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임금체불·상사 갑질에 '이기는 경험' 만들어야"

[그들이 사는 세상] 직장갑질119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부당 탈락 사건에 법률 지원

누구나 경험 가능한 부당한 일, 흐지부지되면 반복돼

상담·법률지원 통해 반복돼온 부당 행위 근절해야

세상을 바꾸는 건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라고 생각합니다. 강서 PC방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대중들의 공분이 심신미약에 따른 감경 조항을 의무에서 선택으로 바꿨습니다. 직장 내 ‘을’이 목소리를 내 갑질을 제보하면서 직장 내 갑질 금지법이 국회를 통과하기도 했습니다.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곳곳에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최혜인 직장갑질119 노무사가 지난 8일 서울 중구 사무실에서 단체의 활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제공=직장갑질119




지난해 12월 31일 의정부시에서 계약직으로 수년간 근무해온 40대 중후반 여성 5명이 한꺼번에 해고됐다.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정부의 방침과 달리 의정부시에서 제한경쟁 채용 방식을 적용한 데 따른 결과였다.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이들에게 의정부 측은 정부의 지침이 발표한 시점에 우연히 근무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은 불공정해 경쟁을 거쳐 우수한 사람들을 뽑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회사의 설명과 달리 현장에서는 최종 합격자들이 1년여가량 단기간 도서관에서 근무했고 공무원 관계자의 가족, 지인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도서관에서 5~6년간 근무해온 이들이 ‘직장갑질119’의 도움으로 지난달 구제신청을 접수한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직장갑질119의 최혜인 노무사는 최근 서울 중구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오는 3월에 심문회의가 잡혀 있다”며 “이분들의 구제 신청이 받아들여져 회사로 복귀되는 게 올해 저의 목표”라고 말했다.

직장갑질119는 직장 내 갑질, 부당행위 등으로 인한 피해자를 지원하는 시민단체다. 2017년 11월 처음 결성됐다. 최 노무사는 직장갑질119가 채용한 첫 전담 노무사다. 첫 전담 노무사인 만큼 공익적 의미가 담긴 사건을 지원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공공 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탈락된 사건을 지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 노무사는 의정부 건 외에도 수원시에서 일하던 통합사례관리사가 부당해고된 사건도 진행하고 있다. 그는 “함께 일하던 다른 직원들은 다 정규직으로 전환됐지만 통합사례관리사 이 분만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해고됐다”며 “이미 국선노무사를 통해 진행한 초심에서 진 상태였지만 재심부터는 지원해서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그는 노동자의 이야기를 듣고 구체적으로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 첫 직장으로 ‘직장갑질119’를 선택했다. 그만큼 직장갑질119는 생생한 노동 문제들이 넘쳐나는 한국 노동의 최전방이기도 했다.

출범한 지 이제 갓 1년이 지났지만 단체에 상당한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각종 부당지시, 괴롭힘 등 제보들이 알려지면서다. 상사의 흰머리를 뽑기 위해 출근 시간보다 40분 일찍 도착해야 했다는 사연, 대표가 먹고 난 짜장면 그릇에 소주와 맥주 등을 섞은 뒤 여직원에게 마시기를 강요하는 사연 등이 공개돼 화제가 됐다.

“양진호 건처럼 엽기적인 제보도 있지만 대개 임금 체불과 같이 누구나 경험 가능한 일들이 제보로 많이 들어와요. 이제까지는 이런 이야기를 듣는 창구가 없었고 이런 목소리가 모이는 경험도 없었죠. 직장갑질119가 생기고 제보가 쌓이면서 주목을 받게 된 거라고 생각해요”

직장갑질119 관계자들이 지난해 10월 국회 정론관에서 ‘갑질금지법’ 국회 조속 통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최 노무사의 말처럼 소통의 창구를 열어주면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모임들도 결성되기 시작했다. 직장갑질119에서의 인연을 시작으로 한림성심병원 간호사, 방송계 비정규직, 보육교사, 콜센터 노동자, 반월시화공단 근로자, 중소병원 근로자, 대학원생 등이 모임을 결성해 부당 행위 등에 대해 상담 및 법률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그동안 직원 수가 얼마 되지 않은 영세한 기업이라, 노조가 없어서 등 다양한 이유로 부당 행위를 견뎌야 했던 근로자들이 직종별로 모여 목소리를 낼 창구를 만드는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직장갑질119는 법·제도 개선에도 목소리를 내고 있다. 오는 7월부터 시행될 ‘직장 내 괴롭힘방지법’에 대응해 현장에서 어떻게 시행돼야 할지 등을 모색하고 있다.

최 노무사는 “단체 내에서 TF를 만들고 괴롭힘을 당해 자발적 퇴사를 한 경우 실업급여를 줘야 한다는 등의 법안을 자체적으로 준비하기도 했었다”며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법이 우리가 준비했던 법안과 다르지만 통과된 만큼 이제 시행 이후에 초점을 맞춰 활동을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지난해 1월 서울 중구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직장갑질119 관계자들이 최저임금 위반 제보 ‘놀부회사’ 명단을 공개하고 있다./연합뉴스


현재 직장갑질119는 150여명의 변호사, 노무사, 노동 활동가 등으로 운영되고 있다. 상근직을 제외하고 상당수는 본연의 업무와 병행해서 단체 활동을 하고 있다.

제보를 받는 창구는 카카오톡의 오픈채팅방과 이메일이다. 아침 10시부터 저녁 10시까지 2시간씩 활동가들이 돌아가면서 오픈채팅방에서 올라온 제보들을 상담해주고 있다. 하루에 들어오는 이메일 제보만 10~20건, 카톡은 이보다 더 많다.

많은 사람들이 따로 시간을 내면서 다른 근로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건 부당 행위로 고통받는 근로자에게 ‘이기는 경험’을 만들기 위해서다. 근로자 입장에서 부당 행위로 고용노동청에 신고하고 구제 절차를 밟기 위해 나서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다른 회사로 이직한 경우 휴가를 내면서까지 고용노동청에 불려 나가 전 회사의 부당행위를 진술해야 한다. 문제 제기를 해도 흐지부지되기 일쑤다. 이 때문에 연차수당, 연장 근무수당을 안 주고 갑질을 일삼는 행위들이 반복되는 점이기도 하다.

“회사를 그만뒀는데 마지막 달 월급은 물론, 연차수당, 퇴직금을 다 못 받았다는 제보를 받은 적이 있어요. 제보자는 다 요구했다가 월급마저 주지 않을까 싶어 월급부터 받고 회사에 연차수당, 퇴직금을 요구하겠다고 했어요. 사실 법적으로는 다 받을 수 있는 건데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이게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스스로 대응할 힘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애매하게 일을 진행하다가 흐지부지되면 오히려 회사가 더 우습게 볼 수 있어요. 끝장을 봐서 이기는 경험을 만드는 게 그래서 더 중요합니다”

/김지영기자 jikim@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