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전쟁으로 서막을 연 미중 간 패권전쟁이 경제영역을 넘어 안보 문제로 급속하게 확전되는 양상이다. 이에 따라 미국의 대(對)중국 봉쇄전략인 인도태평양 정책의 최전선에 위치한 한국도 미중 사이에서 피할 수 없는 선택의 압박을 받고 있다.
24일 외교가에 따르면 미 국무부가 반(反)화웨이 캠페인 동참에 이어 ‘남중국해 항행의 자유’에 대한 지지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한국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서경 펠로(자문단) 및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대체로 중국과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라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 동맹국 미국과 연대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과거 사드(THAAD) 논란 때 한국이 전략적 모호성을 택해 큰 어려움을 겪었던 일을 교훈 삼아 자유주의·시장경제 가치를 공유하는 미국과 철저하게 공동 보조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관점이다.
특히 전문가들은 현재 당면한 문제인 미국의 반화웨이 캠페인 동참은 사드 배치와는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한국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이슈라고 분석했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화웨이 논란은 사드 문제와 차이가 있다. 사드는 한국·미국·중국 3국만의 이슈인데 지금 반화웨이 동참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미 우방국이 동시에 하는 것이어서 부담이 덜하다”며 “특히 독일과 프랑스·영국 등 우방 국가들의 행보를 잘 보고 정부 방침을 정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대중 관계도 중요한 만큼 정부 차원에서 이에 대한 메시지 관리에는 신경을 써야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서경 펠로인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정부는 미국의 지지를 공개적으로 밝히며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기보다 화웨이 장비를 대체할 수 있는 삼성전자 등 국내 정보기술(IT) 업체에 힘을 실어주면 된다”며 “우리 기업을 육성하면 자연스럽게 미국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는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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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화웨이 사태가 미중 패권다툼의 끝이 아닌 시작이라는 데 있다. 실제 미국은 경제영역을 넘어 안보 분야인 ‘남중국해 항행 자유’ 문제와 관련해 한국의 지지를 촉구하고 있다. 실제 재선을 눈앞에 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지지층 결집을 위해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정치적으로 활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미 조야에서 나오고 있다.
서경 펠로인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한국이 미중의 중간에 서서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면 완전히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지는 격이 된다”며 “중국과의 교역으로 인한 경제적인 측면도 있지만 미중 패권다툼이 심화됐을 때 모호한 입장을 취하면 양쪽에서 손해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비핵화 협상 정국을 거치며 한미동맹 균열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중립적인 입장을 보일 경우 한국에 대한 미국의 신뢰가 더 추락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제 하노이 노딜 이후 북중러의 밀착에 맞서 미국이 일본과의 동맹관계를 강화하면서 ‘코리아 패싱(한국의 외교적 고립)’에 대한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서경 펠로인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사실 안보도 그렇고, 경제적으로도 미국은 우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미국이 한국을 압박할 수 있는 통상 카드도 많기 때문에 한국이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신뢰를 보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국과의 공조에 따른 중국의 경제보복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지난 1965년 국교 수립 이후 최악의 관계로 추락한 한일관계의 복원도 시급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남 교수는 “한일관계가 나빠지면 대체로 한국은 70%, 일본은 30% 힘들다”며 “한일관계를 개선하는 것이 국익에도 도움이 되고, 결국 한미일 동맹이 공고해지면 중국의 압박에도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미중 무역전쟁 장기화에 따른 경제적 여파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신(新)남방정책 등 수출시장 다변화에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박 교수는 “미중 갈등으로 세계 경제가 어려워질 수도 있고 미중 갈등이 지속되면 중국 경제가 흔들릴 수도 있다”며 “미국이 강하게 압박하면 우리가 중국과의 거래를 이전과 같이 할 수 없을 수도 있기 때문에 수출시장을 다변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박우인기자 wi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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