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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섭의 테크놀로지로 본 세상]바벨탑서 엠파이어 빌딩까지...인간의 욕망 하늘을 찌르다

<16회> 마천루

"꼭대기가 하늘까지 닿는 탑 짓자"

중세 시대 고딕 첨탑·두오모 등 건축

신의 권위 도전·신비스러움 뒤섞여

강력한 철강 소재 덕 높이 제한 벗어

20세기 거대자본 상징 초고층 잇달아

국내도 1985년 동양최고 63빌딩 등장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한화생명 본사 건물 ‘63빌딩’ 전경. /사진제공=한화생명




성경 창세기 11장은 ‘바벨탑’의 일화를 전한다. 인류는 신의 노여움을 사 대홍수를 겪은 뒤 노아와 그의 일가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노아의 자손들은 신의 품 안에서 머물지 않고 곧 새로운 궁리를 시작했다. ‘또다시 홍수가 나면 어떡하지?’ 그에 대한 기술적 해결책은 거대한 홍수에도 물에 빠지지 않을 정도로 높은 건물을 짓는 것이었다. 그렇게 바벨탑 계획이 시작됐다. “자, 벽돌을 빚어 단단히 구워내자. 그리하여 그들은 돌 대신 벽돌을 쓰고 진흙 대신 역청을 쓰게 되었다.” 현대의 아스팔트에 해당하는 역청을 비롯한 최신 테크놀로지를 동원함으로써 이들은 ‘꼭대기가 하늘까지 닿는 탑’을 지을 꿈을 꿀 수 있게 되었다(창세 11,1-9). 그 결과가 어땠는지는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이렇듯 ‘꼭대기가 하늘까지 닿는 탑’에 대한 인류의 욕망은 뿌리 깊은 것이었다. 이러한 욕망은 중세 중반 이후 유럽 각지에서 유행한 고딕 건축 양식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무렵 지어진 성당들의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첨탑이 가장 큰 특징이다. 벽돌을 이용한 전통적인 건축 기술로 높은 건물을 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건축물이 높아질수록 자체 무게와 함께 바람의 압력에서 오는 수평력(水平力)이 점점 커진다. 실제로 이를 견디지 못한 수많은 건축물이 붕괴했다. 중세 고딕 양식의 건축물은 이러한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플라잉 버트레스’라는 방식을 채택했다. 수평력의 일부를 버텨줄 수 있는 아치형의 구조물을 건물 외벽에 설치하는 일종의 고육지책이었다. 플라잉 버트레스는 건축물의 구조를 안정화하는 기능과 함께 점차 복잡한 형태의 장식물로 진화해갔다.

창세기의 바벨탑은 신의 권위에 도전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심을 상징했다면 고딕 양식의 성당은 신의 영광을 현세에 물화하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졌다. 매주 예배를 드리러 오는 신도들은 성당 앞마당에서 고개를 들어 하늘에 닿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첨탑을 한 번씩 바라봤을 것이다. 성당의 첨탑은 평소에 볼 수 있는 일상적인 건축물과는 전혀 달랐다. 한편으로는 신비롭고 성스러우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공포와 초월의 감정을 자아냈을 것이다. 이러한 감정을 숭고(sublime)라고 한다. 이는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규모를 넘어서는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서 느끼는 감정이기도 하다.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낸 건축물로 숭고미를 자아내려는 시도는 이후 르네상스 시대의 반구형 구조물인 ‘돔(이탈리아어로는 ‘두오모’)’으로, 현대에는 하늘을 찌를듯한 초고층 건물로 이어졌다.

현대식 초고층 건축물은 영어로 ‘스카이스크레이퍼(skyscraper)’라고 부른다. 말 그대로 ‘하늘을 긁는다’는 의미의 마천루(摩天樓)다. 현대식 마천루는 19세기 후반부터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 철강 제련 기술이 발전하면서 충분한 인장 강도를 지닌 철강 재료가 대량으로 생산되기 시작했다. 건축가들은 새로운 소재를 활용해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건축물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벽돌이나 콘크리트로 지어진 이전의 건물들은 외벽이 무게를 지탱하는 내력벽(耐力壁)이었다. 철강으로 지은 새로운 건축물들은 건물 내부의 프레임이 모든 무게를 지지했다. 강력한 철강 프레임 덕분에 건축물은 높이의 제약에서 풀려났을 뿐만 아니라 외벽 설계 또한 자유로워졌다. 무게를 전혀 지탱하지 않는 유리 커튼월 공법은 현대식 마천루를 상징하는 방식이 됐다.

