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교수는 14일 서울 소공동 더플라자호텔에서 신산업경영원 주최로 열린 조찬강연회에서 현 정부의 정책결정자들을 기독교 원리주의자에 비유하며 유연한 정책 대응을 주문했다. 우리 나이로 올해 백수(白壽·99세)를 맞은 김 교수는 고(故) 안병욱 숭실대 철학과 교수, 고 김태길 서울대 철학과 교수와 함께 ‘국내 3대 철학자’로 꼽힌다. 지난해 탄생 100주년을 맞았던 윤동주 시인과 평양 숭실중학교 동기이기도 하다.
김 교수는 “지금 정부는 국가 권력이 경제나 사회 정책을 통제해야 한다는 국가주의에 빠져 있다”며 “경제 문제는 궁극적으로 기업가가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현 정부 정책결정자들의 모습은) 마치 기독교인이 성경 말씀을 원칙대로 따르느라 기독교 정신의 본질을 놓치는 것과 같다”며 “자신들이 알고 있는 공식만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운동권 출신인 현 정부 인사들이 지나친 원칙주의에 빠져 시장 상황에 맞는 유연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또 “경제에는 따로 국경이 없다”며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우물 안 개구리’에 비유했다. 그는 “요즘 정부의 경제정책을 보면 국내 이슈만 해결하면 모든 경제 문제가 풀릴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며 “우리나라 경제 문제를 풀려면 시야를 국제무대로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칠판에 찍힌 점이 아니라 칠판 전체를 봐야 하는데, 원로들조차 정부에 이런 얘기를 별로 하지 않는 것 같다”고도 했다.
과거 대통령들이 기업에 대해 너무 무지하다며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그는 “2004년 중남미 순방을 다녀온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청와대로 원로 학자들을 불렀다. 이 자리에서 ‘삼성·LG 제품이 그 먼 나라까지 나간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우리 기업의 글로벌 파워가 이렇게 큰지 정말 몰랐다’고 말하더라. 원로 학자들 사이에서는 ‘우리 대기업들이 글로벌 기업이 되기 위해 얼마나 뛰었는데, 그걸 대통령이 모르다니 경제가 너무 걱정된다’는 얘기가 돌았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손자가 넬슨 록펠러 부통령의 손자와 한 반에서 공부했던 일화를 소개했다. “록펠러 가문에서 자란 아이가 잔디 깎기 등 학교 아르바이트에 너무나 열심히 참여하는 것을 본 손자가 ‘넌 이미 부자인데 왜 이렇게 열심히 일하니?’라고 묻자 그 아이는 ‘아버지에게 받는 용돈은 다른 아이들과 비슷한데 난 그중 10분의1은 교회에 헌금을 내야 해, 그 돈을 채우려고 하는 거야’라고 했다”며 “록펠러 가문은 아이들을 저렇게 엄격하게 키우고 남은 것을 사회에 줬으니 얼마나 행복할까 싶다”고 말했다. 기업 경영으로 번 돈을 공동체와 공유하는 록펠러 가문을 우리 사회가 배워야 할 모범으로 제시한 것이다.
1980년대 학생운동에 몸담았던 제자들과의 일화를 언급하며 ‘경제적 평준화’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을 피력하기도 했다. 한 학생이 수업시간에 “선생님, 경제 문제에서는 빈부격차가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것 아닙니까”라고 물었다. 그는 “그럴 수도 있지만 다른 방향으로도 생각해보자”며 자신이 겪은 사례를 소개했다. 어느 추운 날 고등학교 동창이 좋은 차를 타고 지나가다 혼자 걸어가던 김 교수를 발견하고 차를 세웠다. 김 교수가 차에 올라타며 “내가 학교에 다닐 때는 공부도 더 잘하고, 성적도 좋았는데 넌 자가용을 타고 나는 걸어다니니 불공평한 세상”이라고 농을 건네자 그 친구는 “그럼 네 지식과 내 자가용을 바꾸는 게 어떻겠느냐”고 되물었다. 이에 김 교수는 “전 재산을 줘도 어림없는 소리”라고 진지하게 답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청중들에게 “경제적 평준화가 이뤄진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은 ‘좁은 생각’에 갇혀 있는 것”이라며 “개개인이 추구하는 가치는 이렇게 모두 다르다”고 말했다./김능현기자 nhkimch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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