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요르단의 역사 또한 구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청동기·철기시대를 거치면서 히브리 민족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후손들의 역사가 전개된다. 아브라함은 기원전 2,000년께 메소포타미아의 갈대아우르에서 일족을 이끌고 하란으로 이주했다. 그는 다시 조카 롯과 함께 가나안에 정착한 후 여종에게서 이스마엘을, 아내에게서는 이삭을 얻게 된다. 이스마엘은 아랍인들의 조상이 된다. 이삭은 에서와 야곱이라는 쌍둥이 아들을 낳고 장자의 권리는 동생 야곱에게 간다. 한편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을 피해 두 딸과 동굴에 거하게 됐고 두 딸은 후손이 없자 롯이 술을 마시게 하여 근친상간으로 각각 모압·벤암미라는 아들을 얻는다.
요르단은 ‘에돔’ ‘모압’ ‘암몬’이 세워졌던 곳이다.
에돔은 이삭의 큰아들 에서가 자손들을 이끌고 요르단 남부의 페트라 지역에 세운 왕국이다. ‘왕의 대로’로 불리는 대상들이 다니는 길이 지나고 철과 구리광산이 있어 부유한 나라다. 모압은 롯의 큰딸이 낳은 아들 모압을 조상으로 하는 나라다. 모세는 모압 땅 느보산에서 죽어 묻혔고 모압 여인 룻은 후에 다윗왕의 증조할머니가 된다. 암몬은 롯의 작은딸이 낳은 아들 벤암미가 지금의 요르단 수도 암만에 세운 나라다.
이스라엘은 야곱의 후손들로 가나안에 정착했으나 기근으로 이집트로 이주했고 기원전 15세기께 모세의 지휘로 가나안 땅에 돌아가게 된다. 당시 가나안 남쪽은 에서의 또 다른 후손인 아말렉이 점령하고 있었고 요르단강 동편은 에돔·모압·압몬 등이 차지하고 있어 강 건너 서편에 자리 잡게 됐다. 이스라엘은 사울-다윗-솔로몬시대에 강력한 통일왕조를 이룬다.
사울왕은 암몬의 공격을 물리치고 왕권을 확립한다. 다윗은 모압을 정복한 후 암몬과 싸우는데 어느 날 다윗이 궁궐 성벽을 거닐다 목욕하는 밧세바를 보고 반해 동침하게 된다. 그 여인이 잉태하게 되자 다윗이 그 남편 우리아를 암몬성 전투에 내보내 죽게 했고 밧세바가 낳은 둘째아들이 솔로몬이다. 솔로몬 사후 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분리된다.
이스라엘과 요르단은 기원전 8세기께부터 아시리아와 바빌론의 침략을 받게 된다. 북이스라엘은 아시리아에, 남유다는 바빌론에 멸망 당하고 모압·암몬·에돔 역시 아시리아의 침공에 시달리거나 바빌론에 정복당한다. 이후 이 지역은 페르시아, 알렉산더 제국, 나바티안 왕국, 로마 제국, 비잔틴 제국 등이 지배했으나 630년대 이슬람 세력에 편입된다.
◇중동지역에서 전개된 아시아 기마군단의 역사=이 지역에서 아시아 기마군단의 역사가 11세기 말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약 700년간 전개된다. 셀주크·맘루크·오스만 제국이 바로 그들이다.
돌궐의 후예이자 이슬람 세력인 셀주크 제국은 11세기 말부터 12세기까지 이스라엘·요르단 지역 등을 비롯한 기독교 지역을 점령했고 이것이 십자군 전쟁의 도화선이 된다.
맘루크는 아랍어로 ‘노예’를 뜻하며 전투력이 출중한 기마군단으로 투르크-몽골계 용병집단이다. 1250년 맘루크 사령관 아이벡이 정권을 잡고 술탄에 올라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가 시작된다. 맘루크 군은 갈릴리 호수 동쪽 ‘아인잘루트’에서 벌어진 대전투에서 이집트에 쳐들어온 몽골군을 격파하고 13~16세기 중 이집트·이스라엘·요르단 일대를 지배하게 됐다.
오스만 제국은 1517년 맘루크를 격파하고 1차 세계대전 전까지 이집트·이스라엘·요르단 지역을 모두 지배하게 된다. 북방사학자 전원철 박사의 문헌고증에 따르면 셀주크·맘루크·오스만 제국의 왕조는 계보는 다르지만 모두 고주몽의 후예인 오구즈칸의 가계라 한다. 오구즈칸 일족이 고구려 멸망 이후 서쪽으로 가서 여러 몽골-투르크 제국을 건설했다는 것이다.
