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 일가를 비롯해 삼성 그룹사 사장단 50여명이 호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추모식에 참석해 호암의 ‘사업보국’ 정신을 기렸다.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 사장에 취임한 지난 2010년 이후 처음으로 그룹사 사장단 모두와 식사를 함께하며 “사회에 보탬이 되자”고 강조하는 등 상생을 당부했다.
19일 삼성그룹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이날 오전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 인근 선영에서 개최된 이병철 창업주 32기 추도식에 3년만에 참석했다. 이 부회장은 이날 오전 10시께 검정색 제네시스 차량을 타고 추도식에 들어섰다.
이 부회장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따른 구속 수감과 해외 출장 등으로 지난 2년간 추도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이날 추도식에는 이 부회장 외에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부인 홍라희 전 리움 관장과 이 회장의 두 딸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등이 참석했다. 홍라희 전 관장과 이부진 사장 및 이서현 이사장은 나란히 한 차에 탑승한 채 추도식에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이건희 회장은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지난 2014년부터 줄곧 행사에 참석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가 삼성전자 창립 50주년인 해인만큼 김기남 부회장, 윤부근 부회장, 김현석 사장, 고동진 사장 등 삼성그룹 계열사 사장단 50여명도 참석해 호암의 창업정신을 되새겼다. 삼성그룹의 호암 추도식은 예전처럼 이 부회장 등 가족들이 먼저 도착해 참배한 후 사장단이 참배하는 순서로 진행됐다. 홍라희 전 관장과 이부진 사장, 이서현 이사장 등은 추도식 직후 자리를 떴다.
특히 이 부회장은 오는 22일 국정농단 관련 파기환송심 2차 공판을 앞둔 상황에서도 추도식에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이 부회장은 추도식 직후 삼성그룹 사장단과 별도 식사자리를 갖고 삼성그룹 사업 방향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 부회장이 삼성그룹사 사장단 전부를 대상으로 식사 자리를 주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부회장은 사장단을 대상으로 “추도식에 참석해주신 분들께 저희 가족을 대표해 점심 대접을 하고 싶어 자리를 마련했다”며 “안팎의 상황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흔들림 없이 경영에 임해 주셔서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선대회장님의 사업보국 이념을 기려 우리 사회와 나라에 보탬이 되도록 하자”며 “또한 지금의 위기가 미래를 위한 기회가 되도록 기존의 틀과 한계를 깨고 지혜를 모아 잘 헤쳐 나가자”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은 이달 초 삼성전자 창립 50주년 기념 방송에서 “같이 나누고 함께 성장하는 것이 세계 최고를 향한 길“이라고 상생을 강조한 바 있다. 업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이날 사장단 오찬 회동에서도 ”사회와 나라에 보탬이 되도록 하자“고 강조한 만큼 삼성그룹이 향후 ‘상생’에 바탕한 경영전략을 펼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 부회장이 이날 “위기가 기회가 되도록 해야”한다고 발언한 것과 관련해서는 미래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에 대한 고민이 드러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룹의 핵심축인 삼성전자는 반도체 가격 하락과 글로벌 무역 분쟁에 따른 영향으로 영업이익 감소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각국의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돼 향후 수년간 영업이익 반등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시스템 반도체 육성을 위한 ‘반도체 비전 2030’을 통해 133조원을 투자할 계획이지만 중국의 화웨이와 대만의 TSMC 등 중화권 업체들의 기세가 만만찮다. 이외에도 삼성바이오로직스 검찰 수사 등 삼성그룹을 둘러싼 외부 환경이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이 부회장이 “기존의 틀과 한계를 깨고 지혜를 모아 잘 헤쳐 나가자”고 강조한 만큼 삼성 특유의 ‘초격차’ 전략에도 한층 힘을 쏟을 전망이다. 삼성그룹은 인공지능(AI)과 전장 부문 등 신사업 육성을 위해 외부 인재 영입 등을 통한 공격적 전략에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의 올 3·4분기까지 연구개발 부문 누적 투자액만 사상 최대인 15조2,737억원을 기록하는 등 기술력 향상에도 힘쓰고 있다.
한편 이 부회장 일가에 앞서 이재현 CJ그룹 회장 일가가 이날 오전 9시께 선영을 찾아 추모식을 진행했다. 이재현 회장 내외를 비롯해 이경후 CJ ENM상무, 이선호 CJ제일제당 부장 등이 참석했다. CJ그룹과 삼성측은 상속분쟁이 불거진 2012년 이후 같은 날 시간을 달리해 그룹별 추모식을 진행중이다. 이날 오후 6시께에는 서울 중구 필동 CJ 인재원에서 이재현 회장을 제주(祭主)로 하는 제사가 진행되며 범삼성가 인사들이 집결할 것으로 예상된다.
신세계그룹에서는 장재영 신세계백화점 대표, 강희석 이마트 대표 등 계열사 사장단이 이날 오후 선영을 찾으며 정용진 부회장, 정유경 총괄사장 등 신세계 총수 일가는 예년처럼 추모식에 참석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용인=양철민기자 chop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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