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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생존리포트 ③정치] 국민 안중에 없고 이해집단 눈치보기 급급...'정치 불신' 커져

■권력구조 수술·정치개혁...지금이 '골든타임'

막말·갑질에 의정활동 소홀...국회 신뢰도 1.8% '꼴찌'

적대적 대립 고착화...개혁 외면·前정부 정책 뒤집어

"사회갈등·불신 조장하며 되레 국가발전 걸림돌" 지적





미국의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지난 1995년 자신의 저서 ‘트러스트’에서 한 국가의 경쟁력은 그 사회가 지니고 있는 신뢰 수준에서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신뢰 수준이 높은 사회는 계약이나 거래에 관한 불신 비용이 적어 효율성이 높아지는 반면 신뢰가 부족한 사회는 위험회피 비용이 늘어나면서 경쟁력을 갉아먹는다는 설명이다. 결국 선진국과 후진국을 구분 짓는 결정적 차이는 신뢰에서 비롯된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대표적 ‘고(高)신뢰사회’로 미국과 일본·독일을 꼽았고 반대로 한국과 중국·이탈리아를 ‘저(低)신뢰사회’로 규정했다.

그로부터 24년이 흐른 2019년 대한민국의 신뢰도는 얼마나 개선됐을까. 지난해 갤럽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국민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국의 정부 신뢰도는 36%로 34개국 중 25위에 그쳤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정권교체를 거치면서 2017년보다는 순위가 올랐지만 OECD 평균(45%)에 비하면 여전히 한참 뒤처지는 수치다. 더 충격적인 것은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뿌리 깊은 불신이다. 리얼미터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국가사회기관 신뢰도 조사에서 우리 국민들은 대통령(21.3%)과 시민단체(10.9%), 대기업(6.9%) 등을 신뢰한 반면 국회는 1.8%로 전체 조사대상 기관 가운데 ‘꼴찌’의 불명예를 안았다. 심지어 또 다른 여론조사에서는 우리 국민들이 ‘처음 만난 사람(3.19점)’보다도 ‘국회(2.40점)’와 ‘정치인(2.27점)’을 더 믿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회의 불신을 해소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정치가 오히려 불신 사회를 조장하면서 국가 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되풀이되는 ‘막말’·‘갑질’…국민 위에 군림하는 정치인=“쳐봐라” “한주먹도 안 되는 게.” 시정잡배들끼리나 나눴을법한 이 대화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대한민국 국회의 여야 정치인들이다. 지난해 11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 도중 벌어진 여야 의원 간의 설전은 주먹다짐 직전까지 가며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정치인의 막말은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지난해 말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장애인 비하 발언으로 곤욕을 치른 데 이어 같은 당 손혜원 의원은 청와대의 적자 국채 발행의혹을 제기한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을 겨냥해 저주에 가까운 악담을 퍼부었다. 막말 대잔치에는 야당도 예외가 아니다. 정태옥 전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부망천(이혼하면 부천 살고 망하면 인천 산다)’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키며 결국 당을 떠났고 장제원 의원은 경찰을 ‘미친개’에 비유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고개를 숙였다. 바른사회시민회의가 지난 19대 국회 회의록 검색시스템과 주요 일간지·방송 및 통신기사를 분석한 ‘국회의원 막말 현황’에 따르면 한 차례 이상 적절하지 못한 발언으로 논란이 됐던 의원은 무려 73명에 달했다. 국회의원의 ‘갑질’ 논란도 여전히 근절되지 않는 구태다. 김정호 민주당 의원은 공항 직원을 상대로 한 갑질로 국민들을 분노하게 했고 민경욱 한국당 의원은 지역주민에게 인사를 건네다 돌아서서 침을 뱉은 사실이 알려지며 구설수에 올랐다. 의정활동은 뒤로 한 채 해외로 떠나는 일부 의원들의 행태 역시 정치불신을 유발하는 요인이다. 위험의 외주화를 막는 일명 ‘김용균법’과 ‘유치원3법’ 등 민생법안의 국회 통과 여부에 국민적 관심이 쏠렸던 지난해 12월27일 일부 한국당 의원들은 본회의에 불참하고 베트남으로 외유성 출장을 떠났다가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이처럼 되풀이되는 정치인의 구태는 정치 혐오의 주범이 되고 있다.



◇정권 입맛따라 뒤집히는 정책…지지층 눈치 보기 급급=정권이 바뀔 때마다 손바닥 뒤집듯 폐기되거나 수정되는 정부 정책도 정치불신을 고착화하는 또 다른 원인이다. 이명박 정부는 집권 이후 전임 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정책을 모두 백지화했고 박근혜 정부도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정책을 사실상 폐기했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탈원전정책이라는 미명 아래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축적한 원전경쟁력을 후퇴시키고 있다. 또 오랜 논란 끝에 전임 정부에서 김해공항 확장으로 매듭지어진 동남권 신공항 건설계획을 뒤흔들려는 움직임이 최근 여권을 중심으로 일고 있다. 대한민국 정책의 수명은 고작 5년에 불과하다는 비아냥을 듣는 이유다. 서울경제신문 펠로(자문단)인 최창렬 용인대 교육대학원장은 “정치권에서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다 보니 지지층 결집을 위해 계층 간 대립을 유도하고 전임 정부의 정책을 뒤집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념과 정파를 넘어 국가의 백년대계를 그려야 할 국회가 시민단체나 노동조합·이익단체의 눈치를 보는 데만 급급한 점도 국민을 등 돌리게 하는 이유다. 실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각종 규제개혁 법안은 일부 시민단체의 반발에 부딪혀 수년째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그러자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지난 7일 국회를 찾아 “4차 산업혁명의 변화가 일고 있는데도 정치권이 져야 할 십자가를 외면하고 있다”며 “정치인이라면 누구의 편을 들기보다는 책임감을 갖고 상대방을 설득해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이 같은 정치에 대한 실망감은 결국 국민들의 정치불신과 혐오를 굳히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최 원장은 “사회갈등과 분열을 조정·관리해야 할 정치권이 권력쟁취에 매몰돼 적대적 대립관계를 고착화하면서 오히려 사회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며 “이렇게 쌓인 정치불신은 결국 국가경쟁력 저하로 이어지면서 국민 삶의 질을 떨어뜨리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현상기자 kim0123@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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