면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는 이미 고유명사처럼 돼 버렸지만, 경영학을 ‘Business Management’라고 부르는 것처럼 사전적으로 매니지먼트는 경영, 관리를 뜻하는 보통명사다. 어드미니스트레이션(administration)이 총괄적인 관리를 의미하는데 비해 상대적으로 매니지먼트는 좁은 의미의 관리를 의미한다. 매지니먼트는 전반적 관리, 부분적 관리와 같은 경영의 용어이면서 엔터테인먼트 업종에서는 자연스럽게 매니지먼트 업을 사람을 관리하는 업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법률과 제도의 테두리에서 매니지먼트업은 2015년부터 개정된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에 따라 대중문화예술기획업에 속한다. 이는 ‘대중문화예술인의 대중문화예술용역을 제공 또는 알선하거나 이를 위하여 대중문화예술인에 대한 훈련·지도·상담 등을 하는 영업’을 말하며, 연예기획사, 연예기획, 연예인대리, 매니저업, 매니지먼트, 캐스팅디렉터, 엔터테인먼트, 모델에이전시 등을 포함한다.
1980년대 이전에 태동한 초기 매니지먼트업은 ‘매니저’라 불리는 기획사 직원들이 가수나 배우의 스케줄과 이동을 책임지거나 서류작업, 잡일 등을 대신하는 형태로 출발했다. 바쁜 스케줄에 맞춰 차량을 운전하는 길 위의 ‘로드 매니저’에서 시작해 업무 분야에 따라 제작, 캐스팅, 총괄, 수석, 팬 관리 등의 여러 매니저 형태로 세분화되었다.
기획사가 대형화되고 업무가 세분화되면서 매니저의 고용형태나 위상도 달라졌다. 특히 매니저가 직접 기획사 대표가 되어 자본을 조달하면서 배우를 영입하는 행태가 확산됐고, 이 과정을 통해 매니지먼트 기업들도 대형화되기 시작했다.
2015년부터 배우나 가수를 매니지먼트하려면 콘텐츠진흥원을 통해 대중문화예술업 인증을 받아야만 한다. 과거 이른바 ‘장자연 사건’전후로 매니저들을 위한 자격증 시험이 생겨나기도 했지만 유야무야됐으며, 자격증이 의무적인 건 아니다. 현재로서는 회사가 콘텐츠진흥원의 인증을 받고, 매니저는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에 등록하고 교육을 받는 형태가 가장 일반적이다.매니지먼트 기업과 사람은 어디까지나 ‘계약’으로 움직이는 만큼, 계약의 조건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2010년 K팝의 글로벌한 열풍 속에서 일부 아이돌 그룹 멤버들을 둘러싼 이른바 ‘노예계약‘등의 논란과 분쟁이 확산되기도 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13년부터 매니지먼트 계약 등의 불공정을 바로잡는다는 취지로 표준계약서를 만들어 준용을 권고하고 있다.<한성대 융복합교양과정 교수·성북창업지원센터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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