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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도시-김중업건축박물관] 단순함 속에 빛나는 조형미...폐공장, 건축거장의 예술혼 품다

김중업건축박물관 전경. 40여년간 제약회사 공장 건물로 활용되다 지난 2016년 국내 최초 건축박물관으로 개관했다./이호재기자




“소박하다”.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에 위치한 ‘김중업건축박물관’을 찾는 방문객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건축 박물관이자 한국 근현대 건축의 거장인 김중업씨가 세운 건물에 대한 기대심에서일까. 그러나 건물을 찬찬히 뜯어보다 보면 보인다. 나름의 멋과 의미가 구석구석 빛을 발하고 있다. 지난 2014년 개관 이래 23만8,000여명의 관람객이 김중업건축박물관을 찾은 이유다. 이 박물관은 안양의 명소로 자리 잡으며 도시에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김중업 건축가는 김수근씨와 함께 한국 현대 건축의 문을 연 1세대 건축가다.



르코르뷔지에의 서양 건축 흡수

김중업 초기 대표작 건물을 개조

◇제약회사 공장에서 박물관으로=김중업건축박물관을 제대로 들여다보려면 설립 배경을 알아야 한다. 유유산업의 의뢰를 받아 김중업씨가 1959년 설계하고 1960년 초 준공한 이 건물은 원래는 유유산업 안양공장이다. 유한양행의 계열사로 설립해 유한무역주식회사가 전신인 유유산업은 2006년까지 40여년간 이 건물을 제약 공장으로 활용했다. 준공 후 60여년이 지난 오늘날 지어진 건축물 사이에서 김중업건축박물관은 다소 소박해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준공 당시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공장이야, 호텔이야?”였다고 한다. 효율적 생산설비가 우선순위인 공장 건물이지만 예술미를 갖췄다는 평가다.

과감하게 밖으로 끄집어낸 기둥이 마치 거미 다리를 연상시킨다./이호재기자


단연 눈에 띄는 것은 본관 왼편에 자리 잡은 다섯 개의 기둥이다. 건물 안에 있어야 할 기둥이 무심한 듯 건물 바깥으로 빠져나와 있다. 얼핏 보면 다리가 긴 거미의 형상이 연상된다. 서양 현대건축의 영향을 받았다. 1952년 베니스에서 열린 ‘제1회 국제예술가대회’를 계기로 유명 건축가 르코르뷔지에를 만난 그는 3년 2개월간 그와 함께 일하며 서양의 원칙을 몸으로 흡수한다. 특히 김씨의 초기작인 이 박물관에는 그 영향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고은미 안양문화예술재단 학예연구사는 “르코르뷔지에를 만나고 한국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돼 설립한 건물이었던 만큼 명료하게 현대건축의 어휘가 읽힌다”면서 “박물관은 ‘이 기둥에 의해 건물이 지탱되고 있구나’를 확실히 드러내 보인다”고 설명했다.

기둥도, 계단도 모두 아랑곳않는듯 바깥으로 나와있다. /이호재기자


기둥·계단 밖으로 빼 공간활용 높여

흰 시멘트에 붉은 벽돌 조화도 눈길



◇건물에 대한 생각을 단순화하다=다른 곳에서도 이 같은 흔적이 엿보인다. 거대한 계단이 바깥으로 빠져나와 있다. 1층 천장에는 작은 정원도 있다. 이 역시 집을 얇은 바닥 판과 바닥 판 사이를 지탱하는 기둥, 오르내릴 수 있는 계단만 있으면 이 뼈대에 조립하듯 벽만 세우면 되는 간단한 구조물로 정의한 르코르뷔지에의 영향을 받았다. 벽돌로 하나하나 쌓아 올려 정교하고 화려한 장식으로 치장한 고전적인 집이 주를 이루던 때 르코르뷔지에는 간단한 집을 생각했다. 단순화했더니 오히려 공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었다. 기둥과 계단을 바깥으로 빼다 보니 내부 공간이 더 넓어졌다. 남는 공간에는 정원도 만들 수 있었다.

흰색 시멘트와 붉은 벽돌의 조화도 특징적이다. 1920년대까지만 해도 하얀색 시멘트를 건물 전체에 덧칠해 깨끗하고 반듯한 모양의 모던 건물이 유행했다. 이후 1950년대~1970년대 초에는 브루탈리즘(brutalism)이 새로운 시대를 열었는데 이때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거대한 콘크리트나 철제 블록 등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 거친 느낌을 자아내는 것이 특징으로 르코르뷔지에의 후기 건축물에서도 이 같은 형태를 엿볼 수 있다.

곳곳에서 유유산업의 ‘y’를 본딴 형상을 찾아볼 수 있다./이호재기자


구석구석에서는 그의 미적 감각을 엿볼 수 있다. 본관 현관 기둥을 유유산업의 ‘y’를 본뜬 형상으로 지었다. 서향인 별관 건물에는 빛이 길게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창문마다 차광막이 있는데 차광막 또한 y가 엮인 디자인을 품고 있다.

별관 외벽 모서리에는 아이와 엄마의 모습을 담은 ‘모자상’과 ‘개척자(pioneer)상’을 만나볼 수 있다. 김씨가 건물을 지을 때부터 공간을 따로 남겨뒀고, 이후 두 동상이 배치됐다. 고 연구사는 “단순한 공장인데 당시 해외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김중업씨에게 건축을 의뢰한 것을 보면 유유산업도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이 있었던 것 같다”면서 “김중업 건축가와 유유산업의 정신이 통해 예술을 품은 공장이 탄생한 것”이라고 말했다.

공사 중 출토된 안양사 명문 기와를 보관한 안양사지관. 그리고 안양박물관과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있어 함께 둘러볼 수 있다./이호재기자


고려 유적지·市박물관도 붙어있어

안양을 대표하는 명소로 자리잡아

◇도시를 빛내는 건축물=박물관 터 자체도 유래가 깊다. 박물관은 공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안양이라는 지명의 유래가 된 고려 시대 ‘안양사 명문 기와’가 출토된 곳이다. 김씨가 설계한 건물과 박물관 기능을 위해 필요한 공간 외에 나머지 건물들은 철거했다. 2017년 기존 평촌아트홀에 있던 안양박물관이 이곳 부지로 이전해 김중업건축박물관을 방문하면 안양박물관도 함께 둘러볼 수 있다.

박물관 내부에선 그의 생애와 그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이호재기자


현재 박물관은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다. 2개 층 모두 김씨의 생애와 작품을 볼 수 있는 상설전시실로 이용되고 있다. 1층에서는 김중업의 약력, 건축 세계, 스케치, 작품 중 하나인 서산부인과 등을 소개하며 컴퓨터 화면으로 그의 작품들을 볼 수 있는 아카이브 테이블을 마련해 놓았다. 2층은 김중업의 생애와 관련 유물을 살펴볼 수 있는 공간으로 그의 도면, 작품모형과 그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상 등을 통해 건축관을 이해할 수 있게 꾸몄다. 박물관은 안양시를 여행하거나 방문할 때 꼭 들러야 하는 명소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이주원기자 joowonmai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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