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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공간이 된 여관...잠시 쉬었다 가세요

'통의동 보안여관' 11주년 기념전
서정주·이상·윤동주 등 숨결 담아
조각·설치·영상작품 기획 전시

예술공간이 된 여관...잠시 쉬었다 가세요
1930년대 여관으로 운영되다 지난 2007년부터 원형을 유지한 채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한 보안여관이 오는 25일까지 11주년 기념전 ‘아모르 파티’를 개최한다. /사진제공=통의동 보안여관

미당 서정주는 자서전 ‘천지유정’에 이같이 적었다.

“1936년 가을, 함형수와 나는 둘이 같이 통의동 보안여관이라는 데서 기거하면서 김동리, 김달진, 오장환 등과 함께 ‘시인부락’이라는 동인지를 꾸며내게 되었다.”

한국 최초의 문학동인지가 탄생한 곳은 다름 아닌 여관이었다. 경복궁의 서문(西門)인 영추문 앞쪽에 자리 잡은 ‘보안여관’은 넉넉하지 않던 시절 시인 이상과 윤동주, 화가 이중섭 등이 머물렀던 쉼터였다. 70여 년 여관으로 지냈으나 2004년 경영난으로 문 닫은 이곳을 2007년에 최성우(58) 일맥문화재단 이사장이 사들이면서 보안여관은 문화예술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제는 미술관 못지않은 묵직함을 갖게 된 ‘통의동 보안여관’이 11주년 기념전을 25일까지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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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다함 ‘객지 여덟 밤’ 중 일부.

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목욕탕 표지를 간판처럼 내건 낡은 벽돌건물. 쉽게 열리지 않을 것만 같은 현관문 옆 창으로 사자나 코끼리처럼 보이는 기괴한 형상의 작품이 먼저 보인다. 작가 권용주는 도심재개발로 2009년 동대문구 휘경동 작업실에서 쫓겨난 뒤로 공사장 부산물로 조각과 설치작품을 만들며 “조각적 형태를 고민중”이다. 북청사자놀음이라도 출 법한 작품 앞에서 무분별한 도시 재생이 ‘기형’을 양산할 수 있다는 경고가 느껴진다. 고개 들어 2층 창문을 보면 거대한 바위 같은 것이 건물을 부술 듯 밖으로 부풀어 있다. 백현주 작가의 PVC소재 풍선 작품인 ‘오늘의 주인’은 “도심에 남겨진 다양한 미래 유산적 산물들을 다시 관찰하고 해석해 사라지는 공간의 또다른 가치”에 대해 얘기한다. 꼭 이곳 ‘통의동 보안여관’처럼.

벽지는 커녕 벽도 뜯긴 1층 전시장에서 만나는 무진형제의 영상작품 ‘풍경’은 관람객을 현실 넘어 딴세상으로 보내버린다. 무진형제는 각각 문학·조소·사진을 전공한 3남매로 이뤄진 협업작가들이다. 삐걱거리는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공공미술프로젝트로 유명한 박찬국의 ‘망한도시개발전문’을 볼 수 있고,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작가상 수상작가인 믹스라이스의 영상작품도 만난다. 냉장고나 바나나를 묻고, 파내는 믹스라이스의 3채널 영상작품은 “존재의 일부와 기억들을 땅에 묻고 다시 파내는 것”을 이야기한다.

예술공간이 된 여관...잠시 쉬었다 가세요
믹스라이스의 영상작품 설치 전경.

여다함 작가는 ‘낯선 공간에서 자는’ 여관의 정체성을 반영한 30분짜리 체험형 작품을 선보였다. 보안여관의 여러 틈새가 문양처럼 새겨진 이불을 들추고 침대에 드러누우면 뒤척일 때마다 울리는 방울소리와 함께 ‘객지에서 꾸는 꿈’을 깬 정신으로 경험할 수 있다.

이번 11주년 전시 제목은 ‘아모르파티(Amor Fati)’. 요즘은 가수 김연자의 노래 제목으로 더 유명한 ‘아모르 파티’는 원래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운명에 대한 사랑으로 꺼냈던 말이다. 주변 서촌 상권의 임대수익 등을 감안하면 건물을 다시 짓고 장사를 했어야 할 이 보안여관이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것이 “필연적 상황에 긍정하며 새로운 창조성을 발휘할 때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 나갈 수 있다는 사상과 닿아있다”는 것이 송고은 보안여관 큐레이터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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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 전시 ‘여관전설’ 전경.

그래서 눈여겨볼 것이 보안여관 옆 건물인 신관 2층에서 열리는 아카이브 전시다. 보안여관의 역사를 파헤쳤더니 18세기 후반까지 이곳을 포함한 통의동 반경 2.5㎞는 추사 김정희의 집이었다. 이후 영추문을 통해 궁에 드나드는 사람들의 대기소 격인 대루원, 기상청인 관상감이 있었다는 것은 문화재청 발굴조사로 확인됐다. 1895년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매동초등학교가 들어서 1933년까지 이곳에 있었다. 매동 출신의 소설가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 이 골목이 등장하는 이유다. 여관이 지어진 것은 서정주의 글에서 전해질 뿐이었으나 지난 9월 전시 준비를 위해 폐쇄 등기부등본을 뒤지고 ‘경성상공명부’를 조사한 결과 소화13년인 1938년에 통의동 3번지의 보안여관에서 세금 31원을 낸 기록이 강영조 동아대 조경학과 교수에 의해 발견됐다. ‘박정희 할머니의 행복한 육아일기’를 쓴 박정희 씨에게는 1940년대 ‘위안부’ 강제징집을 피해 결혼 맞선을 보러 수박색 한복치마를 입고 인천에서부터 찾아왔던 곳이요, 1970년대 문화공보부 등에 근무했던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에게는 당시의 정책들이 생산되던 “한국의 근대화와 산업화의 요람이었고 산실”로 기억되는 곳. 최성우 보안여관 대표는 “동시대 미술기관으로 10년을 보냈으니 이제는 앞으로 쌓아올릴 새로운 문화 지층에 주목할 때”라고 말했다.
/글·사진=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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