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레퍼시픽이나 LG생활건강 등 전통 화장품 업체가 장악하고 있던 K뷰티의 헤게모니가 트렌드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제조업자개발생산(ODM) 시장으로 옮겨가고 있다.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른바 인플루언서가 자신만의 브랜드를 출시하는 ‘마이크로 뷰티(Micro Beauty)’ 트렌드가 확산하면서 이들에게 제품을 만들어 공급하는 ODM 전문기업이 급부상한 데 따른 것이다. 이런 가운데 신사업 전담 조직을 별도로 만들고 ‘수출 우선주의 전략’을 바탕으로 해외 시장 공략에 힘써온 코스맥스가 주목 받고 있다. 코스맥스는 이 같은 전략을 토대로 올해를 그룹 매출 2조원을 달성하는 원년으로 삼겠다는 각오다.
코스맥스의 지난해 매출액은 1조 2,597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42.5%나 뛰어올랐다. 523억원으로 집계된 영업이익 역시 전년대비 48.8%라는 상승세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그룹 지주사인 코스맥스비티아이와 주력 계열사(코스맥스바이오·코스맥스엔비티)의 매출을 합친 규모는 1조 8,042억원으로, 1년 전에 비해 38%나 증가했다. 이는 30%대의 고성장을 바탕으로 그룹 전체 매출액이 처음으로 1조원 대에 진입했던 2016년의 영광을 불과 2년 만에 재현한 것으로, 이런 추세라면 올해 총 매출 2조원 달성은 무난할 것으로 점쳐진다. ‘매출 2조원 달성’이라는 비전이 실현된다면 3년 만에 2배 성장한 것으로, 국내는 물론 해외 메이저 화장품 업체에서도 보기 드문 성과로 평가된다. 이경수 회장은 24일 서울경제와의 통화에서 “매출 100억원 달성까지 6년, 1,000억원 달성까지 11년, 1조원 달성까지 8년, 그리고 2조원 달성까지 3년이 걸렸다”며 “K뷰티 덕분에 코스맥스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만큼 그동안 구축한 해외 생산 기지를 활용해 우리 기업들이 해외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적극 돕겠다”고 말했다.
메이저급 화장품 브랜드들이 주춤하고 있는 상황에서 코스맥스가 폭발적인 성장을 일궈낼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우선은 ‘수출 우선주의 전략’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코스맥스는 후발주자로 국내 ODM 사업에 뛰어들었던 탓에 내수만 놓고 본다면 2인자에 만족해야 했다. 지난 1992년 화장품 ODM 회사인 일본 미롯토와의 기술 제휴 계약에서 출발한 코스맥스는 2년 뒤 자체 연구·개발(R&D) 능력으로 승부 해야 한다는 판단 아래, 현재의 이름으로 바꾸고 독자노선을 걸으며 역량을 다져나갔다. 그러나 국내 시장은 이미 한국콜마라는 경쟁사가 선점 효과를 누리고 있었던 상황. 이 회장은 판도를 바꿀 터닝 포인트로 수출 집중 전략을 선택했다. 그 결과 지난 2004년 국내 화장품 ODM 가운데 제일 먼저 중국에 진출할 수 있었다. 급속도로 커가는 중국 시장에서 해외 진출과 수출 사업 노하우를 터득한 코스맥스는 이후 인도네시아와 태국, 미국 등으로 네트워크를 넓혀나갔다. 다만, 이 과정에서 한국적 DNA를 지니면서도 현지인에 최적화된 제품을 선보인다는 ‘현지화를 통한 세계화’ 원칙을 15년간 이어가고 있다. 이를 위해 중국 상하이 공장을 시작으로 중국 광저우,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미국 오하이오·뉴저지주, 태국 방콕 등 총 6곳에 생산거점도 마련했다.
