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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동이 풀어내는 한민족의 기원] 헝가리 목동들 승마 곡예서 무용총 수렵도를 보다

<10> 亞 기마유목민이 세운 나라 헝가리

유럽~亞 연결 중부유럽에 위치

마자르·훈족 등 亞 유목민 정착

유럽속 아시아계 '인종의 섬' 돼

훈족기병 활쏘는 모습 담은 벽화

고구려인 역동적 사냥 장면 닮아

성명·날짜 서양과 다르게 표기 등

기마 유목민 문화 아직 남아있어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중부유럽 중심국가 헝가리=헝가리는 유럽국가이지만 인종·언어·문화 등에서 여타 유럽국가들과는 달라 관심을 끄는 나라다.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중부유럽에 위치한 이 나라에서 ‘훈’ ‘몽골제국’ ‘오스만제국’ 등 아시아 기마군단이 오랜 기간 활약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유라시아 대초원 탐방의 일환으로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와 대초원 지역 등을 둘러볼 기회를 가졌다.

헝가리 면적은 우리나라보다 약간 작은 9만3,000㎢, 인구는 996만명,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만4,000달러 정도 되는 나라다. 슬로바키아·크로아티아·오스트리아 등 7개 국가로 둘러싸인 넓은 평원을 가진 내륙국가로 2,850㎞에 달하는 다뉴브강이 독일 슈바르츠발트에서 시작해 헝가리 북부 국경을 흐르다가 남쪽으로 수도 ‘부다페스트’를 지나면서 국토의 중심부를 종단하고 동쪽으로 흑해에 다다른다. 다뉴브강은 유럽에서 볼가강에 이어 두 번째로 긴 강으로 예로부터 동서유럽을 관통하면서 교역과 문화교류의 대통로가 돼온 국제 하천이다. 특히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중요한 경로로 훈·마자르·몽골·튀르크 등 아시아 기마유목민이 유럽대륙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본 강이다.

헝가리 국기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를 가로질러 흐르는 도나우강.


도나우강변에 있는 국회의사당 야경.


수도 부다페스트는 다뉴브강을 사이에 두고 동안의 ‘부다’와 서안의 ‘페스트’로 나뉜 도시로 오스트리아와 오스만제국 시대의 문화적 유산이 남아 있다. 부다는 지난 14세기께부터 헝가리의 수도로 왕궁 등 역사적인 건축물이 들어서 있는 도시이며 페스트는 상업도시로 두 도시는 1972년 합병해 하나가 됐다. 다뉴브강에서 바라보는 화려한 부다페스트의 야경은 명불허전이다.

헝가리 동부에는 ‘푸스타’ 대평원이 펼쳐진다. 이곳은 유라시아 대초원의 일부로 일찍이 동쪽에서 유목민이 이동해 목축생활을 해온 지역이다. 지금은 많은 지역이 경작지로 바뀌어 밀·옥수수·감자 등을 재배하고 있지만 아직도 말·양·소들을 대규모로 방목하는 유목의 전통이 남아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호르토바지 국립공원이 이곳에 있다.

◇마자르인이 세운 나라=헝가리 민족은 헝가리어를 사용하며 마자르인이라고도 한다. 마자르인은 1,500만명 정도이며 960만명 이상이 헝가리에 거주하고 전체 인구의 약 95%를 차지한다. 나머지 마자르인은 루마니아·세르비아·슬로바키아·우크라이나 등지에 있다. 이들은 아시아 기마민족의 후예로 알려졌다.

유럽에 진출한 최초의 아시아 기마군단은 흉노의 후예 훈족이다. 4세기 후반 훈족이 볼가강과 돈강을 건너 동고트를 점령하고 드네프르를 건너 서고트를 축출하는 등 유럽을 파죽지세로 공격하면서 들이닥쳤다. 유럽은 공포에 떨었고 이들의 공격을 ‘신의 징벌’이라고까지 했다. 고트족이 헝가리·이탈리아 등지로 피난하면서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을 초래하고 세계사와 세계지도를 바꾸게 된다. 434년에는 훈족의 왕 아틸라가 등극해 카스피해에서 라인강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아틸라는 유럽을 공포의 도가니에 몰아넣지만 453년 결혼 첫날밤에 의문의 죽음을 맞이했다. 이후 세력이 급격히 약화돼 소멸했으나 훈족은 유럽을 100년 가까이 지배했고 아틸라는 유럽 최강의 국가를 건설하는 역사를 썼다. 아틸라가 죽은 뒤 동로마제국에 패배한 훈족은 대부분 카스피해 북부, 러시아 남부, 흑해 북안 등으로 돌아갔으나 일부는 중부유럽에 남았다.

헝가리 동부에 자리 잡은 ‘푸스타 대평원’.


우랄산맥 부근의 초원 지대에서 목축 생활을 하던 마자르족은 5세기께 서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9세기께에는 우랄산맥에서 볼가강을 따라 이동하다 흑해 북안을 지나 카르파티아산맥과 도나우강 사이에 위치한 드넓은 헝가리 대평원으로 이동했다. 이들이 유럽에 남아 있던 훈족과 함께 헝가리 왕국을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유럽인들은 이들을 공포의 대상인 훈족의 후예로 생각하고 이들의 국가를 ‘Hun(훈)Gary(영토)’라고 불렀다고 한다. ‘경이로운 숫사슴의 전설’이라는 헝가리에서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훈족과 마자르족은 쌍둥이 아들로 피를 나눈 형제라고 한다.

