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개발(R&D) 시스템 혁신방안은 고장이 난 테이프를 틀 듯이 똑같은 얘기가 계속 반복되고 있어요. 국가 R&D를 통해 사업화까지 연결하는 ‘RD&B(Research Development&Business)’ 시스템이 원활히 가동돼야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김명자(74·사진)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은 최근 서울 역삼동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가진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국가 R&D 혁신방안과 관련해 “정부 출연 연구기관이나 대학의 ‘장롱특허’가 70%를 넘고 사업화 비율도 매우 낮다”며 이같이 밝혔다.
내년 정부 R&D 예산이 20조4,000억원(계획)으로 55년 만에 1만배나 급증하며 급속한 양적 성장을 이뤘지만 이제는 연구 성과를 사업화하고 창의성을 끌어내기 위해 R&D 체계의 질적 도약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부처마다 R&D 예산을 기획·집행·관리하는 연구관리기관(총 19개)을 두고 적지 않은 예산을 쓰고 있지만 정작 기초연구 성과를 가시화해 경제 성과로 이끌어내는 지원체계는 크게 미흡하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가 기초연구 분야의 연구자 자유공모 과제에 대한 예산을 오는 2022년 2조5,000억원으로 문재인 대통령 임기 중에 두 배로 늘리기로 했지만 여전히 전반적으로 과제 선정이 연구자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정부 기획에 맞춰 이뤄지고 있다”며 “이래서는 자율성과 창의성 있는 연구가 되기 힘들다”고 말했다. 실제 출연연에서 인건비를 보충하기 위해 자잘한 공모 과제를 따야 하는 PBS(연구과제 중심 연구비 지원 시스템) 비중이 절반가량이나 돼 본연의 전략적인 기초·원천연구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그는 또 “10월 초면 ‘왜 또 노벨상을 못 받느냐’는 얘기가 쏟아질 텐데 기초연구는 축적의 시간도 필요하지만 ‘패스트팔로어(fast follower)’에서 벗어나 ‘퍼스트무버(first mover)’로 환골탈태하지 않으면 쉽지 않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김 회장은 기초·원천연구를 중장기적으로 꾸준히 추진하되 이제는 글로벌 경쟁 심화로 R&D 주기가 굉장히 빨라지고 있는 데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기초연구가 응용연구를 건너뛰고 바로 개발연구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R&D 사업화 지원체계가 여전히 낙후돼 있다”며 “자칫 국가 R&D 생태계가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 벤처 육성 등 혁신성장의 결실을 거두지 못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출연연의 행정인력과 대학 산학협력단이 각 연구실의 회계자료 등을 모으는 데 그치지 않고 연구비 관리부터 사업화까지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19개 연구관리 전문기관을 내년에 12개로 줄이기로 했지만 이와 동시에 ‘RD&B’ 지원 능력을 갖추도록 탈바꿈시켜야 한다는 얘기다.
김 회장은 “과거 출연연에서 반도체와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등의 기술을 개발했던 것처럼 국가 R&D로 다시 한번 도약의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며 “동시에 국민 삶의 질을 높여야 과학기술계에 힘이 모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김진수 전 서울대 교수(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가 유전자가위 특허를 불법으로 자신의 회사(툴젠)로 이전해 수천억 원의 이익을 봤다고 보도됐던데, 자칫 기초연구의 상업화가 위축될까 우려된다”며 “서울대 산학협력단에서 체계적으로 지원했다면 윈윈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수들과 출연연 연구원들이 무더기로 와셋·오믹스 등 해외 허위 학술단체에 참여해온 것에 대해서는 “반복해 참가한 연구자는 징계하고 사이비학회 데이터베이스화와 윤리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며 “국가 R&D 평가 시 논문 등 정량평가를 줄이고 연구비를 그해 소진하지 못했다면 이월해 쓸 수 있게 유연성을 줘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정부 조사 결과 와셋과 오믹스에 지난 2014년부터 서울대 99명, 연세대 82명 등 연구자 1,317명이 1,578회 참석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학 83곳, 출연연 21곳, 과기원 4곳이 연루됐다.
한편 지난해 2월부터 무보수로 과총을 이끌고 있는 그는 숙명여대 이과대학장을 지낸 뒤 김대중 정부 환경부 장관,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등을 거쳤다.
/고광본선임기자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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