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10대 제자 가운데 하나인 자하가 한 지방의 책임자가 된 뒤 공자에게 어떻게 하면 정치를 잘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공자는 소심한 성격의 자하가 빨리 성과를 내려다 오히려 일을 그르치지 않을까 걱정했다. 이에 공자는 “서두르지 말고 작은 이익에 집착하지 마라. 서두르면 도달할 수 없고 작은 이익에 집착하면 큰일을 이룰 수 없다(無欲速 無見小利 欲速則不達 見小利則大事不成)”고 말했다.
누구나 새롭게 일을 맡게 되면 의욕을 불태우게 된다. 어떻게 해서든 좋은 결과를 내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업적을 위해 지나치게 서두르면 문제가 발생한다. 무언가를 이루려고 조바심을 내면 성과는커녕 되레 일을 그르치게 되기 때문이다. 최근 북한 핵협상 과정을 지켜보면서 공자의 지적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미국도 그렇고 한국도 너무 서두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친서를 교환하면서 북미협상의 돌파구가 마련되는 분위기다. 지난 2월 말 베트남 하노이에서 개최된 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후 험한 말을 주고받았던 양국이 다시 회담 테이블에 앉을 채비를 하고 있다. 북미 대화의 분위기가 무르익자 우리 정부도 남북대화에 조바심을 내고 있다.
문제는 북한의 비핵화가 칼로 두부를 자르는 것처럼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데 있다. 1993년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선언으로 핵 문제가 글로벌 이슈로 부각된 후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비롯한 국제사회는 26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북한 핵을 제거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으나 사찰 과정에서 번번이 무산됐다. 여기에는 북한과 국제사회의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 국제사회는 북한 핵을 깨끗이 제거하려 하는 반면 북한은 핵 시설을 최대한 감추면서 반대급부를 많이 챙기려 한다. 2월 말 하노이에서 개최된 북미회담이 결렬된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은 핵을 비롯한 모든 대량살상무기 폐기와 제재완화를 맞바꾸는 빅딜을 원했지만 북한은 단계적 비핵화를 고수했다. 하노이 노딜은 실무자 선에서 치밀한 조율 없는 톱다운 방식의 협상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잘 보여준다.
그로부터 4개월이 지난 지금 사정은 얼마나 달라졌는가.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북한은 여전히 핵 시설을 찔끔찔끔 폐기하면서 종전선언과 같은 굵직굵직한 대가를 요구하는 살라미 전술을 버리지 않고 있다. 미국 정보당국이 “김 위원장은 비핵화를 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공개적으로 밝혔을 정도다. 이런 상태에서 정상회담을 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각국의 지도자들이 상대국 정상과 회담을 할 때 가장 경계하는 것이 있다. 그건 돌출발언이다. 이는 사전에 조율을 거치지 않고 정상회담 도중에 갑자기 튀어나오는 발언을 뜻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에서 노딜을 선언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4월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를 요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한마디로 거절한 것도 비슷한 케이스다. 각국 외교관들이 정상회담에 앞서 지루한 실무회담을 하는 것은 바로 돌출발언을 없애기 위해서다.
트럼프 대통령도 문 대통령도 북핵 문제를 정상회담을 통해 단숨에 풀려는 조급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지금 북핵 문제가 잘 풀리지 않고 있는 근본적인 것은 서로 간에 신뢰가 없기 때문이다. 불신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아무리 정상끼리 만나봐야 해결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언젠가 김 위원장도 말했다시피 어차피 북핵 폐기는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북한은 이미 북중러 밀착을 통해 장기 포석에 나선 상태다. 이걸 정상회담을 통해 단기간에 해결하려는 것은 오히려 일을 그르칠 가능성이 크다. 그것도 5년 임기의 단임 정부가 재임 중 성과를 내겠다고 영변 핵 폐기와 같은 아주 작은 부분에만 매달리는 것은 ‘완전한 북 비핵화’를 어렵게 할 뿐이다. 북핵 협상은 힘들더라도 긴 안목을 갖고 꾸준히 추진해야 한다. 작은 이익에 집착해 서두르면 큰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공자의 말을 되새겨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cso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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