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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앵무새와 동굴, 그리고 집권 2년

서정명 경제부장

우리사회 기업을 앵무새로 덧칠

플라톤 '동굴의 우화' 경고하지만

靑참모·관료, 동굴밖 햇빛 안 봐

'내생각·내편이 진리' 편협 벗어나

집권3년 쟁책실패 고치는 용기필요





‘앵무새가 죽었다.’ 미국 여성 작가인 하퍼 리는 지난 1960년 자전적 성격의 장편소설 ‘앵무새 죽이기(To Kill a Mockingbird)’를 출간했다. 마을 사람과 배심원들은 백인 여자를 성폭행했다는 굴레를 씌워 ‘흑인’ 톰 로빈슨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를 들이댔다. 변호사 애티커스 핀치는 백인 여성과 그의 아버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며 무죄를 호소했지만 마을 사람들은 귀를 닫았다. 배심원의 판단에 절망한 흑인은 감옥에서 탈출을 시도하다 결국 총을 맞고 죽는다. 집단사고와 확증편향의 덫에 빠진 사회를 신랄하게 고발한 작품이다.

하퍼 리가 쓴 앵무새 죽이기 책 표지


문재인 정부가 오는 10일이면 집권 2년을 맞는다. 민심은 착잡하고 생활은 눅진하다. 잔뜩 먹고 배를 두드리는 함포고복(含哺鼓腹)은 언감생심이다. 1·4분기 성장률은 마이너스로 뚝 떨어졌고 자칫 잘못하다가는 4월 경상수지가 적자에 빠질 것이라는 장탄식도 나온다. 80개월 넘게 역대 최장 기간 흑자 행진을 이어온 경상수지가 빨갛게 물든다는 것은 한국 경제에 비상등이 켜졌다는 것을 뜻한다. 징후는 짙다. 기업은 앵무새가 된 지 오래다. 거대권력이 된 노조가 쏘아대는 횡포, 적폐라는 주홍글씨를 붙여버린 정부에 거친 호흡을 몰아쉬고 있다. 수출은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4월까지 연속 마이너스다. 청년들은 그야말로 아우성이다. 지난 3월 청년실업률은 10.8%에 달했고 체감실업률은 무려 25%까지 치솟았다. 4명 중 1명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저잣거리에서는 곡소리가 터져 나오는데 정부는 별천지 얘기를 한다. 소득주도 성장과 분배 만능 도그마에 빠진 청와대 참모와 관료들은 대통령의 한쪽 귀를 부여잡고 ‘곧 성과가 나온다’ ‘궤도 수정은 안 된다’ ‘우리가 옳다’며 설법을 해댄다. 누항(陋巷)에서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비아냥과 한탄이 쏟아지지만 인(人)의 장막으로 겹겹이 방화벽이 쳐진 청와대를 넘어서지는 못한다. 현실경제와 동떨어진 어명(御命)에 감흥이 있을 리 없다.

플라톤 두상


‘동굴에 갇혔다.’ 플라톤은 저서 ‘국가’에서 소크라테스와 글라우콘이 주고받는 동굴 우상 대화를 소개한다. 소크라테스는 동굴에 사지와 목이 묶인 죄인들이 동굴 벽면에 비친 사물의 그림자만 보고 이를 진실이라고 여기는 태도를 불쌍히 여긴다. 동굴 밖에서 태양 아래의 실재(real existence)를 보지 못하는 상황을 우려한다. “배움의 힘이 어릴 적부터 잘못 키워진다면 그것은 마치 어망의 납덩이처럼 영혼의 눈길을 아래로 향하게 만든다네. 하지만 거꾸로 그것이 참된 것들로 방향을 바꾼다면 날카로움을 잃지 않을 것이네.” 소크라테스의 촌평에 등골이 오싹하다.

문재인 정부는 앞으로 3년 남았다. 성과 없는 소득주도 성장, 배신으로 답하는 북한 끌어안기에서 궤도 수정을 고민해야 할 때다. ‘내 생각과 내 편이 곧 진리’라는 편협과 작별해야 한다. 돈을 줘서 공갈 일자리를 만들지 말고 기업을 살려 돈을 만드는 고용을 창출해야 한다. 경영비리와 갑질은 법에 따라 단호하게 처벌하면 된다. 기업 탈출은 현실이다. 국내 기업들의 지난해 해외 직접투자액이 55조원을 넘었다. 전년보다 9.1% 늘어난 것으로 관련 통계를 작성한 1980년 이후 최고다. 대기업은 4.4% 늘었지만 중소기업은 31.5%나 급증했다. 고용이 줄 수밖에 없다. 앵무새는 계속 죽어가는데 정부는 동굴 그림자만 부여잡고 있는 허망한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가 가장 큰 공을 들인 북한 비핵화는 북한이 4일 김정은 국무위원장 참관 아래 미사일 발사실험을 하면서 망신살이 뻗쳤다. 실재를 보려 하지 않고 그림자만 본 엉성한 정책 때문이다.



굴원의 상


늦지 않았다. 시장실패와 정책실패는 겸허하게 고치면 된다. 중요한 것은 용기다. 중국 전국시대 초나라 시인이자 정치가였던 굴원은 이렇게 말한다. “지금 초나라가 공업을 이루고 군사를 내지만 어찌 오래갈 수 있겠는가. 잘못을 깨치고 고쳐나간다면 내가 구태여 자꾸 말하겠는가.”

/vicsj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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