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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이 만난 사람] 원광연 이사장 "단기성과 부추기는 연구 환경에선 노벨과학상 못 나와"

[서경이 만난 사람-원광연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

보상보다 연구자율성 보장이 먼저...한 가지 테마 오래 연구하게 해야

PBS 비중 낮추고 기관간 융합연구 활성화·신기술 탄력 대응체제 구축

출연연, 4차혁명 플랫폼으로 혁신성장 주도...삶의 질 향상 책무도 수행을





/대담·정리=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정부 출연연구기관이 ‘돈 많이 쓰는데 왜 이리 성과가 없느냐. 비효율적이고 단기 성과에 집착한다’고 비판하는데 그것은 바로 ‘PBS(연구과제 중심 연구비 지원 시스템)’ 때문입니다. 지금의 국가 연구개발(R&D) 시스템에서는 노벨과학상을 받기 힘들어요.”

원광연(66·사진)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이사장은 최근 서울 양재동 외교센터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PBS 때문에 출연연의 연구원이 심지어 7개의 연구과제를 동시에 수행하기도 한다”며 “이렇게 단기 성과에 집착해 연구가 되겠느냐”고 탄식했다. 이어 “연구자가 한 가지 테마를 갖고 오랫동안 연구하게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오는 10월 초 노벨상 발표를 앞두고 과학 분야 노벨상을 보면 일본이 24명을, 중국이 1명을 배출했지만 아직 한국은 없다. 원 이사장은 “훌륭한 연구에는 보상이 돌아가야 하지만 연구자는 좀 적게 받더라도 정말 자기가 원하는 연구를 하고 싶어한다”며 “훌륭한 연구자의 공통점은 한 분야를 오래 연구했다는 것인데 지금 같으면 노벨상이 나오지 못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정부 출연연은 지난해 19조4,000억원의 정부 R&D 예산 중 7조9,000억원(NST 산하는 4조9,000억원)을 썼지만 그중 절반가량을 부처와 각 기관의 공모과제를 통해 조달해야 했다. 그로 인해 단기 현안 연구에 매몰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다만 출연연도 연륜이 쌓이며 2018네이처인덱스 100대 연구기관 순위에서 기초과학연구원(25위), 한국과학기술연구원(39위), 고등과학원(50위), 화학연구원(96위) 네 곳이 포함됐다.

원 이사장은 “기관마다 천차만별이지만 평균적으로 출연금과 PBS 비중이 4대6이나 기금까지 기관 고유예산(출연금)으로 넣을 경우 내용적으로는 6대4가 된다”며 “출연연 개혁방안이 연말쯤 나올 텐데 방향은 PBS 비중을 줄이고 PBS 연구도 기관 고유의 목적에 부합되도록 하며 기관 간 융합연구를 활성화하고 4차 산업혁명 시대 신기술에 대한 탄력적인 대응체제를 만드는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총론을 협의해 각론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소개했다.

NST는 25개 과학기술 정부 출연연을 관장하는 사령탑이다. 원 이사장은 “기관의 건전성과 수월성을 높이기 위해 PBS가 없는 것은 안 되지만 지금은 비중이 높고 그것을 따온 연구자가 기관의 큰 간섭 없이 연구팀을 짜는데 설립 목적과 방향에 맞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자율성을 높여 한 분야의 연구를 오랫동안 할 수 있게 해줘야 하지만 지금의 PBS로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이어 “3년의 출연연 원장 임기를 가능하면 좀 더 늘리고 연구평가는 장기적으로 진행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연구자가 고유 분야를 꾸준히 연구하고 응용 분야에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인공지능(AI)이 유행하면 우르르 몰려갔다가 갑자기 가상현실(VR)이 유행하면 싹 바꾸는 행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그러면서 “AI를 전공하면 평생 지켜나가되 의학·국방·제조 등에 응용해 세계적 전문가로 커가야 한다. 융합연구도 로봇 관련 연구소가 7~8개 있는데 협의체는 있지만 다 함께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게 중요하다”고 예를 들었다.

원 이사장은 국가 R&D 정책에 대해 “핵심은 ‘제대로 된 연구를 하게 하자’ 아니겠느냐”며 “출연연은 남들이 하지 않는 연구를 수행하는 퍼스트무버가 되고 혁신성장 플랫폼, 삶의 질 향상, 균형발전, 남북 과학기술 교류라는 책무도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출연연이 산학연 간 벽을 허물고 AI·빅데이터·블록체인 등 4차 산업혁명 플랫폼으로서 미래 변화를 주도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문이다.



