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치는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을 유지한 이유로 가장 먼저 지정학적 리스크를 제시했다. 최근 남북·북미 정상회담 등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이 어느 정도 완화됐음에도 여전히 지정학적 리스크가 우리나라 국가 신용등급을 끌어내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피치는 “북한의 비핵화 선언은 군사적 대립 위험을 추가적으로 낮추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면서도 “합의 이행에 장기간이 소요될 가능성이 높고 합의가 깨지기 쉬우며 중국·일본 등 주변국 이해관계로 복잡해질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평가했다.
한국의 경제 성장률 둔화도 지적했다. 피치는 한국경제에 대해 “2017년 하반기부터 2018년 초까지 지정학적 리스크가 고조되는 상황에서도 견조한 성장세를 달성했다”면서도 “성장률은 2018년 2.8%, 2019년 2.7%로 다소 둔화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피치는 지난해 10월에도 우리나라의 올해 성장률을 2.8%로 전망한 바 있다.
피치는 수출 둔화와 유가 상승, 미·중 통상갈등이 한국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평가했다. 급속한 고령화와 낮은 생산성은 중기적인 리스크다. 피치는 “5년 평균 성장률 3.0%인 현 성장세는 AA등급에 부합하지만 빠른 고령화와 저생산성 등으로 (한국의 성장률은) 중기적으로 2.5% 수준으로 저하될 전망”이라고 봤다.
물가상승률은 올해와 내년 각각 1.6%, 1.9%로 한국은행의 목표치(2%)를 밑돌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에 대해선 연 25bp(1bp=0.01%) 수준의 점진적 통화긴축(2020년 2.25%)이 예상된다면서도 미국 금리인상, 지정학적 리스크 고조 등에 따른 자본유출이 확대되면 조기 금리 인상 가능성도 있다고 평가했다. 수출 둔화에 따라 경상수지 흑자는 지난해(국내총생산(GDP) 대비 5.1%)에서 올해 4.1%로 떨어질 것으로 분석했다.
한국 정부의 재정건전성에 대해서는 경계 섞인 평가를 내놨다. 피치는 우리 정부의 재정흑자가 지난해 GDP 대비 1.4%에서 올해 0.8%로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GDP 대비 38.1%인 정부부채는 AA등급(중위값 38.3%)에 부합하지만 전체 공기업 부채에 대해 묵시적 우발채무가 높은 수준이라고 경고했다. 남북 통일에 대해서도 “단시간 내 가능성이 높지 않지만 장기적으로 한국 재정상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피치는 앞으로 한국 국가신용등급의 하향 요인으로 △지정학적 리스크의 중대한 악화 △예기치 못한 대규모 공공부문 부채 증가 △예상보다 낮은 중기 성장률을 제시했다.
상향 요인으로는 △구조적인 지정학적 위험 완화 △정부·공공기관 부채감축 전략 시행 △거버넌스 개혁 등을 꼽았다. 가계부채 악화 없이 성장률이 높아질 수 있다는 증거가 보인다는 점도 높이 샀다.
/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