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찰은 ‘눈치게임’이다. 다른 사람이 어떤 조건을 써내는지 개찰 결과 뚜껑을 열어볼 때까지 알 수 없다. 이윤도 남겨야 하지만 선택도 받아야 하기에 고심을 거듭하며 응찰조건을 가다듬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암암리에 입찰담합이 생기곤 한다. 이는 “가격을 어느 수준 이하로는 낮춰 쓰지 말자”라는 업체들 사이의 약속으로 위법한 합의다. 가격이 올라갈 소지가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한 행위가 발각되면 발주처는 부당하게 높은 가격을 떠안았다는 이유로 담합사업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한다.
담합의 직접 피해자인 발주처가 손해를 배상받은 사건은 많다. 그렇다면 발주처가 아니라 ‘담합 사실을 몰랐던 입찰참가자’도 손해배상을 구할 수 있을까. 지난 5월말 대법원은 “입찰참가자의 손해배상청구를 인정할 수 없다”는 파기환송 판결을 내렸다(대법원 2019. 5. 30. 선고 2018다272452 판결). 이 사건에서는 여러 회사가 팀을 꾸려 입찰에 참가했는데 각 팀의 팀장을 맡은 대표 회사끼리 가격의 하한선을 합의한 것이 문제가 됐다. 담합이 밝혀지자 팀원급 회사(구성원사)는 “대표사들끼리 담합한 줄 알았더라면 입찰에 참가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참가하기 위해 들인 출자금을 돌려달라는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다음 두 가지 이유로 이들의 손해배상청구를 기각했다. 우선 대법원은 구성원사가 담합 사실을 알았을 경우 바로 공동수급체를 탈퇴하였을 것이라는 구체적인 ‘개연성’을 증명해야 한다고 보았다. 특히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담합의 구체적인 내용이 구성원사에게 경제적으로 유리했다는 점 등과 함께 해당 구성원사의 기존 행동방식을 고려했다. 똑같이 대표사들끼리 담합했던 다른 입찰의 경우에도 자신의 팀이 낙찰을 받았을 때는 이를 문제 삼지 않은 채 이득을 취했다는 점이다. 입찰에서 탈락한 상황에서만 탈퇴했으리라 주장하는 것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격이라는 평가가 깔려 있다는 해석이다.
또 다른 쟁점은 손해배상청구 제기의 시점이다. 재판부는 발주처와 입찰참가자의 손해배상에 적용되는 소멸시효 기산점(기간의 계산이 시작되는 시점)은 다르다고 판단했다. 발주처의 경우, 담합행위자가 공정거래위원회 처분에 불복하여 소송을 제기했다면 원칙적으로 그 소송이 확정된 때가 기산점이 된다. 반면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구성원사가 대표사의 담합 사실을 알게 된 때부터 곧바로 소멸시효가 진행한다고 봤다. 소멸시효 기산점이 앞당겨지니 손해배상청구도 빨리 제기해야 한다는 결론이다.
판결의 함의는 이렇다. 담합 사실을 모른 채 입찰에 참가한 경우 항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담합의 내용, 영향, 입찰 경과와 함께 구성원사가 이를 알았다면 과연 탈퇴하였을지 보여주는 정황도 중요하게 고려된다. 이와 더불어 “이미 늦었다”는 판단을 받지 않도록 소멸시효 기산점의 차이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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