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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미술을 만나 '어쩔 수없이' 미술로 산다

'원로화가' 김정헌 내년 1월5일까지 개인전

'낫 아저씨''호미아줌마' 등 전시

몇 년 전 미국 예일대를 방문한 화가 김정헌(73)은 우연히 눈에 들어온 사진 작품 하나를 머릿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차도르로 온몸을 휘감은 수십 명의 여인들이 얕은 강을 건너는 장면이었다. ‘희망과 절망’이라는 제목의 전시였다. 김정헌 작가는 “그 여인들은 ‘어쩌다 보니’ 그 강을 건너는 것일까? 아니면 ‘어쩔 수 없이’ 건너는 것일까?”를 유심히 생각했고 “그 우연과 필연 사이를 오가는 의문이 지금까지 나를 쫓아다니고 있다”며 새 전시 제목을 붙였다. 종로구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에서 내년 1월5일까지 열리는 개인전 ‘어쩌다 보니, 어쩔 수 없이’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미술행정가이기에 앞서 그는 1980년대 ‘현실과 발언’ 동인으로 활동한 미술계의 큰형님이다. 40여 년의 화업을 한 자리에 풀어놓은 이번 전시에 남 얘기하듯 제목을 끌어왔지만 슬그머니 꺼낸 것 자신이 살아온 삶의 궤적이다.

“모든 그림들은 이 ‘우연과 필연’ 사이의 우주적 변증법입니다. 나 역시 ‘어쩌다 보니’ 미술을 만난 것이고 또 ‘어쩔 수없이’ 이 미술을 영위하고 살아갑니다. 반은 우연이고 반은 필연이지요.”

미술관 입구를 따라 들어가면 3층에서 1층까지 내려가며 작품을 만나게 된다. 3층 전시실에는 과거 작품들 중 대표작을 모아뒀다. ‘낫 아저씨’ ‘호미아줌마’ 등의 작품은 익살스러운 풍자 속에 흙 만지며 살아가는 농촌의 실상을 품고 있다. 김정헌식 풍경화는 마치 지도에서 위치정보를 삭제하고 길만 남겨놓은 듯한 묘한 풍경을 펼쳐 보인다. 보이는 것을 보이는 대로가 아니라 곱씹고 걸러 표현했기에 ‘21세기형 문인화’라고도 불리는 작품들이다.

김정헌 2019년작 ‘녹색이 보인다’ /사진제공=김종영미술관




김정헌 ‘호미아줌마’(위) ‘낫아저씨’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이던 1994년에 기념전을 위해 그린 대형 작품 ‘말목장터 감나무 아래 아직도 서 있는…’ 옆에는 연필로 손수 글을 적었다. ‘백 년 전 고부 땅에 한 농부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열심히 살고 있었다…’로 시작하는 짤막한 이야기는 소설적 허구의 형식을 빌어 역사의 틈바구니를 비집는다.

1층의 최근작들은 산업화에 의해 짓밟히고 잊힌 것들을 들춰낸다. 무심한 듯한 ‘녹색이 보이는 화분’ 등의 식물 그림은 놓치지 않는 희망의 끈이다.



해방둥이로 평양에서 태어나 어머니 등에 업혀 월남한 그는 원래 문학도였다. 우연히 그의 그림을 본 미술학원 강사의 부추김에 덜컥 서울대 미술대학에 입학했다. “65학번으로 하수상한 시절”을 보내다가 은사인 임영방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이 쓴 ‘미술의 사회적 역할’에 자극받아 민중미술 동인 ‘현실과 발언’으로 활동했다.

“미술 중에서 ‘그림’은 특히 세상을 비추는 창입니다. 이 창을 통해 세상을 올곧게 비추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좋은 세상’이 이렇다는 것은 보여주고 싶어 합니다.”

전시장을 다 돌아 나올 때 만나게 되는 ‘너와 나’는 점 하나를 길게 빼면 ‘너’가 ‘나’가 되고 ‘나’가 ‘너’도 되는 그림이다. 그렇게 공동체의 의미를 묻는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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