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의 자문기구격인 ‘금융회사 내부통제 혁신 태스크포스(TF)’가 금융당국이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와 임원의 적격성을 직접 심사하는 방안을 중장기과제로 검토하라고 권고했다. TF는 해외 적용사례를 들며 ‘중장기 과제’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관치 논란이 끊이지 않는 국내 금융시장의 여건상 성급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금감원 내부통제 TF는 12일 국회에서 민병두 의원실과 한국상사판례학회가 주최한 ‘금융기관 내부통제 제도 혁신방안의 모색’ 세미나에서 이 같은 내용의 내부통제 혁신안 초안을 발표했다. 내부통제 TF는 금감원의 외부 민간 자문조직으로 권고안에 법적인 이행 강제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TF 설립을 직접 지시한 윤석헌 금융감독원 원장이 권고안을 전격 수용할 경우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TF 권고안은 금융당국이 금융회사 임원 후보자에 대한 심사권을 갖는 방안을 중장기 과제로 검토하라고 권고했다. 은행이 임원을 선임하려면 사전에 금융당국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TF는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임원 심사를 강화하는 게 세계적인 추세이고 금융기관 자체 심사만으로는 객관적인 자질 파악이 어렵다”며 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설명하면서 “다만 현재는 금융당국에 대한 신뢰도가 낮고 관치(官治) 금융 논란이 야기될 수 있는 만큼 중장기 과제로 검토하는 게 바람직하겠다”고 제안했다. 보기에 따라 속도 조절을 강조한 것처럼 보이지만 금융권에서 극도로 민감해하고 현실성도 떨어지는 사안을 TF 권고 사안에 담았다는 것 자체가 논란을 부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윤 원장이 설립을 주도한 TF가 외부에 결과를 보여주기 위해 해석의 여지를 두면서까지 ‘금융당국의 금융사 CEO 적격성 심사’ 방안을 포함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 TF의 권고는 지금까지 금감원이 직접 발표해 왔지만 이번에는 TF를 이끌었던 고동원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회장으로 있는 한국상사판례학회 세미나를 통해 간접 발표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이 때문에 TF의 이번 권고가 장기적으로라도 도입을 하라는 것인지, 현실을 감안해 도입에 제동을 건 것인지를 놓고 금감원 내부에서도 해석이 갈렸다. 그러나 윤 원장은 CEO 등 임원 심사제도 도입에 긍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금융권이 촉각을 세우고 있다.
TF는 또 임원의 자격요건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단순히 횡령 등 범법 사실이 없는 수준의 소극적 자격요건을 넘어 능력과 공정성·도덕성·전문성 등을 전반적으로 심사받도록 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지금도 당국의 입김이 거센데 인사권까지 갖게 되면 은행 경영에 자율은 하나도 남지 않는다”며 “인사 때 도덕성과 전문성을 어떻게 평가할 것이며 추후 당국이 이를 근거로 인사에 시비를 걸어오면 금융회사가 무슨 수로 방어하겠느냐”고 토로했다. 더불어 TF는 준법감시인에 대한 권한 강화도 요구했다. 금융회사 준법감시인을 반드시 임원급 이상으로 선임하도록 하고 총 임직원의 1% 이상을 준법 감시 담당 인력으로 의무 배정하는 한편 준법 담당 인력은 순환근무제에서 예외로 허용하도록 하라고 권고했다.
이번 권고안이 시행될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당장 금감원부터 TF 권고안이 금감원의 공식 입장은 아니라고 일단 선을 긋고 있다. TF 운영에 금감원이 자료 지원 등 도움을 주기는 했지만 권고안은 TF 위원들이 금감원 의견과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초안을 바탕으로 의견 수렴을 더 거쳐 다음달 중 확정안을 만들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금감원의 생각과 초안에 다른 점도 적지 않다는 게 금감원의 입장이다. 금융위의 행보도 변수다. 이날 권고안에는 금융회사지배구조법은 물론 은행법과 보험업법을 개정해야 하는 내용이 대거 포함됐다. 은행들이 부당금리를 부과할 경우 이에 대한 제재 근거를 만들도록 한 내용 등이 그 사례다. 금융위 입장에서는 ‘상급기관’인 금융위가 금감원의 지시를 받아 움직이는 못마땅한 모양새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실현 가능성을 떠나 권고안 내용을 받아본 금융권에서는 긴장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TF 활동을 직접 지시한 윤 원장이 향후 권고안을 실행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윤 원장이 지난해 금융위원회의 민간 자문기구인 금융행정혁신위원회를 이끌면서 못다 이뤘던 ‘금융 개혁’의 꿈을 이번 TF 활동을 통해 완수하려 한다는 전망도 나온다. 당시 윤 원장은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근로자 이사제 등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하자 주변에 섭섭한 마음을 여러 차례에 걸쳐 토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일범·손구민기자 squi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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