초고층 빌딩이 집중된 미국 뉴욕 전경. /권경원기자




20세기 초 이후 미국 대도시에 마천루들이 우뚝 솟아나면서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도심 ‘스카이라인’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움직임을 선도한 것은 뉴욕 맨해튼이었다. 메트라이프타워(1909년 47층), 울워스빌딩(1913년 57층), 크라이슬러빌딩(1930년 77층),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1931년 102층) 등 수많은 초고층 건물이 이 무렵에 세워졌다. 이어 시카고·필라델피아·샌프란시스코·피츠버그 등 자본이 집중되는 대도시마다 초고층 건물을 짓는 현상이 유행처럼 나타났다. 초고층 건물의 건축주는 대개 ‘광란의 20년대’라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전성기를 맞아 호황을 누리던 거대 기업들이었다. 철강과 유리·알루미늄을 소재로 번뜩이는 외양을 가진 마천루들은 그 자체로 이들 기업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광고판이 됐다. 이후 세계 어디든 자본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김없이 초고층 건물들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중세 성당의 첨탑이 신을 향한 숭고의 상징이었다면 20세기 마천루는 거대 독점 자본을 향한 숭고감을 요구하는 듯했다.

현대식 마천루의 등장이 자본의 축적과 집중을 반영한다면 한국에서 본격적인 마천루 시대가 1980년대 중반에 열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터이다. 필자가 초등학교 5학년이던 지난 1985년 7월에 ‘동양 최고’의 초고층 건물인 ‘대한생명 63빌딩’이 문을 열었다. 60층 전망대까지 초고속 엘리베이터로 올라가 서울 전역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한국 최초의 아이맥스 영화관과 대형 수족관도 문을 열었다. 이듬해 어린이날이 되자 초등학생 자녀를 둔 가족들이 63빌딩으로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우리 가족도 그 틈에 섞여 있었다. 아침 일찍 황금색으로 번쩍이는 63빌딩에 도착해 우선 전망대에 올라갔다가 내려와 지하에서 수족관을 구경했다. 점심을 먹은 후에는 ‘지구는 살아 있다’라는 30분짜리 아이맥스 영화를 감상한 후 서점에 들러 당시 학습만화로 큰 인기를 끌던 이원복의 ‘먼나라 이웃나라’ 전권을 선물로 받았다. 3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날 정도니 최고의 어린이날을 보낸 셈이었다. 10대 초반의 남자아이에게 63빌딩이라는 마천루가 숭고감까지 불러일으키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돌이켜 보면 1986년 5월의 나의 개인적 경험은 이 무렵 한국사회가 지나고 있던 변곡점을 잘 반영하는 것이었다. 한국인들은 1960년대 이후 4반세기 동안 경제발전을 위해 숨 가쁘게 달려온 성과를 적어도 아시아 최고 높이의 마천루로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인지 언론에서 63빌딩을 소개할 때면 항상 도쿄 이케부쿠로의 선샤인시티와 비교하고는 했다. 한국의 63빌딩이 일본의 선샤인시티보다 23m 더 높다는 사실은 강력한 의도의 결과이기도 하거니와 반드시 강조해야 할 점이었다. 아직 경제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완전한 선진국이 되지는 못했지만 어느 정도 생활의 안정을 갖춘 중산층들은 자신의 자녀들에게만큼은 선진국 어린이들 못지않은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그 욕망이 아이맥스 영화관에, ‘아쿠아리움’이라는 낯선 이름을 단 수족관에, ‘먼나라 이웃나라’라는 만화책에 투영돼 있었다. 1986년 어린이날 여의도 63빌딩에는 이러한 사회적 에너지가 총집결했던 것이 아닐까.

그로부터 30년 후 한국의 대도시에서 63빌딩을 거뜬히 넘어서는 마천루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는 주거용 아파트 단지가 70~80층을 넘는 경우도 많이 생겨났다. 현재 한국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2016년에 완공된 롯데월드타워로 63빌딩 높이의 두 배가 넘는다. 동작구의 집에서 노원구의 학교로 출퇴근할 때마다 주변의 지형지물을 압도하는 롯데월드타워를 감상하고는 한다. 1985년의 63빌딩이 국가와 자본의 성취를 현현(顯現)하는 테크놀로지라면 그로부터 30년 후 롯데월드타워는 무엇을 보여주는가. 30년 전 나의 아버지는 인파가 몰릴 것을 예상하면서도 귀찮음을 무릅쓰고 초등학생인 나와 동생을 데리고 63빌딩에 갔다. 내 딸이 이제 그때 내 나이쯤 되었지만 나는 아직까지는 롯데월드타워에 데려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서울과기대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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