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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통해 세상읽기] 撮土之多 (촬토지다·한줌의 흙이 모여 대지가 된다)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세상은 작은 것들 쌓여 큰 것 이뤄

어떻게 바뀔지 예측하긴 쉽지않아

'주 52시간 근로제'로 우리 사회 변화

예상되는 문제 검토해 혼선 축소를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동양학 교수




요즘 서울 시내 퇴근 시간이 이전보다 더 혼잡하다. 대중교통은 이용객으로 붐비고 도로는 차들로 막힌다. 주 52시간 근로제의 영향으로 오후6시를 전후로 사람과 차량이 몰리니 그만큼 정체가 심해지는 것이다. 주 52시간 근로제가 처음 논의돼 도입되기 이전에는 추상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었다. 막상 주 52시간 근로제가 거의 전 사업장으로 확대 시행되면서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되자 일상과 산업에 서서히 영향을 주고 있다.

퇴근 시간 정체만이 아니라 회식 문화에도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 이전에 ‘퇴근 이후의 시간’은 사실상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 업무가 계속되거나 일주일에 며칠 일찍 마친다고 해도 무슨 계획을 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 주 52시간 근로제가 시행되자 퇴근 시간에 맞춰 업무용 컴퓨터 전원이 자동으로 꺼지니 더 이상 업무를 볼 수 없다. 계속 근무하려면 사전에 초과 근무 허가를 받아야 한다. 상황이 이렇게 바뀌자 ‘퇴근 이후의 시간’은 이제 상수로서 자리하고 사람마다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됐다.



회사 입장에서도 초과 근무가 어려워지자 수십년간 지속해온 관행의 변화가 불가피하다. 근무 시간 안에 업무에 집중해 일을 끝내는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하고, 정부에 불가피한 경우 초과 근무를 할 수 있도록 예외 조치를 요구하기도 한다.

주 52시간 근로제처럼 하나의 제도가 시행되면 큰 변화가 충분히 예상될 수 있다. 하지만 철저히 준비하지 않았다가 새로운 제도를 시행해 문제가 생기면 아우성치고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사람이 신이 아닌 이상 제도나 정책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완전하게 예측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누구나 예상되는 상황마저도 방치했다가 시행한 뒤 우왕좌왕한다면 누구에게도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큰 변화를 가져오는 제도나 정책은 준비도 철저해야 하지만 가능한 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검토하는 사고 실험이 중요하다.



이와 관련해 ‘중용’에 흥미로운 내용이 나온다. 하늘과 대지처럼 거대한 세계도 결국 작은 것들이 모여 전체를 이루게 된다. 따라서 처음에 작고 보잘것없다고 소홀히 여길 것이 아니라 그 작은 것이 나중에 큰 것의 일부가 된다는 그림을 그릴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지는 처음에 한 줌의 흙이 많이 모인 것인데 나중에 최대로 넓고 두텁게 되자 높고 높은 화산을 싣고 있으면 무거운 줄 모른다. 또 강과 바다를 거두어들이면서 조금도 새어 나가지 않는다. 만물이 모두 대지에 각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부지일촬토지다·夫地一撮土之多, 급기광후·及其廣厚, 재화악이부중·載華嶽而不重, 진하해이불설·振河海而不洩, 만물재언·萬物載焉).”

하늘도 마찬가지다. 하늘은 처음에 반짝이는 작은 별이 모인 것인데 나중에 천체가 한없이 팽창하면 해와 달 그리고 모든 별자리가 하늘에 붙어 있고 만물이 하늘을 이불처럼 덮고 있다. 산도 마찬가지다. 처음에 자잘한 돌이 모여 이뤄지는데 나중에 넓고 크게 되면 산에 온갖 풀과 나무가 자라고 동물이 뛰놀고 자원이 묻히게 된다.

사실 한 줌의 흙, 작게 빛나는 별, 자잘한 돌멩이가 나중에 대지·하늘·산으로 변하리라 예상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큰 것은 결국 작은 것이 쌓여 변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처음의 작은 것이 나중에 큰 것을 어떻게 바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주 52시간 근로제가 시행되면서 여러 가지 불만의 소리가 나오기도 하지만 또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낳을 수 있다.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이 불가피하다면 지금부터라도 이전부터 예상할 수 있는 문제와, 이전에 예상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예상할 수 있는 문제를 모아 종합적으로 검토해 혼선과 혼잡도를 줄여야 한다. 그래야 주 52시간 근로제처럼 일상과 산업의 생태계를 바꾸는 제도가 현실에 제대로 뿌리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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