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폭락의 전주곡이었던 걸까. 지난 9일 국제통화기금(IMF)은 세계 경제전망을 내놓으면서 올해와 내년 세계 경제성장률을 3.9%에서 3.7%로 각각 낮췄다. 미국은 올해는 2.9%로 같았지만 내년은 2.7%에서 2.5%로 0.2%포인트 감소한다고 봤다. 우리나라 성장률도 올해 0.2%포인트, 내년 0.3%포인트 내렸다. 경기둔화가 빨라지고 있다는 얘기다.
11일 미국발(發) 증시 쇼크는 채권금리 상승과 기업실적 부진 우려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그 뒷면에는 미국경제의 지속 성장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이 자리 잡고 있다. 찰스 에번스 시카고연방은행 총재가 내년 미국경제 성장률을 2.5%로 내다본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 경제가 기침하면 우리는 몸살을 앓는다. 글로벌 경기의 버팀목이던 미국이 꺾이면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는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갈수록 격화하는 미중 무역분쟁에 15일 전후로 예정된 미국의 중국 환율조작국 지정이 겹치면 우리 경제는 벼랑 끝으로 내몰리게 된다. 여기에 고유가와 신흥국 리스크에 따른 외환시장 불안까지 더해질 경우 ‘메가톤급’ 충격이 올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미국 경기둔화는 우리에게 직격탄이다. 우리나라의 대미 수출 의존도는 12%다. 특히 대미 수출이 자동차와 석유화학, 반도체 같은 주력 업종에 집중돼 있다. ‘수출 둔화→투자 및 고용위축→경기하강’의 악순환이 나타날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미국의 중국 환율조작국 지정이 남아 있다.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미국이 다음 주께 발표할 환율보고서에서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경우 우리나라는 치명상을 입는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미국의 대중 추가 관세로 우리나라의 대미·대중 수출 감소액은 최대 13억6,000만달러(3차 품목에 25% 추가 부과 가정)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미중 상호 관세 부과에 따른 우리나라의 산업생산 감소는 32억6,000만달러에 달한다. 추가로 중국이 환율조작국에 지정돼 위안화가 강세를 보이면 수출이 줄어들고 경제성장률이 급락하게 된다. 올해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6.6% 안팎으로 추정된다.
고유가와 신흥국 리스크도 부담이다. 배럴당 80달러를 넘어선 유가는 100달러까지 치솟을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올 들어 아르헨티나에 이어 파키스탄이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데 이어 터키까지 흔들리면서 신흥국 불안이 점차 확산할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국내 상황은 더 갑갑하다. 금리부터 발목을 잡고 있다. 미국과의 금리 격차가 0.75%포인트까지 벌어졌지만 국내외 경제상황이 불안해지면서 한국은행은 금리를 올릴 수도 내릴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졌다. 문제는 금리 차이가 더 벌어지면 대규모 자금이탈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외환당국은 우리 경제가 버틸 수 있는 미국과의 기준금리 차이가 최대 1%포인트라고 보고 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미국 금리가 올라가 국내 금리와의 격차가 커지면 외국자본 이탈 우려가 커져 외환시장에 영향이 간다”고 했다. 대규모 자금이탈은 외환위기를 불러온다. 하지만 금리를 올리면 정체국면인 경기가 더 나빠질 수 있고 1,500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 문제가 터질 수 있다.
우리 경제의 기반인 제조업 경쟁력도 빠르게 쇠퇴하고 있다. 반도체는 공급 과잉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가 메모리 반도체 수요 다변화에 힘입어 3·4분기 매출 65조원, 영업이익 17조5,000억원을 올렸다. 하지만 메모리 가격 하락이 본격화하는 4·4분기 반도체 영업이익이 12조원 안팎으로 1조5,000억원 이상 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디스플레이도 살얼음판이다. LG디스플레이가 올 하반기 흑자 전환할 것으로 보이지만 내년 1·4분기에는 다시 적자로 전환할 전망이다. 증권가에서는 3·4분기 현대차의 영업이익이 1조원 정도로 전년 동기 대비 10% 이상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국산차에 대한 미국 정부의 관세 부과 여부도 변수다.
이 같은 상황을 반영한 듯 IMF 외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최근 우리나라 올해 성장률을 3.0%에서 2.7%로 낮췄고 아시아개발은행(ADB)은 3.0%에서 2.9%로 내렸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설비와 건설 투자 모두 감소세에 있고 고용도 부진하다”면서 “전반적인 경기 정체”라고 진단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 경기가 꺼지면 대미 수출과 중국 중간재 수출을 통한 간접수출이 영향을 받아 실물경기가 크게 위축될 수 있다”며 “비상조치 수준의 위기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종=김영필·한재영기자 박성호기자susop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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