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혁용 대한한의사협회장은 12일 기자회견을 열어 “대한의사협회가 3년여 간 지속한 ‘한의정(韓醫政)협의체’를 일방적으로 폐기했다”며 “협의체가 논의해온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확대 법안을 국회에서 논의해달라”고 요구했다.
최 회장은 또 “만성질환 관리제, 치매국가책임제 등에 한의사가 참여하는 방안을 마련해달라”고 촉구했다.
최대집 의사협회장이 지난 10일 기자회견을 열어 “의한정(醫韓政) 협의체에서 나온 합의문은 절대 수용불가”라며 한의사 제도, 한의대 폐지 등을 주장하자 정면대응에 나선 것이다.
한의협과 의협은 보건복지부의 요구로 지난 2015년 ‘국민의료 향상을 위한 의료현안 협의체’를 꾸려 한의사·의사의 교육과정과 면허제도를 2030년까지 통합하는 의료일원화,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 허용 문제 등을 논의해왔다. 하지만 두 쟁점 모두 견해차가 커 오랜 기간 합의점을 찾지 못해왔다.
협의체는 다만 의료일원화에 대해 최근 “오는 2030년까지 의료일원화를 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합의문 안건을 도출했다. 그러나 합의안 중 ‘기존 면허자’에 대한 해석을 놓고 대립하면서 논의의 틀까지 깨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한의협에 따르면 합의안에는 “가칭 의료발전위원회를 만들어 기존 면허자에 대한 해결방안을 논의한다”고 돼 있다. 한의협은 기존 한의사와 의사의 면허통합에 일부 합의가 됐다고 해석했다.
반면 의협은 “교육과정이 통합된 이후 배출한 의사에 국한된다”고 봤다. 한발 더 나가 “한방은 국민 생명을 위협하는 전근대적 의료”라며 약침 사용중지 및 단속, 한방 건강보험 분리, 한의대 폐지를 주장하며 감정싸움을 촉발했다.
이에 한의협은 “의협이 역사 날조와 진실 왜곡으로 국민과 언론을 기만하고 있다”며 “우리나라 보건의료분야의 가장 고질화한 병폐는 양방의료계의 독점”이라고 맞받아쳤다.
의료일원화를 둘러싼 양측의 해묵은 논쟁이 볼썽사나운 감정싸움으로 치닫자 의료계 안팎에선 “3년만의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확진 환자 발생으로 공중보건에 비상이 걸린 시기에 국민 건강을 책임지는 전문가들이 앞다퉈 기자회견을 열어 상대방을 비방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고 볼썽사나운 행태”라고 비판했다.
협의체 내부에서 풀었어야 할 일을 외부로 공개하고 충돌을 선택한 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게 아니냐는 시각도 많다. ‘치료에 필요한 비급여 항목의 급여화’를 골자로 한 문재인 케어에 반대하면서 기존 건강보험 수가(酬價·의료서비스 가격)의 정상화, 즉 인상을 통해 ‘파이 지키기’ 투쟁을 벌여온 만큼 한의협과 대립각을 세우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건강보험 재정이 한정돼 있는 상황에서 한의계가 추진하는 한방 첩약에 대한 건보 적용,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확대, 의료일원화는 의사들의 파이와 기득권을 지키는데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임웅재기자 jael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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