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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론직설]"소재부품 기술력 키우려면 '先투자 後평가'로 환경규제 바꿔야"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 학회장>

잣대 유연하게 적용할 '패스트트랙' 도입 필요

국산화 성공해도 국내에서만 판다면 의미없어

해외 공급처 확보할 수 있는 품목에 집중해야

中 물량공세에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고전

기업들 투자 늘릴수 있게 제도적 뒷받침 절실





박재근 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은 일본의 수출규제가 한국 소재부품 산업에 기회가 될 수 있다며 장기적인 육성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욱기자


일본이 반도체 소재부품에 대한 수출규제를 시행한 지 100일 남짓 지났다. 처음 우려했던 것보다 국내 업계의 타격은 크지 않은 상황이다. 확전 양상도 아직은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가 관련 산업 육성책을 내놓은 가운데 일부 품목에서는 국산화에 성공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하지만 불안감은 여전하다. 언제 어떤 형태로 추가 규제가 이뤄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디스플레이 업계도 찬바람이 거세다. 중국의 물량공세가 거세지면서 액정표시장치(LCD)에 이어 유기발광다이오드(OLED)까지 휘청거릴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업계에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 7일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을 만나 일본 수출규제를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지 디스플레이 업계의 위기 극복 방안 등을 들어봤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소재에 대한 일본의 수출규제 목적은.

△경제적인 것보다는 정치적인 요인이 크다. 일본 수출규제의 궁극적인 피해자는 일본 소재부품 기업이다. 일본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의 30% 이상이 한국에 공급된다. 일본 업체에는 한국이 큰 고객이라는 의미다. 이런 수요처가 막히면 일본 관련 산업 자체가 붕괴할 수 있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즉 정보기술(IT) 밸류체인(가치사슬) 차원에서 보면 일본의 행위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런 사실을 알렸고 일본 정부도 이를 인지하고 있다. 그래서 일본 정부는 수출규제가 아니라 전략물자 관리 차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금 일본 기업들은 한국과의 분란이 길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어 일본 정부도 고심이 깊을 것이다.

-그렇다면 조만간 타협할 여지도 있지 않나.

△정치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상황이 해소되지 않으면 쉽게 풀리지 않을 수 있다. 일본 정부가 자국 기업들의 우려를 의식해 가스 관련 일부 품목에 대해 허가를 해주고 있지만 액체 관련 품목에 대해서는 아직 수출허가를 안 해주고 있다. 일본 정부가 여전히 정치적인 이슈로서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얘기다. 걱정되는 것은 일본 정부가 상황을 봐가면서 다른 소재부품으로 제재 범위를 넓힐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일본이 일부 품목에 대해 수출허가를 해주는 것을 반가워할 수 없는 까닭이다. 불확실성이 여전하다.

-일본의 조치 이후 우리 기업들도 대응에 나서고 정부도 육성책을 내놨는데.

△일본의 수출제재가 시작된 지 100여일 정도 지났는데 우리 업계에서 신속하게 대응해 어느 정도 성과를 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만·중국으로 구입처를 다변화하고 한두 품목은 국산화에 성공하는 등 급박한 위기는 넘겼다고 할 수 있다. 액체 불화수소의 경우 증산 작업에 들어갔다고 한다. 하지만 대기업들은 스스로 헤쳐나갈 수 있지만 중소·중견기업은 타격이 불가피하다. 피해 발생 시 보상지원 시스템을 갖추고 미리 재고를 확보하는 등의 정부 조치는 적절하다. 반도체 관련 20여개 등 소재부품장비 100대 품목을 단계적으로 국산화하는 계획이 그대로만 실행되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들 품목의 100% 국산화가 가능한지가 문제다.

△아직 기술력이 부족하고 규모의 경제가 이뤄지지 않아 100% 국산화는 불가능하다. 포토레지스트의 경우 기술 난도가 매우 높다. 국산화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는 난도가 낮은 제품 위주로 만들고 있는 게 현실이다. 기술 난도가 낮은 제품은 빨리 따라잡을 수 있고 원가절감에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일본 수출규제 품목은 글로벌 최고 수준의 제품이다. 이제는 옛날처럼 단순하게 국산화, 즉 기술 난도가 낮은 제품을 국산 제품으로 대체한다는 이런 개념이 전혀 아니다.

-그럼 어떤 국산화가 필요한가.

△기술 난도가 높은 글로벌 최고 수준의 국산화다. 이를 위해 앞으로 해야 할 일은 국산화를 꼭 해야 할 품목을 고르는 것이다. 소재부품을 국산화해도 우리나라에서만 팔 수 있다면 의미가 없다. 국내를 넘어 공급할 수 있는 국가를 다변화할 수 있는 품목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비슷한 차원에서 규모의 경제가 되는 소재부터 국산화하는 게 중요하다. 일본이 소재부품 강국이 된 것은 규모의 경제를 이뤄 독점적 지위를 확보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무엇보다 투자를 통해 기술력을 높일 수 있는 품목을 고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결과적으로 이들 3가지가 충족되는 분야에 집중해야 한다. 이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상당히 어렵고 도전적이다. 수월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기술력 확보가 말처럼 쉽지는 않을 텐데.

