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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이 만난 사람]김광현 창업진흥원장 "대기업이 스타트업 M&A 할수있게 '투자 허들' 낮춰야"

창진원 10월 법정기관 전환...창업지원사업 탄력 기대

지금이 혁신 골든타임...정부가 주도해 규제 개선을

연구진·교수들 창업생태계로 이끌 유인책 없어 고민

대담=정민정 성장기업부장 jminj@sedaily.com





“규제혁신은 쉽지 않지만 꼭 해야만 하는 일이고 한번에 끝나지도 않기에 쉼 없이 진행해야 합니다. 신기술을 적용하다 보면 기존 규제와 충돌하는 경우가 빈번하고 이를 바꾸려면 기득권자들이 크게 반발하죠. 그렇다고 적당히 (문제를) 덮어두면 혁신은 영원히 불가능합니다.”

김광현(58·사진) 창업진흥원장은 지난 7일 서울 마포구 서울 스타트업 허브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정책과 긴밀히 관련된 규제는 특정 부처의 일이 아니라 여러 곳이 얽혀 있고 기득권의 이해와 맞물려 쉽게 풀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정부가 창업을 통한 혁신을 위해 끊임없이 규제를 완화하고 합리화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이어 규제혁신은 어느 부처나 특정 기관의 몫이 절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며 “혁신은 기존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기에 ‘타협’으로 되는 것이 아니며, 정부가 주도적으로 추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이 과정에서 공무원이 규제개선을 위해 적극적인 행정을 펼치다 문제가 발생하면 그에 대한 책임을 면해주는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민 역시 ‘단숨에 규제를 풀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는 뜻도 피력했다. 다만 김 원장은 “우리 경제는 혁신을 위한 골든타임을 지나고 있다”며 “이번 기회를 놓치면 해외 제품과 서비스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상황이 오게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모빌리티 산업이 택시업계와 충돌을 빚는 현 상황에 대해서는 “우버가 국내에 처음 들어온 3년 전에 관련 규제에 메스를 댔다면 지금처럼 일이 많이 꼬이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극한으로 치달은 단계지만 정부가 혁신을 염두에 두고 타협에 임하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렇듯 강조한 ‘혁신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창진원은 어떤 변신을 꾀하고 있을까. 무엇보다 지난 한해 역대 최대 규모의 창업지원정책자금(3조4,249억원)이 벤처업계에 흘러들어온 상황에서 하루도 허투루 보낼 수 없다는 것이 김 원장의 다짐이다.

“지난해 4월 창진원장 3년이라는 임기를 부여받고 대전으로 내려왔을 때 여전히 비효율적인 지원방식부터 혁신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원장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만큼 직원들이 적극적으로 혁신방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판단했죠.”

김 원장은 의견 개진이 활발한 조직을 만드는 데서부터 시작한 지난 한 해를 되짚었다. 상사인 자신의 말을 시시콜콜 수첩에 받아적느라 책상만 쳐다보던 직원에게는 ‘메모할 시간에 나와 얼굴을 맞대고 토론하자’고 웃으며 말을 건넸다고 한다. ‘노(no)라고 말할 수 없는 조직은 죽은 조직’ ‘시키는 일만 해서는 미션을 완수할 수 없다’는 그의 가치관도 구성원과 수차례 공유했다.



처음에는 ‘그래도 되나’ 하는 의아한 분위기가 내부에 흘렀지만 그의 솔선수범하는 소통 노력에 힘입어 토론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김 원장은 “지금도 직원들은 대화 도중 메모를 하지만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일도 많아졌다”며 “원장의 말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원장과 의견을 주고받고 혁신을 찾는 식으로 조직이 바뀐 것”이라고 설명했다. ‘말문’이 열리자 ‘혁신의 문’도 열렸다는 그의 말대로 사람이 바뀌자 조직도 새로워졌다. 그간 풀리지 않았던 문제들도 머리를 맞대자 하나씩 해결되기 시작했다.

창업지원 프로그램 중에서도 인기가 상대적으로 낮았던 ‘창업기업 지원 서비스 바우처’는 변화한 창진원이 혁신의 옷을 입힌 단적인 사례다. 연간 100만원 한도에서 세무와 회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정책이지만 창업자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었다. 김 원장은 원인을 찾고 해결방안을 찾는 모든 과정에서 담당 직원들과 머리를 맞댔다. “수요자 입장에서 살펴보니 지원금액에 비해 창업자에게 요구하는 절차가 너무 까다롭더군요. 업무를 담당했던 팀장의 제안을 바탕으로 통장개설 의무화 등의 불필요한 절차를 없애고 시스템도 새로 개발했죠. 그랬더니 거짓말처럼 불만이 대폭 줄었습니다.” (웃음)

