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은 올해 단체협상에 매년 700% 지급(격월로 짝수달 600%, 설·추석 각 50%)하던 상여금을 매달 지급하는 방식으로 변경하는 안건을 올렸다.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상여금의 경우 매월 지급만 포함될 것으로 보고 선제 대응에 나선 것이다. 회사 관계자는 “내년에도 최저임금(시급 7,530원)이 8,000원대로 훌쩍 오를 텐데 상여금이 최저임금에 포함되지 않으면 전체 직원 중 10%가량(1,000명)의 임금을 올려야 한다”고 우려했다. 신입사원 연봉이 4,000만원 정도인 대우조선 직원들도 최저임금 하한선을 못 맞추는 불합리한 경우가 생긴다는 지적이다.
이런 우려는 2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위의 합의안 타결로 현실이 됐다. 합의안 뼈대는 정기상여금과 식비·숙식비 등 복리후생 수당 모두 매월 지급하는 경우에만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넣도록 한 것이다. 다만 상여금 지급 방식을 격월이나 분기별에서 매달 지급으로 취업규칙을 바꾸고 직원의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의견을 구하기만 해도 상여금을 산입범위에 포함 시킬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노조가 있는 기업의 경우 상여금 지급방식 변경은 단체협상 사안이라 노조 동의가 필요하다. 사실상 상여금 지급 방식 변경이 불가능에 가깝다.
재계가 “이번 합의가 반쪽짜리”라며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반발하는 이유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기본급 대비 후한 상여금을 격월이나 분기별로 주는 대기업 직원들이 최저임금 인상의 수혜를 누릴 여지가 커졌다”며 “이렇게 되면 애초 최저임금 인상의 시행 목표인 이중적 노동시장 구조가 더 왜곡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매월 상여금 지급 기업은 극소수…실수령액 반영 못 하는 산입범위=대기업들이 합의안의 역기능에 주목하는 것은 최저임금 산입범위가 손에 쥐는 임금 총액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령 매월 기본급과 직무수당으로 200만원, 상여금 50만원, 식비·숙식비·가족수당 등 복리후생비 20만원을 받는 직원이 있다 치자. 이때 상여금 가운데 ‘법정 월 최저임금(157만원, 시급 최저임금 7,530원을 월로 환산한 금액)’의 25%(39만2,500원)가 넘는 10만7,500원이 최저임금에 새로 포함된다. 복리후생비는 법정 월 최저임금 157만원의 7%(10만9,900원)를 넘는 9만100원이 최저임금에 들어간다. 그래서 최저임금은 219만7,600원(200만원+10만7,500원+9만100원)이 된다. 이 금액은 실제 받는 총액 270만원의 80%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더구나 기업 대다수는 상여금을 격월이나 분기별로 받는다. 매월 받는 기업은 극히 드물다. 최저임금으로 인정받는 금액이 실제 수령액의 60% 수준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재계의 한 임원은 “‘2020년 최저임금 1만원’이 무리라는 여론이 힘을 얻고 있다지만 내년에도 높은 최저임금 인상이 예상되고 있어 최저임금 산입범위 축소는 기업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선 등은 임금인상 가시화, 車·가전도 불똥=현대중공업 노사는 올 초 노사 협상을 통해 상여금을 월별로 쪼개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대우조선과 같은 이유에서다. 조선업계의 한 실무자는 “구조조정으로 마른 수건도 짜야 할 판”이라며 “조선업종이야 워낙 힘들어 노조 동의가 있었지만 다른 업종은 상여금 지급방식 변경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우조선의 경우 임단협이 순탄치 않으면 최저임금 인상발 비용 증가가 예상된다.
조선보다는 덜하지만 자동차 쪽도 부담스럽기는 매한가지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여파는 아직 없지만 올해 최저임금 인상률(16.4%)과 같은 가파른 인상이 더 이어지면 임금 조정이 불가피하다. 자동차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최저임금 인상시 영향을 검토했고 내부적으로 일부 수당을 기본급으로 돌리는 방안까지 거론됐다”고 전했다. 반도체·가전업계는 직접적 여파보다는 협력업체의 비용 증가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 가전업계의 한 임원은 “대기업들이 협력사들의 제반 사정을 고려해 납품 단가를 올려주는 방안을 논의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 무임승차로 노동시장 왜곡 심화 우려=상여금이 사실상 산입범위에서 빠지면서 ‘대기업 일부 직원 임금 인상→다른 직원도 보조 맞춰 임금 인상→퇴직금 적립 등 비용 부담 증가’ 식으로 도미노식 파장이 우려된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측은 “삼성전자처럼 노조가 없는 기업은 취업 규칙 개정을 통해 상여금 지급 시기를 손봐 산입범위를 확대하는 데 무리가 없지만 강성 노조가 있는 곳은 불가능하다”며 “회사에서 상여금을 쪼개 지급하려 할 경우 노사 갈등이 심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자칫 대기업 직원이 중소·영세기업 근로자보다 임금 인상을 더 많이 받게 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최저임금 인상으로 직원의 임금 인상이 불가피한) 기업 입장에서는 임단협 등에서 임금 인상률을 낮추기 위해 이전보다 훨씬 강경한 협상 전략을 고수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이상훈·한재영·김우보기자 sh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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