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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에세이] '분만 인프라' 붕괴 막아야 한다

권한성 건국대병원 산부인과 교수

대한산부인과학회 상대가치소위원회 간사





지금 우리 시대를 관통하는 사회 현상을 대표하는 두 가지 키워드는 저출산과 양극화일 것이다. 극심한 저출산의 여파로 ‘2015년 건강보험통계연보’에 따르면 우리나라 분만기관의 수는 지난 2004년 1,311개에서 2015년 617개로 53% 감소했다. 산부인과 전문의 수도 2001년 270명에서 올해 131명으로 줄었다.

이러한 변화가 저출산으로 인한 신생아 수 감소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분만기관의 지역별 분포는 점차 도시와 지방 간에 양극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2012년 조사에 따르면 서울과 경기권의 산부인과 의원 수는 300곳 안팎이었고 그 외 지역은 100곳을 넘는 곳이 없었다.

강원도와 대전광역시의 인구는 각각 150만~160만명으로 비슷하다. 하지만 강원도의 산부인과 의원은 34곳(2013년)으로 대전(52곳)보다 35% 적다.

연간 분만 건수가 급감하고 있지만 가임연령 인구가 많은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은 비교적 의료 인프라가 양호해 충격이 덜하다. 하지만 지방은 안전한 분만 사각지대가 늘어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정부에서도 건강보험 분만수가(酬價·의료 서비스 가격)를 일부 올리고 분만취약지구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등 대응방안을 마련하고 있지만 지금 같은 소극적 대처로는 분만 인프라의 붕괴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도 분만취약지역에 거주하는 산모들은 분만 병원이 있는 도시로 원정출산을 떠난다. 그 과정에서 지방의 모성사망률은 서울 등 수도권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서울은 10만명당 3.2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절반 수준이지만 강원도는 32명, 제주도는 16.7명, 경상북도는 16.2명이나 된다. 강원도의 모성사망률은 세계보건기구(WHO)가 2014년 발표한 국가별 모성사망률 가운데 말레이시아·중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우리와 가까운 일본의 모성사망률은 10만명당 6명 수준이다.



일본은 우리보다 먼저 저출산 쇼크를 겪었다. 지금도 해외에서 분만이 가능한 의사들을 수입하는 실정이다. 또한 2008년 도쿄에서 출산 직전 산모가 뇌출혈 증세를 보여 시내 7개 병원의 응급실을 찾았으나 “고위험 산모를 진료할 의사가 없다”며 진료를 거부해 결국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전 일본이 충격에 휩싸였다.

이후 일본은 분만수가, 특히 고위험 산모에 대한 분만수가를 대폭 올리고 의료사고 위험이 높은 산부인과 의사들의 부담을 줄여주는 제도를 2009년 도입했다. 분만 중 불가피하거나 원인이 분명하지 않은 의료사고로 아기가 뇌성마비가 되면 정부에서 20년에 걸쳐 3,000만엔(약 3억210만원)을 가족에게 보상하는 식이다. 반면 의사에게는 법적·경제적 책임을 묻지 않는다.

반면 우리나라는 지난 수년간 분만수가가 오르기는 했으나 기존 수가가 너무 낮다 보니 분만 병원들의 폐업 건수가 늘고 있다. 의사의 과실이 없어도 태아가 사망하면 최대 3,000만원을 보상해야 한다. 이 재원의 30%를 분만 실적이 있는 의료기관들이 부담한다. 그러다 보니 분만 병원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일본을 타산지석 삼아 지금의 지역 분만 인프라만이라도 지켜내야 한다는 절박함을 갖고 좀 더 적극적인 정책을 펼 필요가 있다. 전반적인 분만수가를 올리되 분만취약지의 분만기관에 대해서는 전폭적인 재정지원을 해야 한다.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한 의사들의 부담도 줄여줘야 한다. 그래야 고위험 산모들이 좀 더 적극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다. 분만 인프라의 붕괴를 막을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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