◇이집트 탐방=인천공항에서 아부다비를 경유해 카이로 공항에 도착한 후 바로 국내선으로 환승해 룩소르로 이동했다. 나일강변의 룩소르는 1,600년간 왕국의 중심지였고 카르나크 신전, 룩소르 신전 등 수많은 고대유적을 품은 고고학의 보고다. 룩소르 일정 후 나일강 크루즈에 승선해 4박5일의 일정을 시작했다. ‘왕가의 계곡’ ‘왕비의 계곡’ 깎아지른 절벽 아래 지은 웅장한 ‘핫셉수트 신전’ ‘멤논의 거상’ 등을 둘러보고 에드푸로 이동해 고대 신전 건축양식이 완벽하게 보존돼 있다는 호루스 신전을 탐방했다. 신전 비문들에 남아 있는 옛날 기록은 보는 이를 놀라게 한다. 콤옴보에서는 고대의 캘린더라고 할 수 있는 놀라운 부조가 남아 있는 로마 시대 초기의 신전을 볼 수 있다.
아스완에 도착한 다음날 이집트 유적의 상징인 아부심벨로 향했다. 1960년대 아스완하이댐을 건설하면서 아부심벨이 수몰될 위기에 처하자 유네스코가 국제적인 협력을 얻어 1968년에 신전을 2만여개 조각으로 해체해 인근 고지대로 이전 복원한 세계적인 유적이다. 밤에는 소형배를 타고 필레섬으로 이동해 이시스 신전에서 펼쳐지는 환상적인 ‘빛과 소리의 공연’을 감상했다. 크루즈 일정을 마친 후 비행기 편으로 카이로로 이동해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히는 쿠푸왕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고대 왕들의 무덤군, 세계적 유물들이 즐비한 고고학박물관을 돌아봤다.
마지막 일정은 지중해의 항구도시 알렉산드리아다. 고대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불리는 파로스의 등대가 파괴된 자리에 건설된 카이트베이 요새를 방문했다. 1446년 맘루크 왕조의 술탄 카이트베이가 건설한 성채다. 이곳은 지중해안의 군사요충지로 해안선 방어를 목적으로 세워졌다. 아시아 기마군단이 중동에 진출해 세운 왕조의 작품이기에 더욱 감회가 깊었다. 지중해의 거센 파도가 넘실대고 해풍이 몰아치는 해안에 늠름하게 자리 잡은 성채는 맘루크군의 위용을 떠올리게 했다.
◇이스라엘·요르단 탐방=인천공항을 떠나 수도 텔아비브에 도착한 뒤 이스라엘 여정을 시작했다. 이스라엘은 우리나라 강원도 크기의 나라지만 역사나 성경과 관련된 수많은 유적지가 있다.
먼저 사해 일대를 둘러봤다. 사해 남쪽 끝에 있는 마사다는 고대 이스라엘 왕국의 상징으로 로마 제국에 저항한 마지막 항전지다. 깎아지른 절벽 위에 수천년의 세월을 견디며 서 있는 이곳은 유대인들의 성지다. 이어 사해를 따라 북쪽으로 가면 엔게디가 나타난다. 이곳은 수많은 동굴이 자리 잡은 곳으로 다윗이 사울왕을 피해 숨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엔게디에서 북쪽으로 가면 쿰란이 있는데 가장 오래된 구약성서 사본이 발굴된 곳으로 유명하다. 사해를 떠나 아우구스투스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가이샤라, 항구도시 하이파,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항구도시 아코를 거쳐 갈릴리호수변의 도시 티베리아스에 도착했다. 예수님의 사역 현장이다.
갈릴리호수 남쪽에 있는 국경도시 벳샨을 통해 요르단에 입국했다. 요르단은 우리나라보다 약간 작은 나라로 이슬람 국가지만 구약시대의 유적지가 많다. 먼저 남쪽으로 가면서 중동의 폼페이로 불리는 제라시에 당도해 거대한 규모의 로마유적지를 찾았다. 이어 수도 암만으로 이동해 암만성을 둘러봤다. 성벽·신전·교회·모스크 등 다양한 시대의 유적이 남아 있다. 암만을 떠나 모자이크 성지지도로 유명한 마다바, 모세가 죽은 느보산과 모세기념교회를 방문한 뒤 아르논 계곡을 지나 와디럼으로 향했다. 지프를 타고 붉은 사막 곳곳을 둘러봤다. 마치 외계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풍광이 전개되는데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실제 활동했던 무대다. 이어 항구도시 아카바에서 쉬고 난 다음날, 해발 950m 고원의 바위산에 남아 있는 고대도시 유적지 페트라로 향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영화 ‘인디아나존스’, 드라마 ‘미생’에 등장하는 이 경이로운 유적은 사막의 유목민 나비티아인들의 작품이다.
요르단 일정을 마친 후 알렌비 국경에서 다시 이스라엘로 입국한 후 예수가 40일간 금식하면서 시험을 받았다는 여리고의 시험산을 거쳐 베들레헴으로 향했다. 예수탄생교회는 수많은 순례자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예루살렘에서 골고다 언덕,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곳에 지어진 성묘교회, 유대인들이 가장 성스럽게 여기는 통곡의 벽을 방문한 후 이스라엘·요르단 여행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