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진제폐지까진 난제가 많다. 정부가 누진제 개편 논의의 선결 조건으로 밝힌 지능형 전력계량 시스템(AMI)의 보급부터 문제다. 2020년까지 2,250만호의 가정에 AMI를 보급해 전력 사용패턴을 실시간으로 분석한 후 계절과 시간대에 따른 요금을 부과하겠다는 게 산업부의 구상이다. 하지만 보급실적은 미미하다. 2016년까지 1,000만대를 보급하겠다고 했지만 실적은 480만대에 그쳤다. 전력 업계의 한 관계자는 “2020년까지 AMI보급을 마무리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전기요금 체계 개편이 쉽지 않다는 얘기다.
AMI 보급 속도를 높여 전기요금 체계 개편 논의가 서둘러 시작된다 하더라도 ‘탈원전’의 후폭풍으로 정부의 운신폭이 좁다.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3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한 한전으로서는 가정용 전기요금 인하를 목표로 한 누진제 폐지는 부담이 크다. 누진제가 폐지된다면 ‘연료비 연동제’ 등이 함께 도입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연료비 연동제가 실시되면 유가가 올라가는 만큼 전기요금이 높아지게 돼 누진제를 폐지하더라도 각 가정의 전기요금 부담은 현행 누진체계에서보다 높아질 수도 있다. 누진제를 폐지하면 가장 밑단의 요금은 현재보다 상향조정 될 가능성도 높다. 저소득층의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는 셈이다.
산업용 전기요금에도 불똥이 튈 전망이다. 정부로서는 설비투자와 고용이 감소하는 경기 침체기에서 전기요금마저 비싸진다면 기업 환경은 더욱 나빠진다는 우려 때문에 요금 인상 카드를 꺼내기 힘들다. 백 장관이 올해 말로 예정됐던 산업용 경부하 요금 체계 개편을 내년으로 미룬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계절별, 시간별 요금체계로 가야 한다는 방침을 세웠다”며 “국회의 논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합리적인 방안을 구상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형윤기자 mani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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