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총선에서 베냐민 네타냐후(69) 총리의 집권 리쿠드당이 이끄는 우파진영이 접전 끝에 승리를 거뒀다. 보수 강경파인 네타냐후 총리의 4연임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등 인접국과의 분쟁이 격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0일(현지시간)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는 전날 치러진 총선에서 리쿠드당을 비롯한 우파 정당들이 총 120석 가운데 65석(94% 개표 기준)을 얻어 과반 달성에 성공했다. 네타냐후(69) 총리가 이끄는 리쿠드당과 베니 간츠(59) 전 참모총장이 대표를 맡은 중도정당연합 청백당은 각각 35석을 확보하며 무승부를 기록했지만, 토라유대주의당(UTJ)와 샤스가 각각 8석을 얻는 등 우파 정당들이 선전하면서 네타냐후가 구심점이 된 연립정부가 구성될 것으로 전망된다. 리쿠드당과 팽팽히 맞선 청백당은 단일 정당 기준으로는 나란히 공동 1위에 올랐지만, 좌파 노동당과 아랍계 발라드의 부진으로 연립정부 구성은 어렵게 됐다. 노동당 의석은 기존 19석에서 6석으로 급감했고, 발라드당 의석도 7석에서 4석으로 줄었다.
외신들에 따르면 레우벤 리블린 이스라엘 대통령은 네타냐후 총리를 총리 후보로 지명할 전망이어서 그의 5선 시나리오는 사실상 굳어진 상태다.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 1996년부터 1999년까지 총리를 지냈고 2009년 두 번째 총리직에 오른 뒤 계속 집권해왔다. 5선이 확정된다면 올 여름 그는 다비드 벤구리온 초대 총리를 제치고 이스라엘 사상 최장수 총리로 등극하게 된다.
이번 총선은 투표 직전까지도 네타냐후 총리의 승리를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올해 2월 말 검찰은 네타냐후 총리가 수년간 할리우드 유명 영화제작자와 호주 사업가 등으로부터 26만4,000달러 상당의 선물을 받았다며 그를 뇌물수수, 배임 및 사기 혐의로 기소하겠다고 밝혀 그의 5선 가도에 찬물을 끼얹었다. 여기에 일간지 예디오트 아흐로노트 발행인과 막후 거래를 통해 우호적인 기사를 대가로 경쟁지 발행 부수를 줄이려 했다는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리쿠드당이 단독 과반 확보에 실패할 것이라는 여론조사들이 이어졌다. 실제 앞서 출구조사에서 리쿠드당과 청백당의 초박빙 승부가 예측되면서 이날 투표 결과는 개표 중반까지도 윤곽이 나오지 않았으며,간츠 대표는 선거 후 성명에서 “우리가 이겼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검찰 수사라는 악조건과 중도 청백당의 약진 속에서도 우파 연합이 승리한 이유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등에 업은 네타냐후 총리의 막판 보수층 결집 전략이 주효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미국을 방문한 네타냐후 총리에게 골란고원에 대한 이스라엘 주권을 공식 인정하는 ‘선물’을 안겼다. 국제사회가 이스라엘이 시리아로부터 빼앗은 골란 고원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데도 미국이 일방적으로 이스라엘 편을 들어준 것이다.네타냐후 총리는 기세를 몰아 이달 6일 총선에서 승리하면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인 요르단강 서안의 이스라엘 정착촌을 합병하겠다는 폭탄 선언을 하기도 했다. 총선 투표 시작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는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교 성지 ‘통곡의 벽’을 찾아 유대인 표심을 마지막까지 공략했다.
네타냐후 총리의 4연임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중동지역은 새로운 긴장 국면에 접어들게 될 것으로 우려된다. 그가 국내에서 제기되는 부패 의혹에서 벗어나기 위해 영토 분쟁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내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유대인 표를 의식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 하에 팔레스타인 분쟁 및 대이란 문제에서 이스라엘이 한층 강경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가 총선 전에 약속한 대로 서안 이스라엘 정착촌 합병을 밀어붙일 경우 이 지역의 유혈 분쟁은 물론 가뜩이나 불안한 중동정세 악화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스라엘 안보 전문가인 님로드 노빅은 “의회가 서안 합병을 승인할 경우 이스라엘 군대가 260만 팔레스타인 주민이 거주하는 서안에 파병될 것”이라며 후폭풍이 상당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창영기자 kc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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