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예상했던 부작용도 어김없이 찾아왔습니다. 막대한 재정이 투입되는 사업인 만큼 나랏빚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처음부터 나왔었는데요. 역시나 해당 정책을 수행하는 공공기관의 부채가 가파르게 증가해 전년 대비 25배까지 늘어난 곳도 있다고 합니다. 그래도 정부는 아직 걱정할 수준이 아니라고 하는데요. 과연 정말로 괜찮은 걸까요.
우선 문재인 케어와 탈원전 정책 이후 공공기관의 부채 비율이 각각 어떻게 늘어났는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두 개 정책을 도맡아 수행하고 있는 공공기관은 각각 건강보험공단과 한국전력공사인데요. 정책이 시작된 이후 이들 기관의 부채는 무서운 속도로 쌓이고 있습니다.
건보공단의 경우 ‘문재인 케어’가 시작된 때인 2017년 당해 연도에는 4,000억원의 순이익을 냈지만 문케어가 본격화된 올해 5조원의 순손실을 낼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자산 규모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데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통계(2019~2023년 공공기관 중장기 재무관리계획)를 살펴보면 2017년 7조9,000억원이었던 부채 규모가 올해 13조1,000억원으로 66% 늘었습니다. 이대로 가면 오는 2023년 16조7,000억원으로 급증할 것으로 추산되기도 했죠. 과거 환자가 전액 부담했던 자기공명영상(MRI)과 상·하복부 초음파 검사 진료비, 2~3인실 입원비 등이 건보 적용 대상으로 포함되며 보험의 부담이 크게 늘었기 때문입니다.
탈원전 정책을 뒷받침하고 있는 한전의 상황도 건보공단과 다르지 않습니다. 국내 최대 공기업인 한전과 계열사의 부채는 지난해 114조2,000억원에서 올해 126조5,000억원으로 11% 늘었습니다. 한국남동발전 등 계열사를 제외한 한전의 부채 비율만 따져봐도 올해 112%에서 2023년 154%로 껑충 뛰어오를 것으로 전망됐습니다. 한전의 부채 비율 증가는 정부 탈원전 정책에 따라 상대적으로 생산비용이 낮은 석탄 화력발전을 줄이되 신규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추진하지 않고, 친환경적이지만 비싼 신재생에너지 및 LNG 생산을 늘리면서 발전 단가를 높아졌기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여기에 연료비와 환율 상승이라는 악재까지 겹치며 12조원(2016년 기준 12조1,600억원-자막 등)에 이르던 한전의 연간 영업이익은 지난해 2,080억원 손실을 보는 수준까지 곤두박질쳤죠.
문제는 앞으로 상황이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는 데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전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 추세를 보이고 있는 국가입니다. 지난 2일 통계청이 공개한 ‘세계와 한국의 인구 현황 및 전망’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는 26년 뒤인, 2045년이면, 전 세계에서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중이 가장 높은 국가가 됩니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중이 올해 14.9%에서 2045년 37%로 급증해, 일본을 앞지르고 세계 1위로 올라서게 되는 것이죠. 2067년에는 이 비중이 46.5%까지 치솟아 국민 2명 중 1명이 65세 이상 노인이 됩니다. 국민 한 명이 벌어 한 명을 부양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늘어난 노인들의 수만큼 65세 이상 노인 진료비 비중은 꾸준히 늘어 지난해 처음으로 전체 건보 진료비의 40%를 넘어섰습니다. 앞으로도 만성 질환 등이 늘면서 노인 의료비 부담이 가중될 가능성이 큽니다. 한전 또한 앞으로 전기료 누진제 개편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로 인한 인건비 상승까지 더해질 경우 실적 악화를 둘러싼 우려는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정부의 공공기관의 빚이 늘어나고 있는 문제는 비단 이 두 곳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은행 3사를 제외한 전체 공공기관 336개 중 39개 기관의 부채 규모는 해마다 꾸준히 늘어 지난해에는 479조원을 넘어섰고 오는 2023년이 되면 586조원을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죠. 따라서 공공기관에 막대한 부채가 쌓이는 근본적인 원인은 이를 관리하는 정부의 정책 실패와 기관 내부의 효율성 제고하고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공공기관 부채는 그 기관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결국 피해는 국민 개개인에게 돌아간다는 점에서 주의가 필요합니다. 