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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통해 세상읽기] 회맹비색 晦盲否索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ASF 확산·한일 갈등·조국사태 등

한치앞도 안보이는 그믐밤 같아

위기 상황에선 불안감 키우기보다

이해득실 계산 말고 해결책 찾아야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심상치 않다. 처음 파주에서 확진 판정이 났을 때만 해도 방역에 주의하고 사람과 차량의 이동을 통제하면 확산을 막을 수 있으리라 희망 섞인 기대를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ASF 확진 판정이 1곳에서 9곳으로 늘어났고 매몰 처분한 돼지만도 2만마리를 넘어서고 있다.

현재 방역당국과 농가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군데군데 확산 방지를 위한 노력에 허점이 나타나고 있다. 발병지역의 차량이 이동했지만 사전에 통제되지 않고 돼지 농장주가 통제지역 안팎을 아무런 제지 없이 돌아다니고 있다. 지금 ASF 확진 판정이 경기도 북부에 한정돼 있지만 경기 여타 지역과 강원도로 확산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ASF의 전국화라는 최악의 상황을 겪게 된다.

우리 사회는 지금 내우외환을 겪고 있다. ASF 초동대처에 실패해 어디로 확산할지 모르는 불안을 느끼고 있다. 이외에 우리나라와 일본의 무역갈등은 장기화로 나아가고 있지만 아직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와 일본 정치인과 당국이 각각 상대를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려던 초기에 날 선 반응을 보이던 것과 달리 최근에는 자극적인 언사가 덜 나오고 있다. 확전에 신중해진 것으로 보이지만 해결의 실마리라고 할 수는 없다.

북미대화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지만 아직 밀고 당기는 양상이다. 그중에 남북한은 긴밀한 의견 교류를 하지 못해 일시적 단절상태를 보이고 있다. 남북의 긴장완화와 국제관계가 희망대로 진행되지 않고, 정상회담·공동선언을 하더라도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불가역적 상황이 마련되지는 않고 있다.





내부적으로 조국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여야의 날 선 대치가 인사청문회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아직 검찰에서 수사가 진행 중이라 청와대와 여야 모두 정국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른다. 이해 당사자는 각자 자신이 바라는 방향으로 정국을 이끌어가고자 접점을 찾을 수 없는 대립을 보이고 있다.

현안이 하나도 아니고 여럿이 동시에 나타나 귀결의 방향이 보이지 않으니 많은 사람이 답답하다고 하소연한다. 이러한 답답함은 남송시대 시공간에서 유학이 제 노릇을 하지 못해 암울함을 느꼈던 주희(朱熹)의 심정에 견줄 수 있다. 유학이 학계의 논의를 주도하고 올바른 가치를 제시하지 못하자 사대부는 문장을 짓는 놀음에 빠져 있으니 불교·도교가 득세하고 권모술수로 공명을 찾는 사람이 나날이 늘어났다. 주희는 이러한 암울한 심정을 ‘대학장구(大學章句)’를 집필하면서 서문에 여덟 글자로 표현했다. ‘회맹비색(晦盲否索) 반복침고(反復沈痼).’

회(晦)는 달이 뜨지 않아 주위가 깜깜한 그믐밤을 가리킨다. 맹(盲)은 시력을 잃어 앞뒤를 분간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비(否)는 통로나 길이 막혀 소통하지 못하는 상태다. 바위가 굴러떨어져 길이 막히고 콧구멍이 막혀 숨을 쉬지 못하는 상황을 떠올리면 좋겠다. 색(索)은 비와 마찬가지로 막혀서 통하지 않는 상황을 가리킨다. 홍수가 나면 물이 흙과 함께 상류에서 떠내려와 강물이 다른 곳에 길을 트게 되는 상황을 떠올리면 좋겠다. 반복(反復)은 정상이 뒤집어지고 좋지 않은 상황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침(沈)은 물속에 가라앉아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고 고(痼)는 병이 더 심해져 치료 방법을 찾지 못하는 상황이다.

지금의 어둡고 답답한 상황을 ‘회맹비색 반복침고’만큼 잘 표현한 말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둡고 답답하다고 해서 모든 상황이 자연적으로 좋아지리라고 희망 섞인 기대를 할 수는 없다. 또 상황이 지금보다 더 나빠진다고 사실보다 더 부풀리는 것도 사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위기에는 불안을 키우는 사람보다 해결책을 찾는 사람이 더 위대하다. 지금이라도 이해득실로 사태를 계산하지 말고 당장 사태를 해결하는 모임을 꾸리고 나중에 공과를 따지는 태도의 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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