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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킥스타트 키우자]英선 200만명 소셜벤처 종사...민관 연계 생태계 구축해야

<상> 한국형 소셜벤처 성공 방정식

소셜벤처는 수익모델 등 명확

포용적 일자리 지속적 창출 가능

국내서도 위안부 삶 재조명 등

다양한 비즈모델 갖춘 기업 등장

정부도 작년 활성화 방안 발표

'허브' 구축하고 펀드도 조성

아프리카 어린이가 국내 소셜 벤처 이노마드가 개발한 휴대용 수력발전기 ‘우노’를 들고 웃어 보이고 있다. /사진제공=이노마드




#탄자니아에 사는 아콰리나씨는 13년간 학대를 일삼다가 갑자기 잠적한 남편으로 인해 홀로 어린 아들을 키워야 했다. 온종일 무거운 양동이에 물을 받아와 집 앞 정원에서 채소를 키워 팔았지만 수입은 아들의 학비를 내기에도 부족했다. 아콰리나씨는 소셜벤처 ‘킥스타트(KickStart)’의 족동식(발을 이용해 움직이는) 펌프를 구매, 농사를 시작했다. 현재 대학까지 졸업한 그는 아들의 학비를 버는 것은 물론 집을 마련할 돈까지 저축하고 있다.

지난 1991년 설립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두고 있는 킥스타트는 전체 인구의 70% 가량이 농부인 케냐인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관개시설 개발에 나섰다. 이 회사가 내놓은 휴대용 수동식 펌프 ‘머니메이커 막스(MoneyMaker Max)’와 ‘머니메이커 힙 펌프(MoneyMaker Hip Pump)’는 각각 최대 170달러와 70달러에 판매된다. 이를 이용하면 지하 7m 깊이에서 물을 끌어올릴 수 있어 하루에 2에이커(약 8,093㎡)의 토지를 관개할 수 있다. 케냐 외에도 에디오피아와 남수단, 탄자니아, 앙골라 등 여타 아프리카 국가에서도 판매됐는데, 지난해 7월까지 팔린 펌프는 총 33만5,587대에 달한다.

이처럼 소셜벤처는 혁신적 기술이나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을 지칭한다. 혁신성을 지닌다는 점에서는 벤처기업과 사회성을 지닌다는 점에서는 사회적기업과 유사하지만 두 가지 지향점을 동시에 추구한다는 데서 차이가 있다. 해외에서는 킥스타트와 같은 성공한 소셜벤처가 다수 나왔지만 아직까지 국내에선 사회적기업과 소셜벤처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사회적기업의 경우 사회적기업육성법 제2조에 따라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등의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면서 영업활동을 하는 기업으로, 고용노동부장관의 인증을 받은 곳에 한정된다. 일자리 창출 면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수익모델이 없기 때문에 지속성은 물론 일자리 창출 효과도 한계가 있다. 반면 소셜벤처는 수익모델이 명확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더 많은 포용적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은 물론 지속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아콰리나씨와 같은 취약계층에게 단순히 생계를 유지할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수익사업까지 책임지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미 해외에서는 한국보다 앞서 소셜벤처가 활성화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영국이다. 영국문화원에 따르면 지난 2015년 기준 영국은 약 200만명이 7만여개의 소셜벤처에 종사하고 있다. 이들이 창출하는 경제적 가치만 연 240억파운드(35조3,460억원)에 달한다. 특히 이들의 73%는 손익분기점을 달성하고 있으며, 39%는 100만파운드(14억7,000만원) 이상을 매년 벌어들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성장에는 정부의 역할이 컸다. 영국 정부는 1억1,100만파운드(1,634억8,000만원)를 사회복지 분야에 투자하는 ‘사회적기업 투자 펀드(SEIF)’와 보조금과 장기대출 형태로 자금을 지원하는 ‘미래개발자(Future Builders)’, 소셜벤처에 5만~15만파운드(7,000만원~2억2,000만원)의 보조금을 지원하는 ‘투자계약준비기금(ICRF)’ 등과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 같은 노력 덕분에 영국에서는 ‘빅이슈(Big Issue)’ 등 성공적인 소셜벤처가 자리를 잡았다. 지난 1991년 창간된 빅이슈는 노숙인에게만 잡지 판매권을 부여하고 판매금액의 절반을 판매원에게 돌려주는 비즈니스모델로 약 340만명에게 거주지를 제공하는 성과를 낳았다. 빅이슈가 조성한 사회적자금만 1억5,000만파운드(2,208억원)인데, 빅이슈는 이를 300개 이상의 소셜벤처에 재투자해 3,000만파운드(441억원)가 넘는 매출을 창출했다고 평가받는다.



