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잡은 우승을 놓쳤지만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인스타그램 팔로어가 폭발적으로 늘었고 유튜브 관련 영상은 조회 수 40만을 넘겼다. 구글에 이름을 검색하면 키(175㎝)와 스윙 등 연관검색어가 9개나 뜬다.
18세 재미동포 여자 골프선수 노예림(영문명 예리미 노·하나금융그룹) 얘기다. 지난 4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 콩코드의 자택에서 전화를 받은 노예림은 “마지막 날 마지막 홀이 계속 생각나서 매일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 쇼트게임 연습하고 퍼트도 하고…. 정말 열심히 하고 있다”고 했다.
노예림은 아직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회원이 아닌데도 가장 유망한 스타로 주목받고 있다. 별도의 월요예선을 거치거나 초청선수로 일부 대회에 출전해왔는데 나갈 때마다 눈부신 기량과 매력적인 외모로 팬을 늘린다. 2일 미국 오리건주에서 끝난 포틀랜드 클래식 준우승이 결정적이었다. 노예림은 3라운드에 3타 차 단독 선두에 나섰다. 우승하면 월요예선을 거쳐 우승하는 역대 세 번째 진기록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최종 4라운드도 4홀 남기고 3타 차 선두라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17번홀에서 공동 선두를 허용했고 마지막 18번홀(파4)에서 타수를 잃어 1타 차로 역전패했다. 벙커에서 친 두 번째 샷이 그린 뒤 관중석 바로 앞에 멈췄다. 벌타 없이 공 위치를 옮겼으나 칩샷이 길어 2퍼트 보기로 준우승했다. 메이저대회 위민스 미국프로골프(PGA) 챔피언십 우승자 해나 그린(호주)이 파를 지켜 우승했다.
노예림은 마지막 칩샷을 지금 다시 할 수 있다면 핀에 잘 붙일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네, 자신 있어요”라고 망설임 없이 답했다. 당시 상황을 복기하면 사실 샷보다 공 위치를 옮기는 드롭 과정에 아쉬움이 더 컸다. 노예림은 “처음 드롭한 위치가 샷 하기에 각도는 더 좋았다. 하지만 한쪽 발이 스프링클러를 밟아야 하는 위치여서 다시 드롭하고 또다시 드롭해 세 번째 떨어뜨린 곳에서 쳤다”고 돌아보며 “스프링클러가 좀 신경 쓰였어도 오르막이라 처음이 샷 하기 편했는데 긴장한 나머지 그런 계산을 하지 못했다”고 자책했다.
최종 라운드 전날 밤의 얘기도 들려줬다. 다음날 아침 8시로 알람을 맞춰놓았는데 새벽 5시에 눈이 떠졌다고 한다. 노예림은 “그때부터 1시간마다 네 번을 깼다. 푹 자고 싶었는데 우승 장면도 떠올려지고 심장이 쿵쾅쿵쾅 뛰어서 깊이 잘 수가 없었다”며 “그런 적은 처음이다. 주니어 때 우승 경험도 많은 편이었는데 확실히 그때와는 달랐다”고 했다. 그는 “최종 라운드 들어서도 계속 15~18번홀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쳤는데 그 홀들에서 무너졌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우승 기회가 왔을 때 잡지 못해 오랫동안 슬럼프를 겪는 선수도 많지만 노예림에게 쏠리는 시선에는 오히려 기대가 가득하다. LPGA 투어 입학시험인 퀄리파잉 토너먼트를 치르기도 전에 공동 6위(손베리 크리크 클래식)에 준우승까지 차지하며 화려한 쇼케이스를 치렀기 때문이다. 노예림은 오는 20일 일본 대회에 나갔다가 다음달 3일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하나금융그룹 챔피언십에 참가해 6월 한국여자오픈에 이어 다시 한국팬들을 만난다. 이후 퀄리파잉에 응시해 내년 LPGA 투어 출전권에 도전한다.
