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역삼동 르네상스호텔 사거리 인근의 칵테일바 ‘커피 바 K’에는 이색 명물이 있다. 사람의 상반신 모습으로 제작된 로봇 바텐더 ‘카보’다. 위스키 등에 들어갈 얼음을 둥글게 깎아 잔에 넣어주고 프로그램된 내용에 맞춰 손님에게 자신을 소개하기도 한다. 국내 중소기업 로보케어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도움을 받아 지난 2017년 개발해 시판한 로봇이다. 얼음을 공 모양으로 정밀하게 깎으면 네모난 얼음보다 서서히 녹아 온더록(얼음 탄 위스키)의 온도와 맛을 최대한 오래 유지할 수 있다. 카보를 구입해 설치하는 데 들어간 비용은 무려 2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진다.
카보의 사례는 주류산업 생태계가 첨단기술과 만나 융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술을 즐기는 소비자들의 취향이 다변화하면서 이에 맞추기 위해 로봇이나 정보기술(IT)을 적극 활용하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2월19일 LG전자가 공개한 인공지능(AI) 와인셀러다. 해당 와인보관냉장고에 탑재된 AI는 평소 주인이 저장하는 와인과 그에 대한 맛 평가 정보를 학습했다가 식사 메뉴에 맞춰 궁합이 좋은 와인을 추천해준다. 고급 주류를 가장한 짝퉁 제품의 범람에 대응하기 위한 기술도 나왔다. ‘위스키 진위 판별기’라는 스마트폰용 애플리케이션(앱)이다. 해당 앱을 구동시킨 스마트폰을 위스키 병목에 붙어 있는 무선인식태그(RFID태크)에 가져다 대면 해당 술의 유통 이력과 진품 여부를 알 수 있다.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술자리의 흥을 돋워주는 앱도 나오고 있다. 복불복 방식으로 벌주를 마실 당첨자를 고르는 앱인데 주로 젊은이들이 친구들끼리 갖는 술자리에서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외에서도 주류 관련 문화에 첨단기술을 활용하려는 시도가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일본에서는 바텐더 로봇을 넘어 아예 술의 맛을 감별하는 로봇 소믈리에까지 나왔다. 일본의 전자기업 NEC가 2008년 개발한 와인봇이다. 세계 최초의 로봇 소믈리에로 기록됐다. 이 로봇은 적외선 파장을 감별하는 센서로 와인의 당도와 성분 등을 감별한다. 이후 미국 등에서 보다 정밀한 와인 맛 감별 및 블렌딩 로봇이 나오기도 했다. 미국에서 개발된 빈퓨전(VINFUSION)은 다양한 와인의 맛을 감별해 저장했다가 이용자가 자신의 와인 취향을 입력하면 그에 맞는 풍미의 와인을 블렌딩해 잔에 담아준다. LG전자 관계자는 “앞으로 빅데이터와 센서기술, AI기술 등이 보다 고도화되고 융합되면 더 정밀하게 개인 취향별로 주류를 골라주는 스마트 제품들이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민병권기자 newsroo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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