정부는 부채 통계를 국가채무(D1), 일반정부(중앙·지방) 부채(D2), 공공부문 부채(D3) 등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눠 관리합니다. 이때 공공기관 부채가 속한 공공부문 부채는 일반정부 부채와 비금융 공기업 부채를 더한 뒤 공공부문 간 내부거래를 뺀 것이죠. 공공기관 부채는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에서 우리나라의 재정 상태를 진단하는 기본인 국가채무(D1)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정부는 공공기관 부채를 잘못 활용하고자 하는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통계상으로 정부부채를 늘리지 않으면서 돈을 양껏 끌어다 쓸 수 있다는 논리죠. 이렇게 물 쓰듯 ‘펑펑’ 공공기관 부채를 활용하다 보니 어느새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부문 부채는 유럽연합(EU)의 권고 수준인 60%를 넘어선 ‘위험’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공공부문 부채도 국가채무처럼 문제가 생기면 국가 재정으로 이를 메워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공공기관 스스로 부채를 해결할 수 없으면 국가에 손을 벌려야 하고 결국 국가의 재정은 국민의 세금이기 때문에 직접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죠. 예를 들어 ‘문재인 케어’를 도입할 당시 정부는 건강보험료 예상 수입의 20%를 국고로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건강보험 보장률 70%’라는 대선 공약을 지키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올해 국고지원율은 13.6%에 불과합니다. 정부는 2023년까지 매년 보험료율 인상률은 평균 3.2% 수준으로 관리해 부족분을 메운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고 있는 것이죠. 공공기관의 부채를 메우기 위해 더 많은 재정이 투입돼야 하고 재정을 충당하는 것은 세수이기에 더 많은 세금이 강요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공공기관의 부채가 늘어난다고 해서 그것이 무조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빚을 갚을 능력만 된다면 말이죠. 하지만 번 돈으로 대출금 이자도 못 갚는 ‘좀비 공공기관’이 출연하고 있다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량 공기업이던 한국동서발전, 한국중부발전, 지역난방공사 등은 기업의 채무상환능력을 나타내는 이자보상비율이 1.0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열심히 돈을 벌더라도 대출금 이자를 갚고 나면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는 구조에 놓이게 됐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공공기관이 적자를 감수하고라도 국민에게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서비스를 저렴하게 제공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공기관의 적자를 모두 이해하고 넘어가야 하는 건 아닙니다. 특히 지금처럼 정부의 대선 공약 밀어붙이기에 공기업이 이용되는 경우는 견제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 정부는 곳곳에서 비상등이 켜진 재정상태에도 불구하고 대대적으로 재정 투입을 늘려가고 있죠. 세수가 늘어날 곳은 안 보이는데 예산은 줄곧 늘어나는 탓에 부족한 재원은 국채 발행으로 충당하는 중입니다. 때문에 국가 채무는 올해 740조 8,000억원에서 2023년 1,061조 3,000억원까지 늘어날 전망입니다.
정부는 하루빨리 포퓰리즘의 ‘총대’를 공공기관에게 맡기는 것을 중단하고 공공기관도 내부 효율성과 재정 건전화를 회복할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국가가 지는 부채는 결국 우리의 미래 세대에게 짐이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미래 세대에게 당장의 고민을 떠넘기는 것은 책임 있는 정부의 역할이 아니죠. 국민 개개인에게 또 다른 부담을 떠 넘기지 않기 위해 공공기관 부채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필요한 때입니다.
/이종호기자 phillie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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