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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병 징후에도 위기의식 없어...이대로는 침체 30년 갈수도"

[한국경영·경제·정치학회 대토론회-소주성 실패]

생산성보다 빠른 속도로 임금 오르면 경제 망가져

영세·중기 감당 못하는데...소주성은 예견된 실패

인건비 싼 나라와 경쟁해서 살아남는 기업 만들어야

조성봉 숭실대 경제학 교수가 26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2019 한국경영학회·한국경제학회·한국정치학회 융합 대토론회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권욱기자






“우리나라는 이미 십여년 전부터 산업 구조조정에 실패하고 노동생산성은 둔화하는데 인건비만 오르는 ‘이탈리아병’ 징후가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위기의식은 여전히 보이지 않습니다. 이대로면 올해 1·4분기뿐만 아니라 앞으로 30년간 우리 경제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이병태 KAIST 경영대 교수)

“정부가 시장을 잘 알지 못한 채 약자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정책을 폈지만 오히려 저소득층에 칼이 돼 돌아오고 있습니다.”(박정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경제·정치·경영 3대 학회가 한데 모여 개최한 ‘융합 대토론회’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핵심 경제정책인 소득주도 성장에 대한 날 선 비판이 이어졌다. 서민의 소득을 늘려 성장의 동력으로 삼는다는 소주성은 ‘허상’에 불과하며 실제로는 서민에게 ‘독’이 됐다는 성토가 쏟아졌다. 소주성을 ‘실패한 정책’이라고 규정한 학자도 적지 않았다.

발제자로 나선 이병태 KAIST 경영대 교수는 “생산성이 오르는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임금을 올리면 그 나라의 경제는 망가질 수밖에 없다. 앞서 그 길을 간 나라가 이탈리아와 스페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최저임금 인상률이 2년 연속 두자릿수를 기록한 것을 가리켜 “생산성 향상 없이 경제활동인구의 65%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임금을 (주휴수당 포함) 50% 올리면 경제가 어떻게 흡수하겠느냐”고 반문하며 “우리나라는 이미 ‘이탈리아병’의 징후를 보이고 있었는데 현 정부가 그 진행 속도를 어마어마하게 당겨놨다”고 꼬집었다.

박정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도 “소득주도 성장 실패에 대해 정부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대부분의 경제학자는 이미 오래전부터 예고하고 있었다”며 “저임금 근로자의 임금 인상이 수익성이 낮고 충격 흡수 여력이 없는 영세·소기업에 큰 타격이 될 것임은 너무 뻔한 얘기였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적폐 청산’을 내세우며 들어선 현 정부가 적폐를 만들어낸 구조적인 문제를 더 악화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과거 정부의 섣부른 국가주의적 개입을 교정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 많은 개입과 규제로 복잡한 시장 질서를 해치고 자원 배분을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현 정부는 경제주체의 유인, 행동, 시장의 작동원리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며 “오히려 빈곤층과 사회적 약자에게 어려움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정책의 전환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민간의 역량이 이미 정부 부문을 앞질렀는데도 여전히 우리 정부는 각종 규제와 공기업 독점 등의 수단으로 통제권을 쥐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여전히 ‘관치경제’가 심각하다는 얘기다. 조성봉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 한국전쟁과 복구 등 어려운 여건 속에서 강력한 정부의 역할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민간의 성장과 역량이 정부 부문을 추월했다”며 “하지만 정부는 민간의 성장을 제대로 도울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지도, 자신의 역할을 민간에 넘기지도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정부가 ‘계획자’에서 ‘촉매제’로 역할이 바뀌는 시대의 흐름에 역행해 이전 정부들보다 과도하게 사회 각 부문에 개입하면서 적폐를 더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특히 공기업에 대한 정부의 통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이미 상장된 공기업에 대해서도 주주 이익을 무시해가며 통제하려고 한다”며 “능력도 없고 잘린 팔을 자꾸 자신이 움직이려는 ‘환지증’과 같은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한국 경제의 성장 단계를 로켓의 점화에 비유하며 “1단 로켓인 정부가 역할을 해서 로켓이 일단 성층권까지 올라간 건 좋지만 이제는 민간의 역량이 발휘될 수 있도록 정부는 떨어져줘야 한다”고 말했다.

학자들은 정부가 시장을 교정하겠다는 의도로 직접 개입할 것이 아니라 경쟁과 시장경제 질서를 지키는 역할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혁신적 기업이 출현할 수 있는 토양을 조성하고 치열한 경쟁이 가능하도록 시장질서를 정착시키는 시스템 구축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는 기업을 만드는 것이 소득 격차를 완화하는 길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이 교수는 “지식산업이 글로벌화되면서 기업 간 노동생산성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며 “소득 격차를 결정하는 것은 개인 간 격차가 아니라 기업 간 격차”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베트남·러시아 등 인건비가 싸고 인구가 많은 나라들과 경쟁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명확한 현실”이라며 “오늘날의 경제 구조에서 살아남는 기업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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