창진원에는 오는 10월 한 차례 더 변화의 바람이 불 예정이다. 2011년 창업진흥 전담기관으로 지정돼 사단법인으로서 관련 업무를 수행해온 창진원은 올해 초 준정부기관으로 지정됐고 하반기 중소기업창업지원법상의 법정기관으로 전환된다. 창진원의 숙원이었던 이번 전환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면 그동안 법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았던 창업지원 사업을 위한 업무수행에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김 원장은 “법정기관 자격을 갖추게 되면 더욱 능동적으로 창업지원 사업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며 “대한민국의 명실상부한 창업지원 전문기관으로 발돋움하는 기반이 마련된 것인 만큼 지원받는 창업자들의 만족도도 더욱 높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 원장은 벤처생태계가 꽃을 피우려면 ‘친(親)창업 분위기’가 확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나 공공기관이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어 창업생태계를 키우려 해도 현장에서 움직이는 창업가들이 신명 나게 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는다면 공염불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그는 창업가, 더 나아가 기업인을 바라보는 사회 일각의 인식에 그릇된 측면이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내 기술과 내 아이디어로 창업해 사회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다면 보람있는 삶이 아니겠는가”라고 운을 뗀 그는 “온갖 역경을 이겨내 성공한 창업기업인이라면 박수를 쳐줘야지 이들을 금수저인 2, 3세 대기업 자제들과 동일선상에 두고 싸잡아 비난하거나 국정감사에 불러내 망신을 주는 일은 옳지 않다”고 꼬집었다. 유니콘 기업만 추앙하는 사회 분위기에 대해서도 “꼬박꼬박 세금을 내고 직원 월급을 주는 기업이라면 어느 곳이든 존중받는 방향으로 바뀌어야만 창업이 활발해지고 자연스레 유니콘·데카콘 배출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원장은 유망하다는 평을 듣는 젊은이들이 의사나 판검사·공무원을 지망하는 사회 분위기 역시 창업계가 뛰어난 인재를 많이 품지 못하는 주요 원인이라고 지목했다. 최근 수년간 창업해 사세를 확장해온 스타트업들은 생활혁신에 치우친 서비스가 주를 이루는데 이 또한 기술형 창업이 가능한 석박사급 인재들이 창업을 매력적이지 않다고 판단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그는 “1990년대 말 1차 벤처붐 때는 대학 교수들도 기업 현장으로 뛰어 나왔지만 지금은 연구원이나 교수들이 절대 캠퍼스에서 나오려 하지 않는다”며 “성공적인 엑시트 사례가 많지 않다 보니 그들을 창업으로 이끌 마땅한 유인책이 없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그나마 3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 대기업을 그만두고 자신의 아이디어로 승부를 보겠다며 창업한 이들이 창업계의 주류로 활동하는 현상은 다행이라는 의견도 곁들였다.



김 원장은 최근 정부가 자본력이 풍부한 대기업을 국내 창업계의 플레이어로 끌어들이려고 노력하는 데 대해 기대감을 나타냈다. 대기업들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혁신의 DNA’를 외부에서 수혈하겠다는 의지를 지니고 창업계와 연결점을 찾는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는 것이 이유다.

“3~4년 전만 해도 대기업은 창업계와 완전히 따로 놀았죠. 아예 관심이 없었다고 할까요.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투자할 만한 창업기업을 찾으려고 여기저기 들추고 다니고 유망한 창업기업을 직접 보육하기도 합니다. 삼성·SK·포스코·롯데·한화 모두 적극적으로 창업계에 관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대기업이 유망한 창업기업을 발굴, 투자하는 과정에 걸림돌이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표적으로 금산분리는 비(非)금융 대기업이 핀테크 등 금융 관련 스타트업 인수합병(M&A)에 나서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스타트업 입장에서도 우려가 많다. 대기업 집단으로 편입한 후에는 모회사 혹은 계열사와의 거래가 ‘일감 몰아주기’가 되고 지주사로부터의 자금지원은 ‘부당지원’으로 규제 대상이 된다. 또 벤처기업확인 인증으로 받을 수 있는 여러 지원과 세제 혜택도 포기해야 하는 상황도 걸림돌로 꼽힌다.

김 원장은 이 같은 지적에 대해 “대기업이 국내 창업계의 ‘간을 보는’ 수준으로만 접근할 뿐 직접 투자를 하거나 인수하는 사례가 많지 않다는 것은 그만큼 허들(장애)이 있다는 의미”라면서도 “그렇다고 허들을 무조건 풀면 공정경쟁 이슈가 발생하기에 공정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대기업이 스타트업에 과감히 투자할 수 있도록 꼼꼼하게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리=이수민기자 noenemy@sedaily.com 사진=오승현기자



[약력] 김광현 창업진흥원장



△1961년 전남 장흥 △1979년 순천고 △1983년 전남대 영문학과 △1986년 서강대 영문학 석사 △2008년 서강대 경제대학원 석사(국제금융) △1988년 서울경제 기자 △2014년 한국경제 IT 전문기자(부국장) △2015~2018년 은행권창년창업재단(디캠프) 상임이사 △2018년 4월~ 창업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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