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그룹에 대한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 지침) 적용을 두고 지난 몇 개 월간 논란 끝에 국민연금이 내린 선택은 한진칼의 ‘정관 변경’이었다. 당초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국민연금이 경영 참여를 통해 탈법과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킨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등 사주 일가를 대한항공과 한진칼 대표이사에서 물러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반면 재계와 학계에서는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적용은 정부의 입김이 기업 경영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연금 사회주의’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놨다.
기금운용위가 진영 싸움으로까지 번진 스튜어드십 코드 논란을 의식해 경영 참여는 하되 최소한으로 범위를 좁히기 위해 ‘상징적’ 의미의 결론을 도출해낸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논란을 키운 것은 애당초 정부였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산하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가 첫 회의를 열었던 지난달 23일 보건복지부는 회의 결과를 찬반으로 나누어 발표했다. 당시 지분율이 11.56%에 달하는 대한항공에 대한 경영 참여에 반대가 7명, 찬성이 2명이었다. 지분율이 7.34%라 매매차익을 반환하도록 하는 ‘10%룰’ 피할 수 있는 한진칼에 대해서는 반대가 5명, 찬성이 4명이었다는 것이다.
당시 반대의견을 냈던 수탁자책임위의 근거는 10%룰과 상법 등 관련 제도가 아직 갖춰져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대한항공의 경영에 참여할 경우 6개월 내의 단기 매매차익을 반환해야 하는 만큼 가뜩이나 낮아진 수익률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복지부가 금융당국인 금융위원회에 10%룰의 예외로 적용해달라는 유권해석을 여러 차례 요청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상법상의 규정도 넘어야 할 난제였다. 국민연금이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하려고 해도 실현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우선 상법상 정관 변경이나 이사 해임 등은 특별결의 사항이다. 출석한 주주의 의결권의 3분의2 이상과 발행주식 총수의 3분의1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더욱이 이사 해임 안건의 경우 이사회가 이를 부결시킬 수 있다. 3월 있을 주주총회에서 표를 확보한다고 해도 조 회장이 장악한 이사회를 넘지 못할 게 분명한 상황이다.
문제는 문재인 대통령이 당일 수탁자책임위 회의가 끝난 직후 열린 공정경제전략추진회의에서 “대주주의 탈법과 위법에 대해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고 발언했다는 점이다. 수탁자책임위가 경영 참여에 부정적이라는 결론을 내놓은 상황이었던 만큼 사실상의 가이드라인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수탁자책임위에서도 반발이 나왔다. 찬반 의견이 갈린 게 아니었음에도 복지부가 무 자르듯이 이를 나눴다는 것. 수탁자책임위가 29일 2차 회의를 통해 기금운용위에 요청한 보고서를 확정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국민연금이 구색 맞추기 식으로 경영 참여 수단을 정관 변경으로 결정한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복지부는 이날 기금운용위의 결정을 두고 “최소한의 상징적 경영 참여 주주권을 행사함으로써 오너 리스크를 해소하고 주주 가치를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
반면 재계는 한진칼을 시작으로 향후 국민연금의 경영 ‘간섭’이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전무는 “이번 국민연금의 경영 참여 결정이 선례로 작용해 경제계 전체로 확산하면 기업 활동을 더욱 위축시킬 수 있다”며 “(그렇게 되면) 투자나 일자리 창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학계에서도 여전히 반대 목소리가 높다. 특히 스튜어드십 코드의 경우 오는 2020년 완전 도입을 목표로 현재는 기금운용위가 의결하는 경우에만 적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현행법상 국민연금의 투자 범위는 여전히 재무적 투자로 한정돼 있다. 더욱이 기금운용위는 여전히 정부의 입김이 강한 상황. 20명의 위원 중 당연직 위원을 포함한 정부 측 표만 8표에 달한다. 실제로 이날 한진칼에 대한 합의는 20명 위원 중 12명만 참석해 합의 방식으로 이뤄졌다. 반대 의견을 가진 위원들이 참석해 표 대결을 벌였을 경우 부결될 가능성도 있었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전 기금운용위원)는 “이사 해임이든 정관 변경이든 경영 참여인 것은 마찬가지”라며 “기금운용위에서 특정 기업의 주식에 관해 논의하는 것을 비롯해 재무적 투자의 범위를 넘어서는 경영 참여를 결정하는 것은 아직은 불법적 행위라고 볼 수 있다”고 비판했다.
/김상훈기자 ksh25t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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