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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기칼럼] 사회적 대화의 오해와 진실

민노총 결국 경사노위 참여 거부는

양보와 책임 대신 투쟁 선언한 셈

노동현안 사회적타협 미련 버리고

차라리 정치적 타협으로 접근하길

한림대 경영학부 객원교수·전 한국노동연구원장





문재인 정부가 출범 초부터 속을 끓여오던 민주노총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는 사실상 무산됐다. 대화 테이블에 갈지 말지를 두고 20여년간 찬반을 다퉈왔다는 사실이 신기할 정도지만 이 문제는 지도부의 진퇴를 위협할 정도로 계파 갈등의 뇌관이 돼 있다. 민주노총이 지난 1999년 2월 대의원대회에서 당시 노사정위원회 탈퇴를 결의한 후 온건 집행부가 들어설 때마다 여러 차례 대화 참여 시도가 있었지만 매번 반대파의 저항을 뚫지 못했다. 이번에는 그나마 폭력사태 없이 투표로 찬반을 가릴 수 있었다는 점에서 진일보했다. 김명환 집행부도 혼신의 힘을 다했지만 지도부 불신임으로 비화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처지가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다른 어느 정권보다 더 사회적 대화의 정상화에 공을 들였고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도 대화 참여가 투쟁 포기는 아니라며 민주노총을 설득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반대파들이 경사노위 참여를 거부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정부 정책에 들러리 서지 않겠다는 것이지만 속내를 따져보면 대화 테이블에 묶여 있으면 대정부 투쟁심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이뿐만 아니라 대화와 타협에는 양보와 책임이 따른다는 점도 이들에게는 큰 부담이다. 차라리 자신들의 요구를 쟁취할 때까지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나서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들의 속내를 꿰뚫어보고 비겁한 리더들과는 타협이 안 된다고 판단했다. 이제 민주노총의 사회적 대화 복귀는 완전히 물 건너간 얘기가 됐다.

정부도 미련을 버려야 한다. 할 만큼 했기 때문에 아쉬워할 것도 없다. 더 나아가 경사노위를 통한 사회적 대타협 구상도 대폭 수정해야 한다. 얼마 전까지 정부 일각에서 검토했던 탄력근로와 최저임금의 제도개편 문제를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비준과 관련된 법 개정과 하나로 묶어 사회적 타협을 추진하겠다는 구상은 하루빨리 포기하는 게 좋다. 그리고 경사노위는 이 기회에 법이 정하고 있는 사회적 대화기구 본연의 기능을 대폭 강화하기 바란다. 법에 따르면 경사노위는 대통령 정책자문기구인 동시에 노사가 고용노동 관련 정책에 대해 상시적으로 정부와 협의할 수 있는 정책협의 기구이다. 정부 정책만을 수동적으로 협의하는 구조가 아니라 노사 누구라도 원하는 의제를 대화 테이블에 올릴 수 있다. 모든 의제에 대해 노사가 합의를 요구할 권한도 없지만 의무도 없다. 긴밀한 협의를 거쳐 합의까지 가면 좋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긴밀한 정책협의는 그 자체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지식을 공유하고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하며 폭넓은 공론화를 통해 일반 국민과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점은 사회적 대화의 본질적 효능이기도 하다.



합의가 필요한 긴요한 의제가 있다면 별도의 협상 테이블을 구성하면 된다. 1998년의 사회적 대타협이 바로 이런 예에 해당된다. 90개항에 이르는 합의서는 노사정 대표들 간의 협상 테이블에서 만들어졌다. 유럽의 많은 나라들도 대화기구와 합의기구를 분리해 운영한다. 불행하게도 지난 20년간 모든 정권이 출범 초기에 유행처럼 ‘일자리 대타협’을 정치적 성과로 활용하면서 경사노위는 타협만을 위한 기구로 오해를 사게 됐을 뿐이다. 문재인 정부가 이러한 대타협 중독에서 벗어나 사회적 대화의 정상화에 매달렸다는 점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앞으로 탄력근로나 최저임금, ILO 협약 관련 법 개정안에 대해 합의가 되면 좋지만 안 되더라도 대통령은 그동안의 논의 결과를 보고받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입법 갈등에 정면 대응하지 않고 무리하게 노사합의로 무마하려는 것은 마치 국가가 감당해야 할 결정의 부담을 노사에 떠넘기는 꼴이다. 노동법 개정을 위해서는 양 노총에 공을 들이기보다 야당 특히 정의당과 대화하고 타협하는 편이 더 빠르고 실속도 있다. 지금은 사회적 대타협이 아니라 정치적 대타협이 더 유용한 수단으로 보인다.

경사노위는 정책협의를 강화하기 위해 보다 대담한 정책과제들을 다루면 어떨까. 예를 들면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고용안전망의 대폭적인 확충이나 노동시장 이중구조개혁을 위한 공정임금체계 확립, 그리고 갈수록 현실로 다가오는 주력 제조업의 구조조정에 대비하고 은퇴를 앞두고 있는 현장 숙련 고수들의 활용을 위한 일터혁신 방안 등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고 협력할 수 있는 과제들에 집중하면 좋겠다. 이미 지난 일이 됐지만 최저임금의 고용 효과와 경제적 파장에 대한 중구난방 소란 속에서도 경사노위는 공론을 모으기 위해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는 점을 되새기며 사회적 대화 본연의 기능을 더 활성화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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