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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규칙 迷路에 막힌 혁신산업]전기차 분해만 해도 위반..."이래서 한국형 테슬라 만들겠나"

규제중 30%는 대통령·국무회의 재가없이 개정 가능

"반대편 민원에 골치 썩는다" 일선에선 몸사리기

공무원 움직이게 만들 '당근'·업무방식 전환 필요





부산에서 자동차 부품 업체를 운영하는 A씨는 얼마 전 전기차 부품 사업에 뛰어들었다. 앞으로 전기차 등 친환경차의 수요가 높아질 것을 예상해 선제적 투자를 결심한 것이다. 하지만 A씨는 요즘 사업을 접을까 고민 중이다. 전기차 부품 개발을 위해서는 배터리 케이스 등 부품을 들여다봐야 하는데 ‘대기환경보전법’이 전기차 분해를 금지하고 있어서다. A씨는 13일 “‘고압 제품이어서 위험할 수 있다’는 게 정부의 규제 이유”라며 “왜 정부가 사업을 하려는 기업의 위험 부담까지 걱정해주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산업 육성을 가로막는 규제는 ‘대기환경보전법’ 같은 법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시행령, 훈령·예규·고시·지침 등 행정규칙과 책임지지 않으려는 공무원들의 꽉 막힌 법규 해석 등이 기업들에는 사업의 꿈을 접게 하는 장벽이 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전날 국무회의에서 “1만6,000여개에 달하는 각 부처 훈령·예규·고시·지침 등 행정규칙에 대해서도 규제 측면에서 정비할 부분이 없는지 전반적인 검토를 해달라”고 주문한 배경에는 규제혁신을 가로막는 관료주의가 자리한다. 정부는 ‘국민의 안전, 공공성, 인접 주민 편의’ 등 온갖 이유를 들이대며 규제를 만들고 유지하지만 결국 권한 확대, 자리 늘리기, 책임 회피 등을 위한 핑계라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일반적으로 규제개혁을 떠올리면 국회에서 되풀이되는 여야 간의 대치나 머리띠를 두르고 완강히 거부하는 이익집단이 연상된다. 수년째 국회를 공전하는 서비스법 개정안이나 카풀을 둘러싼 택시 업계와 신흥 모빌리티 기업 간의 갈등도 여기에 포함된다. 각종 산업의 규제를 포함한 법률을 한번 고치려면 입법예고부터 각종 규제심사와 공청회, 국무회의, 국회 심의·통과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간단치가 않은 게 현실이다. 문 대통령은 이 같은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풀 수 있는 이른바 ‘책상 서랍 속 규제’인 행정규칙을 겨냥했다. 훈령이나 예규 같은 행정규칙은 해당 부처에서 개정안을 만들어 입법예고한 뒤 절차에 따라 공포하면 그만이다. 시행령처럼 국무회의나 대통령 재가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 공무원이 자신이 맡은 규칙 중 현장 애로가 많고 불합리하다고 판단되면 상대적으로 손쉽게 바꿀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해 11월 정부에 제출한 ‘혁신성장 촉진을 위한 2018년 규제개혁 종합건의’에도 이 같은 행정규칙 사항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기획재정부 계약예규 공사계약일반조건을 고쳐 긴급 발주 공사라고 해도 최소한의 부지를 확보한 뒤 발주한다거나 개발제한구역 개발 시 특수목적법인(SPC)의 민간 출자비율을 현행 50% 미만에서 3분의2 미만까지 허용해달라는 내용 등도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행정편의나 공공성을 강조하기 위한 조항들이라는 점은 이해한다”며 “그러나 민간에 지나친 부담을 주거나 아예 민간 참여를 저해하는 조항은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하소연했다.



공무원들도 이런 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실제 중소기업 옴부즈만 활동을 통해 민관이 함께 고시를 풀어 업계의 애로를 해소한 사례가 조금씩 나오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산업통상자원부의 국가산업단지 관리기본계획을 보면 경기도 파주출판단지의 경우 자가 건물을 사용하는 출판업자만 북카페를 설치할 수 있었다. 302개 사업자 중 임차사업자가 68%인 206개에 달하는데 이들의 불만이 쏟아졌고 지난해 규정이 바뀌며 이들에게도 북카페 설치가 허용됐다. 이로써 다양한 북카페 탄생이 가능해졌고 서비스 개선의 과실을 출판업자와 이용 시민들이 누릴 여건이 마련됐다. 지자체 고시도 장벽이 되는데 경상북도의 경우 올해 상반기 중 연안항 항만시설 사용기간을 기존 1년 이내에서 5년 이내로 확대해 민원 편의를 돕고 불필요한 행정력 낭비도 잡을 방침이다. 이보다 앞서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고시를 개정해 무인 환전과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결하는 O2O 환전을 허용했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관련 스타트업 수개가 탄생해 영업 중이고 환전 이용객들의 편의도 높아졌다”고 전했다.

다만 이런 실적보다는 여전히 서랍 속에 묵혀 있는 불합리한 규칙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일선 공무원들은 현실적인 어려움을 호소한다. 행정규칙이 탄생할 때도 타당한 이유가 있었던 만큼 특정 업체의 민원을 풀어주기 위한 규정 개정을 시도했을 때 감사상 문제가 될 수 있고, 또 반대쪽의 민원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중앙부처의 한 관계자는 “세부조항을 고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한데 성과로 나타나기는 쉽지 않다”며 “큰 문제가 없으면 그냥 두다 계기가 생겼을 때나 바꾸는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행정규칙만큼 공무원들의 적극적인 법 해석 의지도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석이 모호한 조항은 되도록 기업 편의 입장에서 보자는 얘기다. 앞서 김동연 전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도 “규제의 30% 이상은 법규 개정 없이 공무원의 적극적인 법 해석으로도 풀 수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결국 공무원을 움직이게 하는 ‘당근’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장병규 4차산업혁명위원장은 “관료 인센티브 구조상 규제혁신이 쉽지 않다”며 “1~2년이면 보직이 바뀌니 큰 문제만 없으면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 만큼 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진혁·이수민기자 liber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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