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최대 가전전시회 ‘IFA 2018’이 열리고 있는 독일 베를린 ‘메세 베를린’ 박람회장. 축구장 20배 면적(15만9,000㎡)의 전시장 곳곳에서는 구글이 글로벌 인공지능(AI) 선두기업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Mach mal, Google.(한 번 해봐, 구글.)’이라는 문구가 전시장을 뒤덮었고 100명이 넘는 구글 직원들은 각 기업 전시관에 별도로 마련된 구글 부스에 상주하고 있었다. LG전자·화웨이·하이얼·파나소닉 등 49개에 달하는 기업들이 구글에 부스 자리를 내주고 ‘구글 동맹’을 강조하는 모습이었다.
구글이 IFA 2018를 장악했다. 수십년간 소비자 접점을 늘려온 글로벌 가전 업체들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IFA 첫 데뷔 무대에서 구글은 가전 업계의 중심에 있음을 과시했다. 구글의 인공지능 음성인식 비서 ‘구글 어시스턴트’를 빼놓고는 IFA를 설명할 수 없을 정도다.
IFA 전시장에 마련된 750㎡ 규모의 구글 전시관은 셀 수 없이 많은 방문객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상의와 하의가 연결된 하얀색 작업복과 모자를 쓴 구글 직원들은 ‘구글 배지’를 나눠주며 게임 및 경품 참여를 독려했다. 행사장에서 만난 전자 업계 관계자는 “구글은 지난 1월 미국 가전박람회(CES 2018)에 처음 등장했다”며 “놀라운 속도로 정보기술(IT) 기업들에 침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네덜란드 국적의 알람 제조회사인 스마노스(SMANOS) 직원은 “알람 기기를 구글 어시스턴트를 통해 음성으로 제어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었다”고 홍보했다. IFA에 선보이는 제품의 차별화 포인트가 구글과의 협력인 셈이다.
CES에 이어 IFA에서도 구글의 영향력이 눈에 띄게 커지자 주요 세트 제조사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국내 참가업체의 한 관계자는 “올해 IFA의 화두는 단순히 인공지능이라기보다 인공지능을 적용한 제품, 생태계의 확대”라면서 “이런 흐름을 기기 제조사가 주도했다기보다 구글과 아마존 두 회사가 주도하며 발톱을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이 관계자는 “제조사들이 이 두 기업 중 하나를 선택하는 ‘줄타기’를 하는 듯한 분위기까지 느껴진다”고 말했다. 당장 구글과의 협업으로 소비자에게 더 큰 편의를 제공할 수 있지만 결국 우려하는 ‘구글 종속’이 심화할 수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업계에서는 구글 어시스턴트 탑재 기기가 늘어날수록 ‘공룡 구글’의 힘이 더 커질 것을 우려한다. 막대한 데이터를 쌓은 구글이 라이선스 비용을 높이거나 특정 기능을 독점할 경우 제조사에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자 업계 고위관계자는 “삼성이 독자 AI 플랫폼인 빅스비에 사활을 거는 이유를 IFA에서 구글을 보며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결국 AI가 여는 미래를 구글과 협력할 것이냐, 독자적인 길을 걸을 것이냐 선택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아마존 역시 음성인식 브랜드 ‘알렉사’로 세력을 과시했다. 독일 프리미엄 가전 업체 밀레는 자체 스마트홈 제어 플랫폼인 밀레앳모바일에 알렉사 에코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알렉사 에코 쇼와 연동된 기능을 선보였다. 밀레 관계자는 “아마존을 탑재한 스피커에 디스플레이까지 적용해 보다 효과적으로 음성인식 기능을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고 소개했다. /베를린=한재영기자 신희철기자 jyha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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