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춘코리아 2018년 6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조인희 ‘왓슨 커스터머 인게이지먼트(Watson Customer Engagement·WCE) 사업부 사장’이 서울을 방문했다. 그는 글로벌 IBM 내 최고경영진 30명 안에 드는 인물이다. 조인희 사장은 IBM 인공지능 왓슨이 비즈니스를 어떻게 혁신시키고 있는지에 관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하제헌 기자 azzuru@hmgp.co.kr 사진 차병선 기자 acha@hmgp.co.kr]
IBM 본사에서 날아온 조인희 사장은 ‘왓슨 커스터머 인게이지먼트 사업부 사장’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서툰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며 “그래도 한국말은 거의 다 알아 듣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서울에서 태어난 조 사장은 5살 때 부모를 따라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로 이민을 갔다. 그는 IT 기업과는 어울리지 않는 학력 배경을 가지고 있다. 듀크대학교에서 생물학과 역사학을 복수전공하고 여성학을 부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법학대학원에 진학해 노스캐롤라이나주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1998년 IBM에 입사한 그는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29세에 상무, 32세에 부사장, 40세에 사장이 됐다. 조인희 사장은 IBM 내 한국계 미국인 중 가장 높은 직위에 있다. 그는 IBM 본사 최고경영진 30명으로 구성된 고위직 모임의 멤버이기도 하다.
그가 기술에 대한 배경 없이 IBM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이유가 궁금했다. 조 사장은 어깨를 추켜올리며 말했다. “IBM은 우수한 인재를 채용한 뒤 기술을 가르치는 방식을 택하고 있어요. 인종이나 성별에 관계없이 잠재능력을 존중하는 기업문화가 강합니다. 저 또한 기술과 비즈니스 분야는 IBM에 입사해 근무하면서 배웠습니다. 시장이 가는 방향이 어디인가를 공부하면서 경쟁사 동향이나 새로운 기술 혁신에 대해서도 놓치지 않았죠. 그 결과 이젠 나 스스로 IT 전문가라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이 됐습니다.”
현재 조인희 사장은 IBM의 인공지능(AI) ‘왓슨’이 보유하고 있는 능력을 기업 업무에 적용해(IBM은 이를 ‘엔터프라이즈 어플리케이션’이라 부른다) 비즈니스 성과를 향상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 조 사장이 한국을 방문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인공지능 왓슨을 이미 사용하고 있는 기업, 혹은 앞으로 사용할 의사가 있는 기업 고객들을 만나기 위해 서울에 왔다”고 말했다.
인공지능 왓슨에게 ‘제퍼디 쇼’는 시작에 불과했다. 2011년 미국 인기 퀴즈쇼 제퍼디에서 인간을 꺾고 우승하며 주목 받은 왓슨은 그 후 기업을 위한 인공지능으로 성장을 거듭해왔다. 왓슨은 학습이 매우 빠를 뿐만 아니라, 9개 언어를 구사하고 간과하기 쉬운 문제를 데이터 분석으로 찾아낸다. 게다가 훌륭한 직업윤리까지 갖추고 있다. 왓슨은 이 같은 능력을 바탕으로 현재 전 세계 45개국에서 금융, 의료, 쇼핑 등 20여 개 산업 분야에 활용되고 있다.
조 사장은 말한다. “요즘엔 유통, 금융, 통신 등 모든 산업분야가 새로운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맞춤화된 경험을 고객에게 제공하기 위해 광고나 마케팅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죠. 저희 부서도 왓슨을 활용해 마케팅 캠페인 자동화, 디지털 경험 최적화, 주문처리, 재고관리 등 고객사가 원하는 다양한 솔루션을 개발 하고 있어요.”
조 사장의 말처럼 왓슨은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활약을 하고 있다. 왓슨이 탑재된 일본 소프트뱅크의 로봇 ‘페퍼’는 은행, 휴대폰 매장 등에서 사람이 하는 일을 대신하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조 사장은 말한다. “왓슨은 금융, 제조 분야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점점 더 발전된 모습을 보이고 있죠. 지금도 저희는 특정 산업이나 전문직 군에서 사용되는 언어나 뉘앙스를 완벽히 이해할 수 있도록 계속 학습시키고 있습니다.”
