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갈등 고조로 글로벌 경제에 파장이 예상되는 가운데 2차 아베 신조 내각 출범 이후 상승가도를 달려온 일본 경기가 6년여 만에 처음으로 ‘악화’ 기조로 내려앉았다. 중국 경기둔화의 여파로 일본 기업들의 순이익도 3년 만에 꺾이면서 ‘아베노믹스(아베 내각의 경제정책)’의 엔진이 꺼진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3일 일본 내각부는 지난 3월 경기동향지수(CI, 2015년=100) 속보치 중 현재 경기상황을 나타내는 동행지수가 99.6으로 전월 대비 0.9포인트 하락했다고 발표했다. 수개월 뒤 경기를 예상하는 선행지수도 전월보다 0.8포인트 떨어진 96.3에 그쳤다.
이로써 지수 추이에 따라 기계적으로 산출되는 경기기조 판단은 종전 ‘하방으로 국면 변화’에서 가장 낮은 단계인 ‘악화’로 내려갔다. 이는 경기가 이미 후퇴 국면에 들어섰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시사하는 표현이다. 일본 정부가 경기기조를 ‘악화’로 판단한 것은 2013년 1월 이후 6년2개월 만이다.
내각부의 경기기조 판단은 2012년 12월 2차 아베 내각 출범과 함께 진행된 ‘아베노믹스’에 힘입어 2016년 10월부터 2018년 8월까지 23개월 연속 가장 높은 단계인 ‘개선’을 유지했다. 그러나 미중 무역전쟁 본격화로 대중(對中) 수출이 위축되면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9월 ‘제자리걸음’으로 내려간 경기기조 판단은 올 1월 ‘하방으로 국면 변화’로 하향 조정됐다.
앞서 아베 정부는 2012년 12월 시작된 경기확대 기간이 올 1월 말까지 총 74개월에 달해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장 확장 기록을 세웠다는 잠정 결론을 내렸지만 전문가들은 경기가 이미 꺾였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기 시작했다. 대외여건 악화가 장기 악재로 이어지면서 최근 5~6년간 이어진 일본 경제회복 기조의 틀이 손상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일본 내 민간 경제연구기관은 올 1·4분기 일본의 전 분기 대비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0.003%(연율 환산)에 불과할 것으로 예측했다. 수출과 설비투자가 모두 쪼그라들어 마이너스 성장을 간신히 면한 ‘제로 성장’에 그칠 것이라는 관측이다. 1·4분기 GDP는 오는 20일 발표된다.
경기에 브레이크가 걸리면서 승승장구하던 일본 기업들의 실적도 꺾였다. 이날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10일 현재까지 2018사업연도(2018년 4월~2019년 3월) 실적을 발표한 상장사 849곳(전체의 약 60%)의 전체 순이익은 전년 대비 2%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일본 상장기업의 실적이 뒷걸음질치는 것은 3년 만에 처음이다. 신문은 중국 시장의 침체로 스마트폰과 반도체 관련 제품의 수요가 줄면서 해당 기업의 수익여건이 급속히 악화했다고 분석했다. 중국 경기에 민감한 전기기기 등을 포함한 제조업종 전체의 순이익은 사업연도 기준 하반기(2018년 10~2019년 3월)에 22% 줄었고 자동차부품업은 무려 53%나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경기후퇴와 기업실적 악화가 현실화하자 일본 내에서는 10월로 예정된 소비세율 인상이 또다시 연기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7월 참의원선거를 앞두고 나빠진 경기지표가 증세 일정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니혼게이자이는 “정부가 경기침체 판단을 내리면 증세가 지연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전했다. 일본 정부는 월례 경제보고를 통해 공식 발표하는 경기판단을 아직 ‘완만한 회복’으로 유지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동향지수의 경기기조 판단이 ‘악화’가 됐는데도 정부가 경기회복 인식을 나타낸 경우는 없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박민주기자 parkmj@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