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중순 미래에셋대우(006800)·NH투자증권(005940)·한국투자증권 등 국내 대형 투자은행(IB) 4곳과 연기금 소속 부사장급을 포함한 핵심 임원 20여 명이 단체로 미국 라스베이거스를 방문했다. 라스베이거스에 짓고 있는 초대형 리조트 ‘더 드루 라스베이거스(이하 더 드루)’에 약 4조원 규모의 투자를 검토하기 위해서다. 단일 부동산 투자에 서로 다른 금융기관의 임원들이 공동으로 실사에 나서는 것은 이례적이다.
‘더 드루’는 라스베이거스의 중심가인 더스트립(The Strip)에 10년 만에 공급되는 대규모 복합 리조트 사업이다. 연면적은 80만 3146㎡로, 지상 68층의 5성급 호텔이 들어선다. 미국 3대 컨벤션인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와는 다리로 연결된다. 준공일은 2021년 4월로 예정돼 있다.
이번 실사단을 이끈 NH투자증권과 미래에셋대우는 더 드루 프로젝트 파이낸싱(PF) 금융주선을 맡았다. 국내 금융기관이 미국 내 대규모 리조트 개발사업의 주관사로 참여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NH투자증권과 미래에셋대우는 초기 사업에 필요한 단기 대출인 1억5,000만달러(약 1,700억원) 규모의 브릿지론을 주선한다. 내년 말에는 JP모간, 골드만삭스와 함께 32억달러(약 3조6,000억원)규모의 본 PF에 공동 주관사로도 참여할 예정이다. 표면적으로는 JP모건 등이 대표 주선을 하지만 주요 투자자가 모두 국내 기관인 만큼 NH투자증권과 미래에셋대우가 사실상 주된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번 투자에 국내 IB업계가 대거 나선 것은 주식 등 전통적인 자산 수익률이 떨어진 반면 오랜만에 해외 대체투자 영역에서 대형 투자 물건이 나왔기 때문이다. 대형 증권사는 올해 국내 주가 하락으로 트레이딩 수익이 크게 떨어지며 대체투자로 메워야 하는 형편이다. 특히 글로벌 부동산 시장 큰 손인 위트코프 그룹(Witkoff)이 이번 개발을 진행하면서 이들과 손잡으려는 업계 관계자들이 실사 대열에 동참했다. NH투자증권은 과거 위트코프 그룹과 거래한 경험을 토대로 이번 금융주선을 맡았는데 실사에 참여한 투자자들은 대부분 브릿지론을 제공하면서 본 PF 참여를 기대하고 있다. 실사단은 스티브 위트코프 회장과 만났고 위트코프 회장도 투자유치를 위해 한국을 찾는 등 이해가 맞아 떨어지고 있다.
지금은 국내 IB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지만 이 프로젝트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아 지난 10년간 두 차례나 손바뀜을 겪은 아픈 이력도 갖고 있다. ‘기업 사냥꾼’으로 잘 알려진 행동주의 투자자 칼 아이칸의 손을 거쳤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미국 뉴욕의 주요 대형 금융사들은 금융위기 직전인 2004년부터 2008년까지 라스베이거스 지역에만 11억달러(1조2,000억원)규모 부동산 PF 대출을 집행했다. 그러나 2008년 9월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한 이후 미국 전역에서 대규모 개발 사업을 진행하던 건설사들도 줄도산했다. ‘더 드루’의 전신이던 라스베이거스 퐁텐블로 리조트(Fontainebleau Resort)도 2007년부터 건설을 시작했지만 2009년 파산했다.
2009년 칼 아이칸은 파산 상태에 있는 라스베이거스 퐁텐블로 리조트를 1억500만달러(약 1,180억원)에 매입했다. 당시 이 프로젝트에는 약 2조2,500억원이 투입된 상황이었는데 아이칸은 5% 수준에 불과한 돈으로 사업 전체를 인수했다. 7년간 사업을 운영한 아이칸은 지난 2017년 여름 위트코프 그룹에 6억 달러(약 6,800억원)에 처분해 4배가 넘는 수익을 남겼다. 2007년부터 2년 만에 완공을 계획했다 13년짜리 프로젝트가 된 사업에 국내 투자업계가 마지막 3년을 책임지는 셈이다. /조윤희·임세원 기자 choyh@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