코스맥스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해외사업에 적합하게 인력을 운용한 전략을 펼쳐 글로벌 고객사의 마음을 얻었다. 세계 곳곳에 퍼져있는 해외 법인과 공장 간 유기적인 협업을 통해 글로벌 고객사의 주문과 판촉 활동 등을 지원할 수 있는 GAM(Global Account Management) 조직이 바로 그것이다. 코스맥스 관계자는 “국가별 맞춤형 화장품을 생산해내는 것은 물론, 고객사의 세계화 추진도 지원하는 것이 이 조직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로레알과 유니레버, 존슨앤존슨 등 손꼽히는 글로벌 회사들이 GAM과 함께 신속하게 시장 변화에 대응하면서 제품 개발에 나서고 있다.
뚝심 있게 펼치는 R&D도 실적 견인의 공신으로 꼽힌다. 코스맥스는 색조와 기초를 구분해 별도의 연구실을 운영하는 다른 회사와 달리 두 분야의 융합을 꾀하는 연구조직을 보유하고 있다. 촉촉한 입술을 연출해주는 기능 덕분에 높은 인기를 끌고 있는 오일립 제품은 코스맥스가 지난 2016년부터 기초와 색조의 틀을 나누지 않고 연구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또한 시장의 변화를 선도해 나갈 수 있는 핵심 기술을 개발하는 것에 있어 아낌없는 지원을 해온 것도 R&D 역량 강화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는 평가다. 특히 피부에 자생하는 유익균을 활용해 노화를 인위적으로 늦출 수 있는 차세대 화장품을 선보인 것은 코스맥스의 역량을 제대로 보여준 쾌거로 손꼽힌다. 5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우리 몸에서 서식하는 미생물 생태계를 연구해 끝내 ‘세계 최초로 항노화 마이크로바이옴 화장품’이라는 값진 열매를 거둔 것이다. 이 회장은 올해 초 신년사에서 ‘우리만의 것을 만들자’는 키워드를 2019년 경영방침으로 내세웠으며, 구체적으로는 “외부에서 인정할 수 있는 코스맥스만의 독창성을 지녀야 한다”며 “EVE 비건 화장품 인증이나 할랄인증과 같은 다양한 글로벌 인증을 획득해 세계 시장에서 신뢰도를 높이고, 세계 시장 특성에 맞는 제품을 개발하라”고 주문했다.
발 빠른 시장 대응 역시 코스맥스의 영토 확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지난해 말 MIC(Market Innovation Center)이라는 신설 부서를 설립한 코스맥스는 ODM의 한계를 뛰어넘겠다는 목표 아래 새로운 실험에 나섰다. 단순히 고객사가 원하는 제품을 연구하고 생산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고객을 위한 독자 브랜드를 만드는 것은 물론 제품 개발과 생산까지 아우르는 OBM(Original Brand Management)을 맡아 진행하고 있다. ‘개인=브랜드’인 마이크로 뷰티 시장을 정확하게 겨눈 이 부서에서는 최근 11번가와 손잡고 소비자의 신청과 응원, 공유를 통해 일정 수준 이상 참여가 확보되면 상품을 구입할 수 있는 크라우드 펀딩 형식의 ‘뷰티 투게더’ 프로젝트를 선보이며 의미 있는 첫 발을 내디뎠다. 온라인 소비가 급속도로 커지고 있는 국내 화장품 시장의 변화를 정확하게 꿰뚫은 전략이라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 박종대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온라인·벤처 시대, 코스맥스는 글로벌 화장품 ODM 시장점유율 1위 업체로서 수혜가 본격화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여기에다 건강기능식품 계열사 두 곳(코스맥스바이오·코스맥스엔비티)을 필두로 총 5개사가 서로 겹치지 않는 제품 포트폴리오를 유지하며 글로벌 제약·뷰티회사와 긴밀한 협업을 해나가고 있다는 점도 매출 증가에 한 몫 하고 있다. 코스맥스 관계자는 “지속적인 인수·합병(M&A)를 통해 확보한 건강기능식품·제약 분야 계열사들은 그룹의 시작인 화장품을 벗어난 다른 분야까지 아우르고 있다”고 말했다.
/이수민기자 noenemy@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