이번 준우승으로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져 신기하다는 노예림은 “진짜 많은 분들이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메시지를 보내주셨다. 하나도 안 빼고 다 읽어봤는데 다 진짜 좋았다”며 “‘아쉽지만 잘했다’ ‘나중에 더 많이 우승할 수 있다’는 응원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노예림은 올해 4월 오클랜드 홈구장에서 열린 메이저리그 야구 보스턴전에서 시구도 했다. 그 정도로 어릴 적부터 동네의 자랑이었다. 지난해 주니어 PGA부터 US 걸스 주니어, 캐나다 여자 아마추어까지 전국 규모 3개 대회에서 연속 우승하는 등 4승을 휩쓸며 미국주니어골프협회(AJGA)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다. 지역지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의 표현을 빌리면 실크처럼 부드러운 스윙으로 280야드 장타를 너끈히 친다.
지난해 6월에는 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캠퍼스(UCLA)로부터 입학 허가를 받고도 진학을 포기한 사연이 현지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서던캘리포니아대(USC)의 입학 제안도 사양했다. 대학 진학 대신 올 초 프로로 전향해 LPGA 1~3부와 KLPGA 투어 일부 대회를 경험했다.
노예림은 “대학을 갔다면 장학금 받고 다음 달 입학하는 일정이었다. 입학 포기는 어려운 결정이었다”면서도 “골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 도전한 것”이라고 시원스럽게 설명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워낙 운동을 좋아했고 가만히 앉아서 공부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면서 “친구들과 같이 생활 못 하는 게 마음에 걸렸을 뿐 대학 가서 공부하고 싶은 분야도 솔직히 떠오르지 않았다”며 쑥스럽게 웃었다. 2017년부터 홈스쿨링으로 돌아선 노예림은 하루 2~3시간 온라인 수업을 받고 나머지 시간은 모두 골프에 투자했다. 그는 “예전에는 그냥 아빠랑 코치님이 시키니까 연습한다는 생각이었는데 지난해부터는 저를 위해서 연습하고 있다”고 했다. 아버지 노성문씨는 “대학 입학 뒤에 주니어 시절 기대했던 것보다 골프가 안 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주위 언니나 동료들의 여러 얘기를 들어보더니 자기는 골프가 더 좋고 경쟁력도 더 있다면서 대학에 안 가겠다고 결정하더라”며 “예림이는 대학은 나중에라도 원하면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노예림은 필드 위 패션으로도 관심을 모은다. 훤칠한 체구와 날씬한 체형 덕에 어떤 옷도 잘 소화한다는 칭찬을 듣는다. 흰 바탕에 네온색이 곁들여진 포틀랜드 클래식 마지막 날 복장도 여성 골퍼들 사이에 입소문을 타고 있다고 한다. 노예림은 “위아래 모두 너무 밝아 보이는 것 아닌지 걱정했는데 입어보니 엄마도 괜찮다고 했고 저도 마음에 들었다”며 “어릴 때부터 엄마한테 옷차림도 중요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선지 저를 꾸미는 일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가녀린 것 같은데 어떻게 그렇게 멀리 치느냐고 묻자 “보기보다 힘이 세다”고 했다. “어릴 때는 굉장히 통통했고 남자애들과 공놀이를 해도 지지 않았다”면서 “날씬해 보이지만 무거운 편이고 생각보다 힘이 세다. 이래 봬도 통뼈”라고 했다.
노예림은 ‘옷 잘 입는 선수’ ‘멀리 치는 선수’도 좋지만 “뭔가 다른 선수, 사람들한테 존경받는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이번에 TV 중계 해설자가 플레이도, 외모도 뭔가 다른 선수라고 소개하더라”며 “그 말이 참 듣기 좋았다”고 했다. 그가 연습할 때나, 경기할 때나 떠올리는 말은 ‘기회는 아무한테나 오는 게 아니라 준비한 사람한테만 온다’다. 이번 대회 자신의 경기 영상과 인터뷰를 몇 번씩 돌려봤다는 그는 “LPGA 투어 멤버가 돼서 다시 그런 기회가 오면 그때는 우승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힘줘 말했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사진제공=하나금융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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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2018년 ‘주니어 미국프로골프(PGA)’ ‘US 걸스 주니어’ ‘캐나다 여자 아마추어’ 3개 대회 연속 우승, 하나금융그룹 ‘박세리 주니어 챔피언십’ 우승, 주니어 라이더컵 출전, 미국주니어골프협회(AJGA) ‘올해의 선수상’ △2019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포틀랜드 클래식 2위, 손베리 크리크 클래식 공동 6위, 에비앙 챔피언십 공동 44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한국여자오픈 공동 31위 △세계랭킹 109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