조 사장은 현재 한국에도 왓슨을 활용하고 있는 많은 기업이 있지만, 구체적으로 밝힐 수 있는 곳은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조 사장이 설명을 이었다. “롯데그룹이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고객과 상호 소통을 하고 있고, 현대카드 콜센터도 왓슨을 적용하고 있는 정도를 공개할 수 있어요. 그러나 분명한 건 한국에서 왓슨의 성공사례가 계속 쌓이고 있다는 사실이에요. 저희 인력이 모자라 지원하지 못할 정도로 확산이 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왓슨 커스터머 인게이지먼트 사업부에 소속된 IBM 직원은 수 천 명에 달한다. 이들은 전 세계 30여개 IBM 지사에 흩어져 일하고 있다. 한국IBM에서는 ‘코그너티브 솔루션 팀’이 왓슨 커스터머 인게이지먼트 사업부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조 사장은 말한다. “정확한 인원을 밝히기 어려운 점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왓슨 커스터머 인게이지먼트 사업부 소속 직원의 절반은 엔지니어고 나머지 반은 산업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실상 모든 산업군의 비즈니스 전문가를 보유하고 있죠. 산업군에 대한 지식과 기술이 있어야만 ‘왓슨 엔터프라이즈 어플리케이션’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난 수년간 왓슨에 350억 달러를 투자했어요. 특허 1,200개를 보유하고 있고, 전략적 제휴도 12건이나 진행했어요. 이런 투자를 통해 현재 왓슨 커스터머 인게이지먼트 사업부는 고객사 1 만 7,000여 곳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어떤 산업군에서 왓슨에 가장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조 사장은 “모든 산업군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다”며 말을 이었다. “인공지능 활용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단계라면 그 기업은 이미 뒤처진 곳이라 할 수 있어요. 요즘 같은 세상에 인터넷이 비즈니스에 어떤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지를 묻는 사람은 없죠? 사실 15년 전 만해도 인터넷에 대한 기업 반응은 달랐습니다. 어떤 기업은 공격적으로 인터넷을 받아 들였지만, 어떤 기업은 소극적이었죠. 인공지능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는 인공지능 중심 뱅킹이나 산업 생산, 전자상거래 등이 보편적으로 일어날 겁니다. 그 결과 비즈니스와 일하는 방식이 획기적으로 변할 것이라고 생각 해요. 인공지능이 대세가 될 것이라는 데에는 누구도 의문을 달 수 없을 겁니다.” 시장조사업체 IDC는 연평균 50% 이상 초고속 성장을 거듭해 세계 인공지능 시장 규모가 2016년 80억 달러에서 2020년 470억 달러로 늘어날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왓슨은 산업별 특징을 포착해 해당 분야 전문가들의 실시간 의사결정을 지원하고, 기업 내에서 생성된 데이터를 분석해 가치 있는 통찰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한다. 조 사장은 인공지능이 비즈니스계의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가격 책정에 대한 알고리즘, 주문 최적화 쪽에서도 왓슨이 적용되고 있다며 예를 들어 설명을 해주었다. “유통업체는 매우 다양한 상품들을 취급합니다. 경쟁 업체도 많죠. 그렇기 때문에 해당 유통업체 MD들이 발 빠르게 경쟁업체의 동향을 파악하고 대응하는 데 애를 먹고 있습니다. 예컨대 아마존에서 갑자기 가격을 내려 할인행사를 한다고 칩시다. MD 개개인이 이런 경쟁업체 동향을 적시에 파악해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럴 때 왓슨을 활용하면, 경쟁사 가격 프로모션 동향을 실시간으로 수집할 수 있습니다. 머신러닝을 통해 소비자가 매력적으로 느끼는 적정가격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내는 거죠. 이 같은 왓슨의 알고리즘은 기업의 비용감축 효과를 가져옵니다. 왓슨 투자비를 4개월 만에 회수할 수 있을 정도죠.”
기업용 솔루션의 핵심 가치인 ‘투명성’도 왓슨만이 가진 장점이다. IBM을 제외한 인공지능 업체 대부분이 인공지능 학습에 사용한 데이터를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 투명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 사용자는 데이터를 제공하지만, 이 데이터가 어떻게 인공지능 정확성 향상에 활용되는지 전혀 알 수 없다. 또 이런 데이터는 기업에게 민감한 내용일 수도, 때론 경쟁사와 공유하고 싶지 않은 차별화된 데이터일 수도 있다. 왓슨은 고객 동의 없이 고객 데이터에서 파생된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다. 또 왓슨 솔루션이나 모든 서비스에서 나온 데이터를 IBM이 소유하거나 저장하지도 않는다.
조 사장은 말한다. “미래 인공지능 활성화를 위해선 데이터 투명성 보장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 밖에도 ‘무의식적 편견’이라는 문제가 있죠. 이는 인공지능을 교육시킬 때, 인간 교육자가 자기도 모르게 (자신이 가진) 편견을 인공지능에 주입하는 문제입니다. 이런 우를 범하지 않게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조인희 사장은 6월 다시 서울을 찾는다. 서울대학교와 고려대학교,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개최하는 ‘AI 글로벌 서밋’ 행사 기조 발제자로 초청을 받아서다. 조 사장이 인공지능 업계의 글로벌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조 사장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전문가들을 모아 다음 세대를 위해 다양한 문제를 해결해야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말했다. 인공지능이 그려낼 미래가 두려움이 아닌 희망으로 펼쳐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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