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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경기회복된다는데...일감부족에 6개월 버티기 힘들어"

■'조선 기자재 집적지' 부산 녹산국가산단 가보니

6월말 공장 가동률 63% 수준

전국 평균 80%에 크게 못미쳐

기술경쟁력 높은 업체도 폐업 위기

업황 회복 수혜 中·日만 누릴수도

부산시 강서구 녹산 산업단지에 위치한 선박용 기계제품 제조업체 오리엔탈정공의 본사 모습. 지난 2년간 전 세계적으로 조선 일감이 크게 줄면서 최근 조선 기자재 업체들이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올해 들어 조선 경기가 회복되고 있어 고비를 넘기면 향후 조선 기자재 업체들의 실적이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부산=고병기기자








# 지난 1일 기자가 찾은 부산 녹산 국가산업단지. 조선 기자재 업체들이 몰려 있는 부산 최대의 산단이지만 맑은 가을 날씨가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스산한 분위기였다. 산단 곳곳에 문을 굳게 닫은 공장이 가득했고 매물로 나온 공장을 알리는 전단지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최근 이동형 부산조선해양기자재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이 운영하는 녹산 산단의 ‘스타코’도 매물로 나와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하는 등 매각이 진행되고 있다. 부산에서 만난 조선 업계의 한 관계자는 “스타코는 부산 지역 조선 기자재 업체를 상징한다”며 “현재 조선 기자재 업체들의 어려운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조선 기자재 업체가 밀집한 녹산 산단의 6월 말 공장 가동률은 62.9%에 그쳤다. 이는 전국 산단의 평균 공장 가동률인 80.2%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지난 몇 년간 조선업 불황이 계속되면서 한계에 달한 조선 기자재 업체들이 늘고 있다. 일감 부족으로 실적이 악화하고 인력이 이탈하면서 한국 조선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는 데 크게 이바지했던 조선 클러스터의 기반이 하나둘 무너져내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지난 2년간 수주절벽을 맞았던 조선 업체들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마지막 고비를 넘기지 못할까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조선 기자재 업체들이 생존의 기회를 얻지 못한 채 이대로 무너지면 조선업 회복에 따른 수혜를 중국이나 일본 등 경쟁국에 고스란히 빼앗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조선 엔진 제조업체 선보공업의 최금식 대표는 1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난해는 일감이 줄어들면서 매출액이 줄어들고 원자재 가격 하락, 환차익 등 영업이익이 다소 늘었지만 올해는 원자재 가격까지 상승하면서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모두 줄어드는 등 더 어려워질 것”이라면서도 “올해 조선사들의 수주가 지난 2년 대비 크게 늘어나고 있어 향후 6개월 정도만 잘 버티면 내년부터 조선 기자재 업체들의 체감경기가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영국의 조선해운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8월 말 기준 전 세계 선박 수주량은 1,781만CGT(표준화물 환산톤수)로 지난해 같은 기간 수주량(1,482만CGT)을 웃돌고 있으며 2016년 한 해 물량(1,343만CGT)보다 많다. 선가도 회복세다. 클락슨 선가 지수는 지난해 3월 121.28포인트까지 떨어졌으나 올해 들어 상승세를 이어가면서 8월에는 129.45포인트까지 올랐다. 아울러 정부도 최근 조선해운 경쟁력 강화를 위해 현대상선을 통해 대형 컨테이선 20척을 발주한 바 있어 올해만 잘 버티면 조선 기자재 업계에도 다시 훈풍이 불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문제는 일시적인 일감 부족 현상을 견디지 못하고 글로벌 기술력을 갖춘 조선 기자재 업체들이 쓰러지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매각이 진행 중인 스타코도 주력제품인 해상 거주용 천장 패널을 비롯해 다수의 제품이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세계 일류상품으로 선정될 정도로 경쟁력이 있는 업체다. 스타코처럼 경쟁력 있는 조선 기자재 업체들이 문을 닫게 되면 조선업 전반의 경쟁력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최 대표는 “지금처럼 조선 기자재 업체들이 하나둘 사라지게 되면 당장 일감이 늘어나는 내년부터 조선사들이 자재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1차 벤더인 선보공업도 최근 2~3차 벤더들이 문을 닫으면서 자재조달이 원활하지 않다. 선보공업이 거래하는 2~3차 벤더들이 호황기에 비해 30~40% 정도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인력이탈도 문제다. 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조선 기자재 인력은 5만3,375명으로 2012년(6만 3,553명) 대비 1만명가량 줄었다. 조선업이 어려워지면서 아예 업계를 떠나는 인력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 기자재 업체들은 사무직은 물론이고 생산직도 구하지 못해 일을 하지 못할 형편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산업용 고무 등을 생산하는 조선 기자재 업체 명보TSR의 조시영 대표는 “3년 이상 신규 채용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며 “결원이 발생한 인력을 보강하는 차원에서 채용하고 있지만 업계를 떠나는 인력이 많아 원하는 수준의 인력을 뽑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조선 업계는 기자재 업체들이 수십년간 쌓아온 조선업 클러스터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정부와 금융권의 보다 적극적인 산업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어렵다는 소문이 퍼지면 금융권에서 당장 대출을 중단하다 보니 조선 기자재 업체들은 경영 악화에도 불구하고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근근이 버티다가 문을 닫고 있다”며 “정부와 금융권에서 기자재 업체를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부산=고병기기자 staytomorro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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