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고양 창릉지구와 부천 대장지구에 3기 신도시를 건설하기로 결정한 후 찬반 논란이 뜨겁다. 지역주민들의 반발에 정치권까지 가세하면서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 쟁점화하는 분위기다. 사실 신도시를 둘러싼 논란은 처음이 아니다. 1·2기 신도시가 들어설 때도 적지 않은 갈등을 겪었다. 시장 수요에 따라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정부 주도로 수십만가구의 아파트를 한꺼번에 공급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땅 소유자와 정부(LH), 건설사, 신규 분양자, 인근 주민 등의 이해관계에 따라 갈등은 첨예해졌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앞으로도 신도시 갈등은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3기 신도시 부지 선정 논란에 가려졌지만 정부는 추가 신도시 공급계획을 이미 공언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제3차 신규택지추진계획 발표자료에서 “향후 주택시장 여건에 따라 필요하면 추가 공급이 가능하도록 후보지를 상시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후보지란 이번 3기 신도시 부지로 선정되지는 않았지만 시장에서 거론되는 광명·시흥 등이 포함된다. 부동산시장이 들썩거릴 경우 언제든 이들 지역에서 4기 신도시를 공급하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정부가 신도시 등 대규모 공급으로 집값을 잡겠다는 마인드를 바꾸지 않는 한 언제든지 신도시 갈등은 재연될 수 있다는 얘기다.
신도시 건설 30년의 빛과 그림자=지난 1960년대 울산·포항 등 산업단지 배후도시가 도시 건설의 시작이지만 본격적인 주택 공급지로서 신도시의 시작은 30년 전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끝나고 3저 호황에 풀린 뭉칫돈이 서울 부동산으로 몰렸다. 주택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집값이 불길처럼 치솟은 것은 당연지사다.
노태우 정부는 1989년 주택 200만가구 공급대책을 발표한다. 당시 지어진 1기 신도시가 분당·일산·평촌·산본·중동 등 5곳이다. 하지만 1기 신도시는 주택만 공급할 뿐 교통·일자리 등 자족기능이 갖춰지지 못해 베드타운으로 전락했다. 단독주택의 시대가 저물고 아파트 위주의 주거환경이 본격화된 것도 1기 신도시 공급 이후다.
노무현 정부도 2003년 발표한 2기 신도시로 집값을 잡으려 했다. 판교·광교·위례·동탄·김포·검단·파주·양주 등 12곳이다. 2기 신도시는 주택공급에만 중점을 둔 1기 신도시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대규모 산업단지 조성 등 자족기능을 강화한 계획도시로 개발된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대부분 서울에서 30㎞ 이상 떨어진 곳이다 보니 기업들의 외면으로 제대로 된 산업단지 조성도 쉽지 않았고 광역교통망까지 엉망이라 서울로 출퇴근하는 거주민들은 지금도 교통지옥을 겪고 있다.
2기 신도시의 또 다른 문제점은 미분양이다. 부동산 경기가 상승세를 보일 때는 계획된 공급이 무리 없이 시장에서 소화되지만 반대일 경우 미분양 폭탄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2기 신도시의 상당수는 아직도 아직도 악성 미분양에 시달리고 있다. 게다가 파주 운정, 양주 옥정, 김포 한강에는 택지조성 후 건설사에 팔리지 않은 미매각 토지만 50만~100만㎡에 달한다.
그나마 강남에서 가까운 판교가 성공적인 신도시로 개발됐고 인근 분당과 광교까지 살아나는 효과가 나타났다. 서울에 각종 인프라가 집중된 현실에서 그나마 신도시가 제대로 된 기능을 하려면 서울에서 가까워야 한다는 역설을 드러낸 대표 사례다.
◇‘제2의 판교 신화’ 가능할까=그렇다면 판교는 어떻게 성공사례가 됐을까. 비결은 판교테크노밸리다. 판교는 1·2기 신도시 가운데 유일한 자급자족 신도시다. 일자리·주거지·상업시설·공원 등이 전부 한자리에 만들어졌다. 서울로 30여분이면 이동 가능한 광역교통망을 갖춘 판교에 테크노밸리까지 자리 잡으면서 성공한 신도시로 자리매김했다. 신도시의 성공 요인인 주택·일자리·교통의 3박자를 모두 갖춘 것이다.
