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최근 이어지는 물가 하락의 요인으로 ‘수요 위축’을 지목했다. 양파·마늘 등 농산물 과잉 공급을 ‘마이너스 물가’의 주범으로 꼽은 정부의 설명과는 다소 결이 다른 지점이다.
KDI는 8일 발간한 ‘경제동향 9월호’에서 “대내외 수요가 위축되면서 우리 경제가 전반적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역대 최저를 기록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수요 위축에 공급 기저효과가 더해진 결과”라고 밝혔다.
KDI는 수요 위축의 근거로 소매 판매와 소비자심리지수 하락, 수출 부진 등을 내세웠다. 우선 7월 소매 판매액은 전년 같은 달보다 0.3% 감소했다. 6월 소매 판매액이 전년보다 1.2% 늘었음을 고려하면 눈에 띄는 감소폭이다. 8월 소비자심리지수 역시 전월 대비 3.4포인트 하락한 92.5를 기록했다.
대외 여건의 악화 속에 수출도 지난해 12월 이후 9개월째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8월 수출 금액은 대외 여건의 악화 속에서 전년 동월보다 13.6% 감소했다. 반도체(-30.7%), 석유화학(-19.2%), 석유제품(-14.1%) 등 대부분의 품목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인 탓이다.
정부와 KDI가 물가 하락의 핵심 요인을 다르게 분석하는 것에 대해 일각에서는 “정부가 수요 위축을 인정하는 것은 곧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실패를 자인하는 셈이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다만 KDI는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 하락) 우려에 대해서는 정부와 보조를 맞추며 “연말 이후 다시 상승 곡선을 그릴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KDI는 “근원물가(농산물·국제원자재 가격 등 일시적 영향이 큰 품목을 뺀 기초적인 물가) 상승률이 0% 후반대에 형성돼 있는 만큼 올해 말이면 일시적 요인이 소멸해 반등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종=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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