최근 국내에서도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출범한 소셜벤처들이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마리몬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삶을 재조명하는 ‘꽃할머니 프로젝트’나 아동학대 문제 해결을 위한 ‘프로젝트 나무’ 등을 진행, 이를 형상화한 다양한 소품을 판매해 연간 100억원이 넘는 매출을 달성하고 있다. 더구나 15~20%의 높은 영업이익률을 통해 다시 위안부 피해단체에 기부하는 등 선순환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노마드는 강이나 계곡에 흐르는 물을 전력 에너지로 변환해 스마트폰과 같은 전자기기를 충전할 수 있는 휴대형 수력 발전기를 개발, 미국 최대 크라우드펀딩에서 호평을 받은데 이어 현재 북미시장과 국내 일부 백화점 등에서 판매하고 있다. 전기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오지의 20억여명에게 이 제품을 공급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이나라 이노마드 이사는 “현재 인도네시아 정부와 함께 전력공급이 좋지 못한 섬에 수력발전소를 설립해 전기를 공급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며 “이르면 내년 말부터 사업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장점이 각광받으면서 정부 역시 소셜벤처 육성에 팔을 걷어 붙였다. 지난해 5월 중소벤처기업부는 처음으로 ‘소셜벤처 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 방안’을 발표, 소셜벤처 관련자들로 구성된 ‘소셜벤처 전문가 협의회’를 구성했고 소셜벤처 판별·평가 기준을 만들고 서울 성수동과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중심으로 소셜벤처 허브를 구축하기로 했다. 1,032억원의 임팩트펀드도 조성했는데, 이를 통해 지난해에만 47개사가 창업했으며 지난 3월까지 21개 기업이 188억6,000만원을 투자받았다. 정책의 빈틈을 강화하기 위해 중기부는 올해 처음으로 소셜벤처의 현황을 파악하기 위한 실태조사에도 나섰다. 중기부 관계자는 “실태조사는 소셜벤처일 가능성이 있는 3,000여개의 기업을 대상으로 진행하는데, 이는 소셜벤처의 규모와 운영실태, 애로사항, 정책수요 등의 기초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며 “조사는 11월경 완료될 예정인데, 이를 통해 그동안 단편적으로만 파악하고 있던 국내 소셜벤처의 구체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해 파푸아뉴기니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에서 ‘다 함께 잘 사는 혁신적 포용국가’ 비전을 처음으로 제시한데 이어 지난 6월 스웨덴 국빈방문기간 동안 ‘한-스웨덴 소셜벤처와의 대화’에 참가, 양국 소셜벤처의 발표를 청취하는 등 소셜벤처 활성화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업계는 정부의 정책에 힘입어 국내 소셜벤처 생태계가 빠르게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소셜벤처 역시 일반 스타트업과 마찬가지로 초기 투자는 물론 스케일업에 있어 정부의 역할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김정태 MYSC 대표는 “정책 중에서도 임팩트 펀드 조성은 소셜벤처에게 강력한 시그널을 준다”며 “소셜벤처들에게 ‘펀드가 뒤에서 바쳐주고 있다’는 인식이 생기면서 실천적인 전략을 마련하기가 수월해진 것은 물론 새로운 창업팀의 유입까지 이뤄지면서 소셜벤처 생태계 자체가 훨씬 긍정적으로 바뀌었다”고 짚었다. 김나영 크레비스파트너스 이사도 “국내의 경우 정부가 본격적으로 소셜벤처를 활성화하기 위해 움직인 것이 지난해였다”며 “그동안 자생적인 민간생태계에서 일부 소셜벤처들이 탄생했다면, 앞으로 민과 관이 함께하는 환경이 만들어진 만큼 올해부터는 더 많은 소셜벤처가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연하기자 yeona@sedaily.com