△기술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3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첫째, 소재부품장비 분야의 강소기업을 육성하는 것이다. 작지만 강한 기업을 많이 키워야 기술기반이 탄탄해질 수 있다. 해외 소재부품장비 업체의 생산기지 및 연구개발(R&D) 센터를 유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우리나라에는 우수한 인력이 많기 때문에 해외업체들도 관심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인수합병(M&A)도 중요하다. 유력·유망 해외업체 M&A는 기술격차를 단기간에 따라잡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게 가능하려면 정부가 할 일이 많아 보인다.

△환경·노동정책에 대한 변화가 있어야 한다. 우리는 엄격한 환경정책 때문에 공장을 짓고 싶어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환경규제는 일본보다 심한 편이라고 알고 있다. 지금처럼 ‘선(先)평가, 후(後)투자’ 방식으로 소재부품 강국이 될 수 있겠는가. 먼저 투자하게 한 뒤 나중에 평가하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소재부품장비 산업 육성이 급하다면 이런 식으로 환경규제를 유연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 ‘패스트트랙’ 같은 제도를 만드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업종 특성에 맞게 탄력근로시간을 확대하는 등 노동정책도 빨리 손질해야 한다. 최소 6개월~1년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기업들, 특히 중소·중견기업들의 요청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강소기업들은 어떻게 키워야 할까.

△강소기업을 육성한다는 이런저런 투자펀드는 많은데 성과는 미흡한 게 현실이다. 기술력 있는 강소기업들이 투자를 요청하면 대부분이 보증을 요구한다고 한다. 안정적으로만 하려고 하니 강소기업이 나올 리 없다. 특히 소재부품장비 산업은 선행 연구에 최소 2년 걸리고 시제품 생산에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데도 투자펀드들은 기술가치를 평가하기보다는 보증부터 받으려 하는 게 다반사다. 이를 돌파하려면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 정책펀드를 만들어 기술가치를 보고 가능성이 있는 기업에는 선투자하는 게 바람직한 방향이다.

-이 모든 게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쉽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장기적인 안목으로 계획을 세우고 추진해야 한다. 그래야 이 분야에서 글로벌 기업이 나올 수 있다. 불화수소를 국산화한 2개 기업만 보더라도 6년 전부터 투자하는 등 준비를 해왔다. 국가 핵심 소재부품장비 리스트를 만들고 이 품목을 관련법으로 지정할 필요가 있다. 핵심 소재부품장비 분야별 사업단 형식으로 국가 R&D를 추진하는 것도 중요하다. 지난 2011년 3월 일어난 동일본 대지진의 영향으로 IT 분야의 세계 밸류체인이 붕괴하며 국내 반도체 디스플레이 업체가 영향을 받았다. 당시 우리도 영향을 받아 국가별 수입 다변화를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자 국산화 얘기가 사그라들었다. 그때 준비를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번에야말로 전략적으로 나서 장기적 플랜을 세워 대응해야 할 때이다.



-국내 디스플레이 업계가 어려움에 처했다.

△중국 반도체디스플레이 굴기의 영향이 크다. 보조금 등 정부의 막대한 지원을 받은 중국 업체들이 물량공세를 하고 있어 힘든 상황이다. 우리 디스플레이 업체들은 그동안 일본·대만 등과 3번에 걸쳐 진행된 게임에서 이겼는데 이번 중국과의 전쟁은 만만치 않다. 2017년 LCD를 추월당한 데 이어 현재 추세라면 2021년이면 OLED까지 중국에 따라잡힐 공산이 크다. 중국은 한국을 넘어서기 위해 우수 인력을 스카우트하는 데 총력전을 펼치는 상황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투자를 늘리는 수밖에 없다. 이를 통해 대형 OLED 제품 쪽으로 신속하게 전환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제도·정책적 뒷받침도 중요하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시장이 정점을 찍었다는 걱정도 나온다.

△기술력이 있기 때문에 국내 반도체는 잘 버틸 것이다. 무엇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새로운 시장이 열린다. 5세대 이동통신에 자율주행차·사물인터넷·증강현실 ·인공지능·로봇 드론 등이 본격화되면 반도체가 더 필요하게 된다. 그래야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디스플레이는 반도체에 비해 시장이 적어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가능성이 높다. 삼성과 LG가 지속적으로 투자를 늘리는 이유다. 경쟁에서 이겨낼 수 있도록 정부도 적극적이고 장기적인 지원을 계속해야 한다. 인력을 키우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일본 수출규제가 한국에 기회가 될 수 있을까.

△장기적으로 볼 때 분명히 기회가 될 수 있다. 반도체 미세공정화를 극복하기 위해 그동안과는 다른 새로운 소재가 필요하고 이를 적용할 새로운 장비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 그동안 해외에 의존해온 소재와 장비를 국산화하는 게 중요하다. 지난 35년간 국내 반도체 업계는 많은 위기를 겪어왔고 그때마다 기업과 과학기술계가 위기를 극복해왔다. 시간의 문제지만 이번에도 분명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임석훈 논설위원 shim@sedaily.com

He is…

1959년에 태어나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5년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에 입사해 소재그룹장으로 2011년 3월까지 근무했다. 한양대와는 1999년부터 인연을 맺어 지금까지 융합전자공학부 석학교수로 재직 중이다. 차세대 반도체, 인공지능 등을 연구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특허 107건을 등록하고 307건을 출원했다. SC 논문도 247건을 썼다. 연구개발을 통해 삼성전자 등 6개 국내외 업체에 기술을 이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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