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1일은 국군의 날이다. 올해는 건군 70주년을 맞이한 해이기도 하다. 필자가 국군의 날에 관심을 갖는 것은 청년 시절 사회로 첫발을 내디딘 곳이 국방과학연구소(ADD)였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한 후 국방과학연구소에 입사해 5년간 지대지(地對地) 미사일 기초설계를 담당했다. 고생도 많았지만 당시 연구자로서의 열정과 마음가짐은 40년에 가까운 연구생활을 지속시킨 힘이었고 미사일 시험발사에 성공하고 받은 기념패는 지금도 거실 한편을 장식하고 있다.
올 9월에 진수된 ‘도산 안창호함’을 보면서도 감회가 남달랐다. 도산 안창호함은 설계 단계에서부터 건조에 이르기까지 우리 기술만으로 만들어진 잠수함이기 때문이다. 40여년 전 미사일을 설계할 때를 떠올려보면 우리는 제대로 된 기술을 갖추지 못한 상황이라 미국이 버린 지대공(地對空) 미사일로 연구를 하고 이를 개량해 지대지 미사일을 만들 수 있었다. 이러한 노력들이 이어져 지난 1992년 잠수함을 처음 도입하고 26년이 지난 올해 드디어 국내 기술로 잠수함을 진수하게 됐다. 그만큼 우리의 국방기술력이 발전했다는 것이며 그와 함께 우리의 과학기술도 진일보했다.
한 국가의 과학기술 역량은 국방 과학기술력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미국의 경우 국가 연구개발(R&D) 예산 중 국방 연구개발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50% 이상이며 국방 선진강국들은 오래전부터 국방 연구개발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국방 과학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파급력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암호해독을 위해 만들어진 계산기는 지금의 컴퓨터로 이어졌고 미국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연구용 네트워크 기술로 개발한 ARPANet은 인터넷으로 확장됐다. 이외에도 전자레인지·내비게이션·로봇청소기 등 지금은 우리 일상 속에 들어와 있는 기술 중 국방기술에 뿌리를 두고 있는 기술이 많다.
국방 과학기술이라 하면 핵무기처럼 삶을 파괴시키는 기술로 생각하기 쉽지만 컴퓨터나 인터넷처럼 우리의 일상을 확장시키는 기술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처럼 국가 안보를 위해 만들어진 기술들이 경제는 물론 사회를 변화시키고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국방 과학기술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할 때다. 올 2월 평창동계올림픽 남북 공동입장에서부터 최근 5차 남북정상회담까지 한반도 평화를 위한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다.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두 정상은 한반도 전쟁위험 제거, 평화터전 조성 등 전쟁 없는 한반도를 약속했다. 70년간 얼어붙어 있던 남북관계에 평화의 씨앗이 움트고 있는 것이다.
이전의 국방 과학기술이 전쟁에서의 승리를 위한 것이었다면 앞으로의 국방 과학기술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데 의미를 둬야 할 것이다. 살상을 위한 기술이 아닌 국가 안보와 국민 안전에 초점을 맞추고 발전해야 하는 것이다. 현재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국방 과학기술들을 보면 이러한 시대정신을 반영해 변화해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드론으로 과거에는 정찰을 위해 적진으로 병력을 투입해야 했지만 드론의 개발로 무인정찰이 가능해지며 인명피해를 줄일 수 있게 됐다. 드론은 물류배송·스마트팜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자율주행차·로봇과 같은 기술은 화재나 원전사고와 같이 사람이 접근하기 힘든 재난상황에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국방 과학기술이 기업 등 민간으로 이어지고 국민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할 수 있도록 활용 가능성을 확대하는 것이다. 정부 출연 연구기관을 비롯한 많은 연구소들이 국방 연구개발에서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연구들을 진행하고 있다. 국방 연구개발 과정이 정부 출연 연구기관과 이어지고 그 결과가 기업과 민간으로 유입된다면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것을 넘어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한반도 평화 시대를 맞이해 국방 과학기술의 역할을 조금 더 확장시킨다면 우리에게도 큰 전환점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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