경일고 남북쪽에 집적지 형성…‘소셜벤처 메카’ 부상한 성수동
[한국판 킥스타트 키우자]
루트임팩트·소풍 등 입주 계기
2015년이후 소셜벤처 속속 둥지
대전·부산·전북에도 공동체 추진
제 2·3의 성수동 탄생할지 주목

서울 성수동 헤이그라운드에서 입주사 임직원들이 행사를 갖고 있다./사진제공=루트임팩트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자리한 경일고등학교는 소셜벤처업계에선 ‘표지판’으로 통한다. 경일고를 기준으로 남쪽으론 카우앤독이, 북쪽으론 헤이그라운드가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카우앤독과 헤이그라운드는 모두 소셜벤처가 밀집해 있는 공유 오피스로 유명하다. 경일고 북서쪽으로 조금만 발길을 돌리면 소셜벤처 전문 벤처캐피털(VC) 크레비스파트너스가 자리잡고 있다. 성수동이 ‘소셜벤처 메카’로 통한다는 방증이다.

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자생적인 ‘소셜벤처 공동체’를 꾸리려는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기존엔 민간 소셜벤처가 자발적으로 특정 지역에 커뮤니티를 꾸렸다면, 지금은 정부·대학·소셜벤처·VC 등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지역 거점을 구성하는 방식이다.

성수동은 대표적인 소셜벤처 집적지로 꼽힌다. 루트임팩트나 소풍 등이 성수동에 입주한 게 중요한 계기가 됐다. 루트임팩트 관계자는 “주변 기업가들에게 같이 (성수동으로) 오자고 한 게 집적지 형성에 주효했다”고 말했다. 루트임팩트와 소풍은 성수동에 공유오피스 헤이그라운드와 카우앤독을 마련하면서 소셜벤처의 메카로 급부상했다. 헤이그라운드는 소셜벤처·비영리단체 71개사와 직원 550여명을 수용하는 국내 최대 소셜벤처 공유 공간으로 성장했다. 다음커뮤니케이션(지금의 카카오)를 창업한 벤처1세대 이재웅 쏘카 대표는 2008년 소셜 벤처 엑셀러레이터 ‘소풍’을 설립하고 2016년 투자사 ‘옐로우독’을 창업했다. 소풍은 카우앤독이 문을 연 2015년 성수동으로 이사했다.

2016년엔 크레비스파트너스, 임팩트스퀘어 등 소셜벤처 전문 VC·액셀러레이터까지 들어서면서 성수동은 소셜벤처의 성지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성수동에 입주한 한 소셜벤처 대표는 “VC·액셀러레이터가 본격적으로 들어서기 시작한 3년 전부터 성수동으로 이동하는 소셜벤처가 늘어났다”고 소개했다.

최근엔 정부와 대학에서도 성수동 ‘허브화’에 발 벗고 나섰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지난달 25일 기술보증기금, 한국청년기업가정신재단, 소셜벤처 지원에 나서겠다고 발표한 게 대표적이다. 성수동 인근에 있는 한양대는 사회혁신 관련 융복합 학위를 만들고 관련 커리큘럼을 개발하고 있다. 한양대 경영학부는 산하에 ‘임팩트리서치랩’을 설치해 소셜벤처의 성과 조사에 나섰다.

업계에선 ‘제 2·3의 성수동’이 잇따라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때마침 중기부에서 대전·부산·전북창조경제혁신센터를 활용해 지방에도 소셜벤처 공동체를 마련한다는 복안을 세웠기 때문이다. 부산창경센터는 동명대와 대학생·예비창업자 대상 소셜벤처 교육에, 전북창경센터는 군산대와 전주벤처기업육성촉진기구발전협의회와 함께 지역 내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교육·비즈니스 모델 구축에 나섰다.

업계는 보편적인 ‘소셜벤처 공동체’를 꾸릴 계획이다. 루트임팩트, 크레비스파트너스, 임팩트스퀘어 등은 오는 4일 연대조직인 ‘임팩트 얼라이언스’의 창립총회를 열 예정이다. 루트임팩트 관계자는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에 집적하고 모으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닌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며 “커뮤니티를 통해 경험 있는 중간관리자를 양성하고 다양한 형태의 파트너십을 도모하는 등 실질적인 협력을 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우일기자 vit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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