이렇게 아시아 유목민이 동서의 교차로인 중부유럽에 정착하면서 유럽 속에 아시아계가 자리 잡은 ‘인종의 섬’이 됐다. 이후 아시아 기마군단 몽골, 오스만제국이 다시 중부유럽을 장악하게 된다.



◇헝가리의 역사=헝가리인들은 9세기 말 스스로 아틸라의 후예라고 주장하는 아르파드 대제 시대에 카르파티아 분지를 차지해 영토와 민족이 형성됐다. 초대 국왕 이슈트반 1세 때인 10세기께에는 기독교 국가가 되고 번영의 기틀을 마련했다.

1241~1242년 칭기즈칸의 손자 바투와 명장 수부타이의 침공으로 인해 몽골제국에 복속했고 몽골 해체 후 14~15세기에는 중부유럽의 강대국으로 부상했다. 이후 16세기에 다시 아시아 기마유목민의 국가인 오스만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갔고 일부 영토는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에 귀속됐다. 17세기 말에는 합스부르크가에 편입돼 150년간 지배를 받았으나 헝가리인들이 끈질기게 독립운동을 계속해 1867년부터 헝가리 내정은 독립하고 오스트리아가 외교·국방 등을 관장하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시대가 전개됐다. 이 제국은 프랑스나 통일 독일보다 넓었으며 1892년 당시 조선과 우호통상 항해조약을 맺은 나라이기도 하다.

제1차 세계대전 때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동맹국으로서 패전해 국토는 전쟁 전의 3분의1로 축소되고 인구도 1,820만명에서 790만명으로 줄어들었다. 실지 회복을 위해 제2차 세계대전 때 추축국에 가담했으나 다시 패배해 소련의 세력권에 들어가 공산화됐다. 1956년 대학생·노동자 등이 주도하는 헝가리 봉기가 발생하고 이후 체제 전환을 모색하다 1989년 공산 통치가 끝나고 오늘날에 이르렀다.

◇유럽의 섬 헝가리=헝가리는 유럽에 위치한 아시아계 국가다. 대평원에 정착한 마자르인은 슬라브족·게르만족 등과 혼혈이 이뤄졌으나 아시아인의 언어와 혈통이 유지되고 있다. 마자르어(헝가리어)는 우랄어족에 속하며 음운이나 형태적인 특성이 알타이어족과 유사하고 같은 교착어에 속한다. 유럽연합의 언어 중 헝가리·핀란드·에스토니아 3개 언어만 우랄어족에 속하며 나머지 국가는 모두 인도·유럽어족에 속한다.

헝가리인에게는 유목민 DNA의 특징이 남아 있다. 헝가리인의 대표적인 특징은 일에 대한 강한 집념과 책임감이며 이들은 일단 약속을 하면 끝까지 지키려고 한다. 또 가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손님을 후하게 대접하지만 무슨 일이든 빨리 관심을 갖고 빨리 식어버리는 냄비근성도 있다고 한다. 또 헝가리인은 아시아에서 이동한 민족이지만 유럽인과 많은 혼혈이 이뤄져 외모는 유럽인을 닮았으나 눈이 깊지 않고 팔다리도 상대적으로 짧은 특성이 있다고 한다.

무용총 수렵도.


훈족 기병이 뒤쫓아오는 적을 향해 화살을 쏘는 모습을 담은 벽화(아래 사진). 기마 중 몸을 돌려 활을 쏘는 모습이 우리나라 경주에 있는 무용총 수렵화(위 사진)에서 표현한 고구려인의 사냥 장면과 꼭 닮았다.


마자르족은 아시아 기마군단과 마찬가지로 기마술과 궁술에 능했으며 마상에서 몸을 돌려 화살을 쏠 수 있는 몇 안 되는 민족에 속한다. 고구려 벽화에서 바로 이들처럼 몸을 뒤로 돌려 활을 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이를 ‘파르티안 샷(partian shot)’이라고 하는데 유라시아 기마유목민족의 전유물로 적을 공포와 혼란에 빠지게 했다. 그들이 공격하려고 하는지, 퇴각하려고 하는지 작전을 알 수 없고 후퇴하는 줄 알았는데 돌아서서 바로 공격하기 때문이다. 헝가리에서는 매년 7월 첫째주 말 초원에서 ‘승마의 날’ 축제가 벌어진다. 몽골의 ‘나담축제’를 연상시킨다. 각국에서 참가한 마장 마술 국제경기가 열리고 헝가리 목동들의 승마 곡예가 펼쳐지는 행사로 기마유목민들의 문화가 지금껏 남아 있다.

마자르인 문화에서도 서양과 다른 모습이 많이 나타난다. 성명에서 유럽계와는 달리 성이 먼저이고 이름이 다음에 있다. 날짜도 연, 월, 일 순으로 쓴다. 또 시대나 지도자에 따라 고유의 샤머니즘에서 가톨릭·이슬람·신교 등으로 환경과 시대에 따라 종교를 바꾸는 융통성도 동시에 발휘했다. 마자르인은 문화적 응집력이 강하고 전통을 존중한다. 헝가리는 고유의 음악·미술·문학 등도 오랫동안 유지해왔다. 음악에서는 작곡가 프란츠 폰 리스트, 졸탄 코다이, 벨러 버르토크와 지휘자 조지 숄티 등이 유명하다. 헝가리인 중 13명이 노벨상을 받았고 이 중 9명이 과학 분야다.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시절부터의 과학 교육과 엘리트 교육의 성과와 기마유목민의 자유분방한 기질이 어우러진 결과가 아닐까 한다.

유럽 중앙에 살고 있으나 아시아 기마유목민인 헝가리의 마자르인, 이들은 유라시아에서 대활약한 아시아 기마유목민의 오랜 역사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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