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남자친구’에서 송혜교가 썼던 립스틱 주세요. 1회에서 극 중 차수현이 쿠바에서 박보검을 처음 만났을 때 발랐던 거요.”
지난 26일 베트남의 수도인 하노이공항에 처음으로 문을 연 롯데면세점에는 베트남 현지인들로 붐볐다. 베트남 다낭과 냐짱 면세점에는 중국인과 환승을 위한 러시아 고객이 주를 이뤘다면 하노이는 베트남의 수도인 만큼 현지인의 이용도가 높은 탓이다. 롯데면세점의 화장품 코너를 찾은 한 베트남 여성은 느리지만 또렷한 한국어로 ‘송혜교 립스틱’을 주문했다.
이날 30도가 훌쩍 넘는 무더위에다 습한 날씨에도 하노이공항 앞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롯데면세점 하노이점 홍보대사로 공항을 찾은 배우 지창욱씨와 가수 슈퍼주니어를 보기 위해서다. 롯데면세점의 한류 마케팅의 저력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한류 팬들은 이들의 호텔과 동선까지 파악해 환호했다. 베트남에서 한류는 상상 이상이다. 베트남 국영방송에서도 지씨를 인터뷰하기 위해 찾을 정도였다.
롯데면세점은 올해 호주·뉴질랜드·베트남 등 6곳에서 점포를 열었으며 하반기 중에는 베트남 다낭 시내에 1곳을 추가로 오픈한다. 국내 면세점이 2~3년에 1개의 해외점포를 열기도 벅찼던 과거를 생각하면 상전벽해다. 국내 면세점이 해외에서 운영하는 매장은 7년 전 한 곳에 그칠 정도로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국내 면세점은 최근 몇 년 사이 인천·싱가포르창이·홍콩 등 아시아 3대 공항부터 오세아니아까지 해외로 영역을 넓히며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보복의 여파 등 대외 변수에 취약한 면세업 상황에서 국내 면세점은 내수시장에 안주하지 않고 해외에서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
29일 면세업계에 따르면 지난 2012년 1개에 불과했던 국내 면세점업체의 해외매장 수는 올해 19곳(롯데 14곳·신라 5곳)으로 대폭 늘어난다. 국내 면세업계는 아킬레스건으로 꼽혔던 해외시장을 공략하며 몇 년 만에 세계가 주목하는 산업으로 키운 것이다. 국내 면세점업계 톱 2인 롯데와 신라는 영국 면세유통전문지 ‘무디데이비드리포트’가 뽑은 글로벌 순위에서도 각각 2~3위를 차지하며 면세업계의 새 역사를 쓰고 있다.
◇롯데, 국내 1호 해외진출…오세아니아 첫발=매일 오전 호주 브리즈번공항의 롯데면세점은 위스키 무료시음을 하려는 각국 관광객으로 북적인다. 22도의 선선한 날씨에 여름옷을 입은 관광객들이 위스키를 시음하는 풍경은 브리즈번공항의 이색 볼거리로 꼽힐 정도다. 해외 면세점에서 시음코너를 운영하는 것이 신선하다는 반응과 함께 관광객들의 호응도 뜨겁다.
롯데면세점은 2012년 국내 업계 최초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공항점 오픈을 시작으로 해외시장 개척에 나섰다. 롯데면세점은 올해 상반기 이미 지난해 매출액을 넘어섰다. 롯데면세점은 매년 거의 2곳 이상의 해외 면세점을 추가하며 올해까지 14곳의 라인업을 완성해 2020년까지 해외 매출 1조원 달성을 목표로 뛰고 있다.
롯데면세점의 도쿄긴자점은 일본 1위 시내면세점이라는 상징성이자 현지화 성공모델. 도쿄긴자점은 출점 첫해인 2014년 매출이 200억원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약 900억원을 기록하며 일본 대표 시내면세점인 미쓰코시면세점을 뛰어넘었다. 긴자점의 성공은 소비세와 관세를 면제받는 ‘사전면세점(Duty Free)’과 구매 후 소비세를 환급받는 ‘사후면세점(Tax Free)’을 함께 운영하는 ‘듀얼 전략’이 주효했던 덕분이다.
롯데면세점은 지난해 ‘JR 듀티프리’를 인수해 올해 초 국내 최초로 오세아니아 진출이라는 과업을 이뤘다. 연 매출 1,000억원의 JR 듀티프리를 인수하면서 호주 멜버른 시내점 및 브리즈번·캔버라 등 총 5개점을 운영하는 동시에 지역 전문가를 섭외해 올해 오세아니아 지역 매출을 2,000억원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베트남은 롯데면세점 해외사업장 중 ‘최고 효자’ 점포다. 베트남 현지 업체와 견고한 파트너십을 구축한 롯데면세점 베트남법인은 2017년 다낭공항점에 이어 지난해 출범한 냐짱깜라인공항점까지 이례적으로 오픈 첫해 흑자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무디리포트 기준 롯데면세점은 60억9,300만유로(약 7조7,817억원)로 3년 연속 2위 자리를 유지했다. 면세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면세점 순위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1위 듀프리와 롯데와의 격차”라며 “롯데면세점은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25% 이상 늘면서 1위와의 격차를 23억유로에서 15억유로로 좁혔다”고 말했다.
◇신라, 국내 면세업계 중 첫 매출 1조원 달성=신라면세점은 우리나라 면세점 중 최초로 지난해 해외 매출 1조원을 달성하며 해외진출의 성공 가능성을 일찌감치 증명했다. 무디리포트 역시 “지난해 홍콩 첵랍콕공항 면세점에 입점하며 아시아 3대 공항에 모두 진입했고, 2억명으로 추산되는 잠재 고객을 확보해 중국시장의 접점을 마련했다”면서 신라면세점의 해외진출을 주목했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지난해 3월 열린 주주총회에서 2020년까지 글로벌 3위 사업자가 되겠다고 공언했으나 지난해 기준 이 같은 목표를 2년 앞당겨 달성했다.
신라면세점의 해외전략은 ‘글로벌 트로이카’ 입점으로 요약된다. 신라면세점은 2014년 싱가포르 창이국제공항 제1~4 여객터미널을 시작으로 홍콩 첵랍콕국제공항 등 세계 최초로 아시아 3대 국제공항면세점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공항면세점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화장품·향수 분야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주력 사업자로 자리 잡았다. 신라면세점은 2014년 10월 창이국제공항 면세점 운영권을 넘겨받은 후 3개월간 리모델링을 거쳤다. 신라면세점이 창이국제공항 단일공항에서만 운영하는 화장품·향수 및 패션 매장은 총 23개, 매장 규모는 8,000㎡(2,420평)에 달한다. 이는 국내 기업이 해외에서 운영하는 면세사업권 중에서 가장 큰 규모다. 신라면세점의 한 관계자는 “국내 중소·중견기업 화장품 브랜드와 동반 진출해 창이국제공항 면세점을 한류 문화 확산의 전진기지로 만들어 인천국제공항에 이은 ‘제2의 K코스메틱 쇼핑 허브’로 키워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보리기자 bori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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