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천(Annie Chun’s)’.
미국에 관심을 갖는 국내 식품업체라면 어디나 한 번쯤은 이 식품 브랜드를 들어봤을 정도로 애니천의 브랜드 파워는 막강하다. 애니천은 완전한 한식 브랜드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현지화된 한식을 주로 파는 곳이다. 식품 대기업 CJ는 지난 2005년 미국 식품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애니천을 608만달러에 인수해 지금까지도 브랜드명을 유지하고 있다. 애니천을 매각한 뒤 국내산 유기농 김을 미국 현지에 알리는 새로운 회사 ‘김미스낵’을 차린 애니 전 대표를 최근 전화로 인터뷰했다. 애니천의 ‘천’은 그의 한국 성씨인 ‘전’의 영어 발음이다.
그가 애니천을 창업한 것은 27년 전이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미국 현지에 한식이라는 개념은 전무했다. “1991년 우연히 동네 이웃과 저녁을 먹다가 쌀밥도 지을 줄 몰랐던 그 백인 이웃이 ‘파머스 마켓(LA에 위치한 전통시장)’에서 아시안 소스를 팔고 있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추수감사절 때 태국식 소스 등을 팔며 사업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어렸을 때 이민 온 후 코리아타운 등이 아닌 미국인 사회에서 자란 그는 한국 음식을 전혀 만들지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 경험은 그가 한식을 미국인 주류 사회에 맞게 현지화하는 데 도움을 줬다고 한다. 그는 어렸을 때 어머니가 해준 음식에 대한 기억을 갖고 2004년 론칭한 ‘누들숍’에서 김치 수프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애니천이라는 브랜드가 알려지기 시작하자 미국 내에서 한식 전진 기지를 찾고 있던 CJ에서 관심을 보였다. 전 대표는 “2005년부터 CJ에서 함께 일하게 됐는데 CJ에 다양한 현지화 전략을 공유했다”며 “햇반 안에 김을 넣는다거나 고추장 소스를 미국식의 달콤한 초고추장처럼 바꾸고 만두를 중국의 완탕, 일본의 교자와 차별화하는 아이디어를 제공했다”고 말했다.
그는 3년간 CJ와 함께 일한 뒤 3년간은 아이를 돌보는 등 휴식을 가졌다. 그리고 다음 사업 아이디어를 구상했는데 그때도 한식을 선택했다. 한국을 찾아 평소 관심을 가졌던 인삼·소주·김 업체를 찾아다니며 사업을 구상했다. 하지만 인삼은 정관장 등 대형 업체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주류에는 자신감이 없었다. 김이 눈에 들어왔다. CJ를 떠나기 전까지도 애니천 상표의 김을 만들며 김을 좋아했던 자신이 떠올랐다. 그는 “애니천 상표를 단 김이 잘 팔리고 있었고 애니천보다 한 등급을 업그레이드해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2011년 당시만 하더라도 국내에 ‘친환경 김’을 생산하는 곳은 있었지만 세계적으로 통하는 ‘유기농 김’을 생산하는 곳은 많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 대표는 경기도부터 전라도까지 이틀간 12~15개 업체를 방문한 후 뜻이 맞는 업체를 선정해 미국 내 유기농 인증 기관에서 면허를 따는 전 과정을 도왔다. 미국 내에서 ‘비(非)GMO 인증’을 받은 김 업체는 이곳이 처음이었다. 이후 2012년에 제품을 론칭했고 현재 미국 최대 유기농 마켓인 ‘홀푸드마켓’ 내 기능성 스낵 1위를 달리고 있다.
그는 한식의 위상이 많이 올라갔지만 아직 미국에 진출한 국내 식품기업 가운데 완벽한 현지화를 하지 못하고 실패하는 경우가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미국 내 주류 유통업체들의 기준이 까다로워 납품이 짧게는 1년부터 길게는 5년 이상 걸리기도 한다”며 “그럼에도 싼 가격으로 덤핑하기보다 홀푸드마켓처럼 밀레니얼 세대들이 주로 찾는 곳을 노크해야 미래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어 “궁극적으로 한국 물건이되 미국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제품을 팔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 대표는 “제품에 어느 정도 정통성을 유지하되 트렌드를 파악하고 제품 가치를 소비자들에게 잘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도 강조했다.
/변수연기자 dive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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