판교테크노밸리는 정보기술(IT)·바이오기술(BT)·문화기술(CT)·나노기술(NT)·융복합기술 중심의 첨단 연구개발단지다. 수도권과 가까운 위치에 SK케미칼·포스코ICT·한화테크윈·LIG넥스원·안랩·NHN 등 각 분야의 손꼽히는 회사들이 입주돼 있다. 2017년 말 기준 총 1,270개사가 입주해 있고 입주사들의 매출 총액은 79조3,000억원에 달한다. 전체 입주사 가운데 중소기업 비중이 86.7%인 것도 특징이다.
정부가 3기 신도시 공급계획을 발표하면서 판교를 벤치마킹하겠다고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기존 신도시 대비 2배 수준의 자족 용지를 확보하고 광역교통망도 입주 시점에 맞춰 완공하기로 했다. 3기 신도시 개발 초기부터 그동안 신도시에서 드러났던 문제점들을 개선해 베드타운이 되는 것을 막겠다는 복안인데, 신도시 갈등에 언제 첫 삽을 뜰 수 있을지 미지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족기능, 그중에서도 일자리 창출이다. 판교테크노밸리가 분당에도 영향을 미친 것처럼 기업 유치는 3기 신도시뿐 아니라 2기 신도시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고준석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3기 신도시를 지을 때 2기 신도시에서 미진했던 광역교통망과 생활 인프라를 개선하면 된다”며 “특히 광역교통망은 예비타당성 등 수익성을 따지지 말고 최우선으로 확충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택은 수요 있는 곳에 공급해야=3기 신도시를 둘러싼 논란에서 드러났듯이 과거처럼 전투하듯이 주택을 대규모로 짓는 방식을 바꿀 때가 됐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제부터라도 양적 공급 방식의 주택공급 정책을 지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저출산 고령화에 1~2인 가구가 대세가 됐고 이미 전국 주택 보급률은 2008년 100%를 넘어 2017년 현재 103.3%에 이른다. 인구구조 변화로 부동산시장의 환경은 크게 달라졌는데 정부의 마인드는 아직도 1기 신도시를 처음 공급하던 30년 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
김규정 NH투자증권 전문위원은 “1기 신도시 때는 양적 공급이 필요했던 시기로 서울 집값 억제와 수도권으로의 인구·주택 수요 분산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났다”며 “지금은 주택 총량 자체가 부족하지 않고 시장 환경도 많이 바뀌었는데 정부가 (그린벨트를 풀어) 신도시를 공급하는 손쉬운 선택을 했다”고 지적했다.
물론 정부가 신도시 공급을 발표하는 것만으로도 주택 수요를 억누르는 효과가 있다. 앞으로 대규모 주택 공급이 예상되는 만큼 대기수요가 늘어나며 관망세로 돌아서기 때문이다. 그러나 1·2기 신도시의 사례에서 보듯이 신도시의 집값 억제 효과는 오래가지 못했다. 오히려 신도시 개발로 인한 대규모 토지보상 자금이 부동산시장을 자극할 가능성이 높고 분양이 성공적이지 못할 경우 2기 신도시처럼 미분양의 부작용까지 겪어야 한다.
전문가들은 주택공급 정책과 관련해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한다’는 기본을 지키는 것이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얘기다. 서울 집값을 잡으려면 서울에서 공급을 늘리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정부는 서울 도심 재개발·재건축 불가라는 전제를 세우고 서울에서 가까운 신도시 건설을 추진하다 역풍을 초래했다. 집값을 서둘러 잡겠다는 정부의 조바심은 계획보다 2개월 앞서 3기 신도시 3차 입지를 발표한 데서도 드러난다.
고준석 교수는 “도심에 집을 지을 부지가 부족한데다 재건축·재개발 활성화는 부동산 가격을 부추길 우려가 있어 신도시를 선택한 정부 입장이 한편으로는 이해된다”며 “3기 신도시를 지을 때 2기 신도시가 부족한 부분을 채워 시너지가 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곤 논설위원 mckid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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