원 이사장은 “출연연이 관성에서 벗어나 존재의 의미를 되돌아보고 바이오·기계·국방 등 선도 연구를 하고 삶의 질 향상과 혁신성장 플랫폼 등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모방·추격형 R&D에서 벗어나고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같은 보건·건강, 안전, 복지, 지구온난화 등 환경·에너지와 교통 등 국민의 피부에 와 닿는 성과를 강조한 것이다. 현재 과기 출연연이 뭉친 융합연구단은 KIST에 치매 예측·치료제·케어 기술, 한국화학연구원에 신종 바이러스 융합 솔루션 개발,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에 미래에너지 생산기술,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 자가학습 지식융합 슈퍼브레인 기술 등 10개가 있다. 다만 “아직은 한계가 있고 융합연구의 토양을 만들기 위한 씨 뿌리기 수준”이라는 게 그의 평가다.



원 이사장은 과학기술로 안보를 튼튼히 하는 한편 남북 과기 협력을 통해 경제·산업의 파급효과를 올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실례로 백두산에 남북 과학기지를 조성해 화산·지진, 광물, 천연물, 천문 공동연구를 하면 시너지가 날 것이라는 얘기다. 그는 “광물자원을 공동 연구하고, 융합소재 생산기술을 개발하고, 천연물로 건강식품·화장품·의약품을 개발하고, 천문연구소를 만드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출연연이 전국적으로 60개가 넘는 조직이 있어 지역 창업과 일자리 창출, 인재양성 등 균형발전 역할을 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그는 “박근혜 정부 때 출연연의 상업화 연구를 강조했는데 출연연은 한국생산기술연구원처럼 바로 상업화(개발연구)에 초점을 맞추는 곳도 있지만 대체로 원천기술과 응용연구를 한다”고 설명했다. 상업화를 전자통신연구원에 강조해도 되지만 한국원자력연구원이나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한국천문연구원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는 얘기다.

KAIST에서 26년간 교수로 근무한 그는 과학과 문화예술 융합에 관심이 많아 ‘문화기술(Culture Technology)’ 개념을 제안했고 전공인 VR·AI 등에서 200편 가까이 논문을 발표했다. 지난해 10월 NST 이사장으로 부임한 뒤에는 출연연 컨트롤타워 수립과 PBS 등 R&D 시스템 개선에 주력해왔다.

출연연 인사에 관해서는 최근 한국지질자원연구원장까지 과기 25개 출연연 중 15명이 새로 바뀌었지만 정치논리와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두 분이 개인 사유로 중도에 물러났지만 나머지는 임기 만료로 새로 선임됐다”며 “인사 검증 기능이 있는 청와대가 실질적으로 (인사)한다고 오해받을 여지도 있지만 진보냐, 보수냐 정치적 코드와 전혀 관계가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인터뷰한 날도 모 출연연 인사를 논의하기 위해 NST 이사회가 열렸다. 20명 정원의 이사회에는 현재 과기정통부 등 차관 5명과 교수·유관기관·기업인 9명이 참여하고 있다. 그는 “초기에는 보틀넥(병목현상)으로 인사 검증이 오래 걸렸지만 최근에는 빨라졌다”며 “과학자는 논문 표절이나 연구윤리 등 확인할 게 많은데 지원자 중 전문성·능력·리더십·인성을 고려해 최적의 인물을 선임했다. 95점은 받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러면서 전 정권에서 실력도 없고 도저히 아닌데 낙하산으로 됐다면 후진에 길을 터줘야 하지만 능력과 전문성이 있다면 나가라고 할 일이 없다고 덧붙였다. /사진=권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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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서울 △서울대 응용물리학 학사 △미국 위스콘신대 전산과학 석사·전산학 박사 △1974년 국방과학연구소 연구원 △1986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조교수 △1991년 KAIST 부교수 △2000년 KAIST 교수 △2005년 한국 HCI학회 초대회장 △2006년 KAIST 문화기술대학원 초대 원장, 책임교수, 명예교수 △2017년 10월~현재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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